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78

60x12x365=262,800일 만에 한번 오는 날?

여러 횐님들과 친지들에게 '카톡'으로 보낼 '설 연하장' 디자인 작업을 하다 눈에 확 띄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다. 갑진년 정월 초하루 즉 이번 설날의 일진이 甲辰이다. 그 달의 초하루 일진으로 그 달을 이름으로 이번 설날은 甲辰年 甲辰月 甲辰日이 된다. 60갑자와 12달을 곱하고 1년 365일을 곱해보니 26만 2천 800일 만에 돌아오는 날이니 햇수로 무려 720년만에 한번 오는 이번 설날의 일진으로 계산 되는데... 여기에 윤달(閏달)까지 계산하면 어찌 될지 돌까마귀 계산으로는 나오지 않으니 누가 슈퍼컴퓨터로 이 조합 즉 "설날이 해와 같은 일진이 되는 확률"을 계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향(故鄕)

한달에 한 두 번은 다녀왔든 고향길이지만 육십에 든 마음 속에도 설 쇠러나서는 새벽 고향길이 설래다 어릴적 새뱃 돈으로 받은 빨간 지전이 신기하여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창고에 넣어놓고 학교 다녀와서 꺼내어 냄새 맡아보든 그 추억도 스무명이 넘는 대소가 손주녀석들 나눠줄 빳빳한 신권 배춧닢으로 불룩한 쌈지를 더듬으며 새벽별이 빤짝이는 플렛폼에서 파란 하늘로 띄워본다 한밭벌 출발 무궁화호는 조금 냉하였지만 옥천 이원 영동 황간가는 경상도 억양 썩인 충청도 사투리와 들고 맨 선물 꾸러미들로 객차 안은 금새 따뜻해진다 추풍령역에서 뒤 쫓아 온 번개차를 앞서 보내고 백두대간을 넘어 경상도 땅 내리막 길 차창 밖 황학산 위로 새 날이 밝아온다 온누리의 평화와 우리나라의 힘과 배달민족의 꿈과 우리 집의 행복과 나..

2009년 대전둘레산길 산행 안전기원 山神祭

산신제문 2009년 새해를 맞아 저희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은 이곳 만인산 정기봉 기슭 태조대왕 태실에 올라 천지신명과 대전둘레 산신께 고합니다 저희 회원들은 산에 오르면 풀한포기 나무한그루 산짐승 한마리라도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하여 그 터전을 해치거나 더럽히지 않을것을 굳게 약속 하나이다 또한 회원 상호간에 서로 돕고 사랑하여 무거운것은 들어주고 맛있는것은 나누어 먹고 즐거운일은 나누어 배가 되도록 하고 슬픈일은 나누어 반이 되도록 하겠읍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지않고 서로가 존경하여 대전시민의 모범이 되겠읍니다 천지신명과 대전둘레 산신이시여! 지난 한해 저희들을 보살피시어 무탈하게 둘레산길잇기를 마치게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리옵고 부디 올해에도 오르막에는 힘을 실어 가볍게 하여주시고 내리막 내딛는 걸음마다..

둘레산길 4구간 날머리와 5구간 들머리에 대하여

'대전둘레산길'을 안내하다 보면 아쉬운 코스가 몇 곳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6구간의 탄약사 철조망 구간이요, 또 하나는 제7구간 국방과학연구소 철조망 구간이다. 7구간은 현재 통행이 가능하니 차지하드라도 6구간의 철조망 구간은 조속히 통행이 허락되어야 할것이다 각설하고 현재 식장산 활공장에서 식장산 포장길 0.5km를 걸어 내려와 세천공원 계곡을 따라 세천저수지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동신고 앞 옥천길로 나오는 4구간 날머리와 동신고 앞 옥천길에서 대청호수길 포장도로를 0.8km 걸어 올라 줄골 장승고개에서 갈고개를 넘어 갈현성으로 이어지는 5구간 들머리를 '똘까마귀' 나름대로 코스를 바꿔 보았으니 회원 여러분이 기회 있을 때 한번 돌아 보시기를 바라며 도면 자료와 산길 해설을 올립니다. 먼저 제4구간..

