첫눈 내리는 보문산성을 오르며

가을이 서서히 기울어 가는 어느날 아침

일요일이라 한적한 한밭골의 어느 낭자훈육소 큰문 앞에는 스무나문명의 남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입고 등에는 개나리 봇짐을 하나씩 메었는데 어떤이는 쌍지팡이를 짚었고,

어떤이는 외지팡이를 짚었는데, 간혹 목에다 요상한 쇳덩어리를 매달은 사람도 있는것이

때지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듯, 빙 둘러서서 왕초 인듯한 사내의 예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둘러 볼 물건은 다섯개 인대 그중 두개는 너무 크고 무거우며 한개는 너무 오똑한 곳에 얹혀 있어

가져오기가 힘들다. 나머지 두개 중 한개는 대여섯명이 들면 될듯하고 한개는 큰돌에 붙어 있으나

여럿이서 때어내면 될듯하고 작업이 끝난후에 우리가 도망 나올 길이 천길 낭떨어지니 조심을 해야하고

요실금이 있는 사람은 기저귀를 준비하라"

 

"그러면 기저귀 없는사람은 어찌합니까?" 

 

"미리미리 내가 때와 장소를 일러줄테니 알어서 해결해라"

 

"녜! 알겠습니다"

 

 

이때 어떤여인이 묻는다

"왜 기저귀를 차야 하나요?"

 

"내가 그렜지 왜? 라고 절대 묻지말 라고, 너희들은 그냥 녜!만 하면 돼!"

 

"알았어요"

 

머쓱헤진 여인네가 뒤로 물러서자 희끗희끗한 머리숱이 속알머리가 빠져 빨간 정수리가 들어난 그 왕초가

"대전둘레!"

하고 외치니 모두가 입을모아

"산길잇기 화이팅!"

이라고 따라 외치며 아마도 때거리질을 위한 주문 인듯한 것을 외우고 나서는 모두가 세줄로 모여 서는데

앞에는 무슨 내용인지는 모를 이상한 기호와 도형이 그려진 천을 펼쳐놓고

몇몇이 교대로, 각자 목에 걸고 있던 쇳덩어리로 패거리들을 향해 비추면서 "김치"라고 말하는데

순간 패거리들의 얼굴이 화색이 돌며 웃음을 띄는것이 아마도 주술을 거는 연장인듯하다.

 

주술걸기가 끝나자 비구니들이 도를 닦는 여승절에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본  뒤 별로 챙길것이 없는 듯

골짜기로 난 비탈길을 한줄로 죽 늘어서서 걸어 가는데 맨앞의 왕초는 쉬임없이 뭐라고 지껄이며 때거리들을 재촉하여

골짜기에 떡 버티고있는 커다란 바위앞에 모여서서 뭔가를 이야기하니 몇몇은 바위위에 올라서고

몇몇은 바위 중간의 좁은구멍을 통해 뒤로 돌아 나가드니 예의 그 목에 매달은 쇳덩이로 여러번 주술을 건다.

 

여나믄 시식간(匙食間)이 지나자 다시 줄을 서서 등마루에 올라 바위에 매달린 줄을 타고 오르더니 넓은 바위위에서

또다시 그 쇳덩이를 이리저리 돌리는게 주술이 아니고 아마도 산천의 정기를 산주인이나 산도감 몰래 훔쳐 가는것같다.

 

이때 한 사내가 나무등걸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여인이 사내의 어깨를 잡고 흔드니 사내의 아낙 인듯한 여인이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갔다놓기만 해"

 

"이왕 가져온거 실컷 갖고 놀다가 싫증나면 갔다줄께"

 

"알았어 기스내지 말고 조심해서 갖고놀아"

 

아마도 사내의 어깨위에 달린것이 "기스"인듯한데 본디 임자인 아낙에게서 여인이 빌려온듯하다.

 

한참을 웅성거리던 패거리들이 왕초의 한마디에 모두 일어서서 산위로 올라 가는데

"기스"를 빌려온 그여인네가 뒤에서 소리친다

 

"늘행복!늘행복!"

 

몇번을 큰소리 치니 앞서가던 아낙이 대답을 하는데

 

"왜에~불러!왜에~불러"

 

이것도 아마 오르막에 힘드니까 패거리들 끼리만 통하는 무슨 구령인듯하고

 

"이거 도로가져가"

 

"몰래 가져가서 잘갖고 놀았으면 제자리에 갔다놔야지 기스 않넸어?"

 

"응 쓸만큼 썼더니 기스는 안났는데 기운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아껴쓰라 했잖아? 또 쌩돈 들어가게 생겼네 쯔쯔"

 

알지못할 예기들을 주고 받으며 성문앞에 다다른 패거리들은 성벽을 붙들고 쭉 늘어서서 왕초의 지시를 받는것이

아마도 이성안에서 무슨 일을 벌릴것 같고 이를 눈치첸 것인지 고양이때들이 이리저리 뛰며 패거리들을 살피는데 

그들이 빨려 들어간 성문안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첫눈이 배고픈 패거리들의 일용이라도 하라는듯

싸락눈이 되어 누렇게 변한 잔디밭과 바람에 흔들리는 청솔가지 위에 켜켜이 하얗게 쌓여 가고 있었다.

 

2009. 11. 17. 대전둘레산길잇기 태마산행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