우리는 財健餘對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순종한 첫 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부모로서 부양 못 받는 첫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 구조조정 된 세대 나와 같은 6, 70대를 재건여대(財健餘對)라 부른단다. 재건여대는 네 가지를 잘해야 한단다 財는 돈, 健은 건강, 餘는 여가나 취미, 對는 대인관계를 뜻한단다 財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健과 餘는 對만 잘한다면 우리 '대전둘레산길잇기'가 제일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서로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 한쪽이 피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2023년 10월 10일 보문산 기슭에서 '늙은까마귀'가

보고 싶은 얼굴들

우리 대전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바로 "대전둘레산길"이다 지난 11월 8일 "국가숲길"로 지정 고시 되었는데 모든 메스컴에서는 아래와 같은 기사를 쏟아 내었고 대전광역시에서는 11월 26일 토요일 10:30 보문산 숲속공연장에서 "국가숲길지정 기념행사"를 연다고 한다. 보고 싶다 그 모습 들 듣고 싶다 그 목소리 그래서 불러 본다 찬란한 그들의 이름을 김선건, 전양, 아우라지, 느낌표, 강산에, 뫼꿈이, 백발대장, 은잠, 수풀이, 별꿈이, 샤카, 준돌, 한근상, 양각산, 진달래, 상수리, 도토리, 필레, 몸짱, 최산애, 영영영, 산꾼,장끼, 똥벼락, 가을하늘, 개동, 일산, 기산, 진산, 카르피디엠, 산야로, 아람, 청소부, 고고산, 황산, 청산, 산아, 날마다행복, 늘행복, 용머리, 용꼬리, 타..

늙은 까마귀는 돌까마귀 시절이 그립다

daum과 카카오가 통합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로그인 방법이 daum계정에서 카카오계정으로 통합되면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1년 어느날 손전화로 문자메세지가 왔었는데 미쳐 발견을 못하고 하루가 지나서 보니 무제한 광고도배하기로 활동이 정지되어있었다. 아마도 누구에게 해킹을 당했던 모양인데 문자메세지 확인후 해명 시간이 지났다고 활동정지를 풀려면 이이제기를 하여 심사를 받고 회복 될려면 3,4개월이 걸린다 하드니만 다음카카오 통합과정의 업무량이 많은 탓인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 그동안 임시방편으로 "늙은 까마귀" 계정을 만들어 몇몇 곳의 카페가입도 새로 하였지만 내가 카페지기인 "대청호오백리길" 카페는 카페지기가 부재중이라 떠 있고 늙은 까마귀는 준회원이다. "대청호오백리길 카..

보문산 행복숲길에서

2022년 10월의 세번째 월요일 파란 하늘 하얀 반달 아직은 설 익은 이른 단풍 하늘은 너무 푸르고 맑아서 쨍그랑! 하고 깨어질까? 두렵고 파아란 '미리내'에 떠 있는 하얀 쪽배는 兎사공이 잠들었나? 너무 조용하다. 계절은 寒露를 지나 霜降이 가까워 지는데 "한절골" 산지기는 아직도 가을 옷 장만이 덜 되었나? 나무들이 추워 보인다. 한밭 벌에서 젤 높은 '색경산' 위에는 벌써 얼음판이 생겨 앉은뱅이 '씨게또(썰매)'를 탈 아희들을 기다리는데 한밭 벌에는 묵은 것들이 자꾸 사라져 간다 병이 든 것도 아닌데, 단지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로... 오래 동안 기억해야 할 정겨운 그 이름 "부처댕이"마을과 "대전공설운동장" 다시 한번 가슴 속에서 조용히 그 이름을 불러 본다. 2022년 10월 17일 보문산행복..

대전찬가(大田讚歌)

'잘있거라 나는간다 대전발 영시오십분' '가로등 흐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불러보는 "대전부르스" "못잊을 대전의 밤" 기차 바퀴 점검 위한 대전역 3분 정차 눈썹을 휘날리며 프렛홈을 내 달리니 맛깔스런 노란 냄비의 대전역 가락국수 * * * * * 영남학파 기호학파 개나리 봇짐지고 장원급제 기대하며 한양 천리 과거길에 황부자의 미륵원 들러 지친 걸음 쉬어 가고 모래재에 걸린 달을 술잔 속에 띄워 놓고 남루에 둘러 앉아 시 한수 읊조리면 비단강 물결 위에는 어사화가 비치리라 * * * * * 보문,만인, 정기,국사, 망덕,식장, 계족,금병 우산,갑하, 도덕,금수, 빈계,구봉, 효자,쟁기 둘레산길 봉우리들은 한밭벌을 품어 안고 효부, 열녀, 효자정려는 골골마다 자리하니 그정신 이어 받아 효문화의 도시되어 ..

앞치마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한밭벌을 남에서 북으로 세로질러 '버드내'와 '으뜸내'에 섞여 '비단강'으로 흘러드는 '대전천' 中流, 보문교와 문창교 사이의 '대전천西路'에 '살구꽃'이 만발한 3월의 어느 '불타는 금요일' 오후 지난 2월 말에 동구 소재동에서 중구 대흥동으로 옮긴 (사)대전문화유산울림의 사무실 정리를 하고있는데 경북 구미에서부터 40년 넘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어디서 뭐해?.” 소주 한 잔 마시자는 뜻이다. 30분 전에 보낸 카톡을 늦게 보았으니 바로 다이얼을 눌렀다. “왜 이제 전화 해?.” 귀가 찢어진다. 사정을 설명하고 살구꽃 향기를 맡으며 소주 잔을 기울일 곳에서 6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충 정리를 끝낸 뒤 15년을 함께 한밭벌을 누벼온 자전거를 타고 약속장소에 닿으니 ..

大淸湖에는 龍이 살고있다

대청호는 단순한 인공호수가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이었고,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비단강 줄기를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문물을 옮길수 있었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백제와 신라의 전략에 의해 수 많은 山城들을 주변 산봉우리에 쌓았고, 수 많은 전투를 치루며 군사들이 진을 쳤던 자리가 '진터벌'이란 이름으로 물속 여러곳에 존재한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수지리학적 명당으로 손꼽히면서 사림 세력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75년 3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준공한 대청댐이 1979년 물을 담기 시작하여 커다란 호수가 생기기 전 부터, 아니 더 먼 옛날 부터 마을 이름에는 호수가 생길것을 예고하고 있었으니, 대전 대덕구의 渼湖洞, 龍湖洞, 黃湖洞, 동구의 舟村洞 ..

비오는 오후, 추억에 젖어 든다

나어릴적 배고픈 시절엔 비오는 오후가 아주 좋았다 맑은 날의 바쁜 일상이 비오는날 만큼은 해방 되었으니까 * * * 국민학교든 중학교든 청소당번까지 마치고 부모 형제 모두 들일 나가시고 아무도 계시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면 실겅위 삼배 보자기 덮힌 삶은보리쌀 소쿠리를 내려 한 귀퉁이에 담겨있는 식은밥을 양푼에다 담고 차디찬 우물 물 한바가지 퍼 담아 말고 마당 한켠 채전밭에서 풋고추 한웅큼 따고 장독대에서 제일 커 내 작은 키를 얕보는 된장독에서 어렵사리 한숱갈 퍼내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시장끼를 떼우기 바쁘게 찬도랑 방천둑에서 쇠파리때 쫏느라 꼬리 흔들기 쉴틈이 없는 누렁이 고삐를 풀어 몰고 옆집 점태도 앞집 상식이형도 황보네 순덕이 누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뒷산 기슭으로 꼴망태를 매고 간다. 모갈비얄..

2008년 광복절 아침 생각

63주년 광복절과 89주년 건국절 올 2008년 광복절은 음력 칠월보름으로 우리민족의 전래명절인 백중절이다 요즘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명칭을 바꿀 요량인듯하다 일제강점기 36년을 벗어나 1945년에 광복을 맞으니 올해로 63주년이 된다 건국은 단군신화를 차용하지 않드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 독립국임을 온 세계에 선포한 1919년이 엄연히 현행 헌법 전문에 존재한다 당연히 건국절은 선포일인 4월13일이나 여섯곳으로 흩어져 있든 각각의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이승만 박사를 초대 내각수반(후일 대통령제로 개헌)으로 선출하여 온세계에 선포한 9월15일이어야 하고 올해가 건국 89주년임을 절대 부인할수는 없는일이다 만일 오늘을 건국 60주년 기념일로 할려면 헌법을 개정하고 전문의 내용을 수정한후..

보문산의 추억

대전둘레산길에 취하여 원거리 산행을 잊은지 벌써 여러해, 한달에 두어번 산악회를 따라 다녀 오기는 하여도 예전에 비하면 鳥足之血인데 월요일 하루를 쉬고 모처럼 집 뒤의 보문산에 올라봤다. 대전의 명산이랄수 있는 보문산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많다. 대충 헤아려 봐도 160여개가 넘는데 그것도 100m 이내의 옆길이나 200m이내에서 합쳐지는 길을 빼드라도 그 정도다. 보문산은 산자락의 범위도 상당히 넓어, 북쪽기슭의 문화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대사동, 부사동, 석교동, 호동을 지나 옥계동 학고개를 넘어서면 동구의 이사동으로 이어지고, 오도산 아래의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구완터널 위 원앙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중구의 구완동, 무수동, 사정동, 산성동으로 이어지니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시루봉 또는 보문산성을 향하..

느낌표님의 "바위구멍여행기" 발간 축하글

느낌표님에게 요즘도 더운 날씨에 여전히 산천을 해매시고 다니시나요? 그렇게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쉬는 날이면 빠짐없이 산과 들을 해매고 다니시니 뒷바라지를 하는 아주머니 생각도 하시어 가족과의 시간도 많이 가지시고 당신의 건강도 좀 챙기셔야지요. 당신의 소싯적 이력이야 잘 모르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오늘 충고 아닌 부탁의 말씀 한번 해볼까 합니다. 당신께서 백두대간과 정맥 길을 비롯해 전국 유명산을 오르내리기가 몇 번 인데, 10여 년 전 부터는 한밭 벌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에 미쳐 “대전둘레산길” 개척에 일조 하더니만 어느새 대전시 경계 길을 지나 충남도계길, 각 시,군 둘레 길도 모자라 유성, 세종 올레길, 연구단지 사이언스 길까지 섭렵하시다가 급기야 이제는 “바위..

어느 치사한 녀석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14년의 중복날, 한밭벌 서정리의 어느 '산꾼방' 앞에 땀에 젖은 세 사내가 나타나자 망을 보고 있던 녀석이 낮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반가워 하는데, 그중 한 사내가 산꾼방의 주인인듯 "백구야" 하며 손까지 흔들며 등짐을 내리지만 녀석은 전혀 관심없이 다른 사내를 보고 오히려 펄쩍뛰기 까지 하며 좋아하니, 또 다른 한 사내도 "야 너 오늘 왜 그러냐"고 나무라지만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사내만 반가워 한다. 그 사내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고 사내가 봉지속의 무엇을 꺼내어 녀석의 밥그릇에 부어 주니 뒤도 돌아보지않고 개걸스럽게 침까지 흘리며 아구창 상하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주인사내의 일갈이 "야! 임마!" 하며 녀석의 귓전을 때리지만 녀석은 한번 돌아보..

그 때, 그 시절, 그 모습, 그 목소리

그리운 승리부대 사령부 전우들에게 옛날 우리의 선배 전우들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든가요? 군대는 짬빵순이라고... 허지만 우리 승리부대 사령부의 전우들은 짬빵순 만은 아니었죠. 힘든 내무반 생활과 항상 긴장속에 빠듯한 시간을 쪼개야 하는 상황실 근무를 하다 보면 군인으로서 목메이게 기다리든 식사시간 마저 놓쳐 버리고 할수없이 취사반장의 눈치를 보며 대형 가마솥의 누룽지라도 긇어 배를 채우면서도 서로를 다독여 주던 바로 그것, 사단사령부 근무자의 끗빨이자 자긍심이며 끈끈한 전우애였죠. 쏟아져 나온 월남병장때문에 T/O가 모자라 병장 계급장 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진급심사라는 미명으로 치뤄야 하던 10km구보도 힘들었지만 즐거웠었고, 1년에 한번은 꼭 다녀와야 하는 유격훈련을 가기 위해 군장을 꾸리던 날 저..

월간 교양지 "샘터"의 지령 500호를 축하하며

60년대 말 삼선개헌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등학교를 못다 마치고 생활전선에서 노심초사 하던 시절, 퇴근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구역전 선술집에서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다 비몽사몽 간에 통근열차를 타고 고향땅 왜관역에 내려 땅거미 진 역광장을 지나 중앙약국 앞에 서면, 구장터 쪽, 신동관 못미쳐 왜관제과 건너편 처마밑에 발그래 한 백열등이 빛나고 있었으니 만화,소설,잡지를 빌려주던 만화방 불빛이었다. 허문영, 방인근의 이름을 도용한 삼류작가의 야한소설이나 김충의 무협소설을 빌려와 자정 넘어서까지 탐독하기도 하고 한달에 한번씩 발행되던 명랑, 아리랑, 영화잡지, 야담과 실화등 대중잡지를 빌려보기도 하였으나 선데이서울을 필두로 쏟아져 나온 주간한국, 주간경향등 주간지가 한가운데의 두 페이지 짜리 여배우의 야한 ..

낙동강 칠백리

매년 4월이면 내고향 뒷동산 작오산에는 참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참꽃은 양지쪽 묘지의 잔디밭에 돋아난 삐삐와 함께 어린 우리들의 간식거리로도 훌륭하였었는데 보리고개를 넘느라 굶주린 배를 채우기 보다는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갈구를 달래기위해 꽃잎은 마냥 우리들의 입술을 붉게 물들였었다. 겨우네 찬도랑 옆 배방골 논바닥의 얼음판을 지치든 손과 발이 우수,경칩을 지나면서 물 웅덩이를 찾아 해매었고, 춘분과 청명을 지나며 뒷동산으로 돌린 발걸음은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목얄비알에서 짠디도 케먹고 찔레도 꺽어 먹으며 봄을 맞았었다. 어린 나이에 형들의 뒤를 무작정 쫒아 오르다 사춘기가 지나며 사타구니에 검 덤불이 돋아 난 후에야 그 붉디 붉은 진달래가 6.25사변의 와중에 낙동강 전선에서 흘린 피아..

1.4후퇴 흥남철수가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굳 세어라 금순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해매였드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 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떳다 철의 장막 모진 설음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 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춰 보자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가수 현인(1919.12.14~2002.4.13)이 1953년에 발표한 강사랑 작사/박시춘 작곡의 노래로 발표한지 58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의해 자주 불리는 국민 가요로 돌까마귀도 노래방..

2010년을 보내며

산길을 걸으면서는 언제나 행복했었다, 탁배기나 소주 한병 그리고 따뜻한 물 한병, 마음의 점을 찍을 쌀국수 하나 달랑 넣은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은 구름속을 걸었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한적한 마을앞에 내려서면 산은 항상 내 코 앞에서 반겨 주었었다, 때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 때로는 바삭거리는 낙옆과 함께, 때로는 뽀드득 거리는 하얀 눈과 함께... 간혹 찬바람이 심술을 부리며 귀때기를 때려도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 산은 바로 포근한 안가슴을 내어주며 보듬어 주었었다, 어쩌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항상 거기 그곳에 있었다. 내가 산에 빠져 들게 된것은 코 흘리게 어린 시절 고향 마을 뒷산에 널부러진 탄피와 포탄 파편을 주으러 동네 형들 뒤를 쫒아 다닌게 시작이다, 인..

한여름 날의 보문산자락(보문산의 추억/원문)

대전둘레산길에 취하여 원거리 산행을 잊은지 벌써 여러해, 한달에 두어번씩 산악회를 따라 다녀오기는 하여도 예전에 비하면 鳥足之血인데 월요일 하루를 쉬고 모처럼 집뒤의 보문산에 올라봤다. 대전의 명산이랄수 있는 보문산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많다, 대충 헤아려봐도 160여개가 넘는다, 그것도 100m 이내의 옆길이나 200m이내에서 합쳐지는 길을 빼드라도 그정도이니, 보문산 북쪽기슭 문화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대사동,부사동,석교동,호동,옥계동,학고개 넘어 동구의 이사동,오도산 아래 구완터널 위 원앙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중구의 구완동,무수동,사정동,산성동,동서남북 어디서나 시루봉이나 산성을 향하여 오르면 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한 두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수 있는길도 있고 6시간이상 걸리는 길도 더러있다, 대전에 ..

2009년을 보내며

돌이켜 보건대 2009년은 나름대로 보람있게 보낸 한해였다. 첫번째가 개인적으로 과년한 딸년을 시집 보내므로써 남매뿐인 자식들이 모두행복한 가정을 꾸린 일이요, 두번째가 한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기에 예쁜 며느리가 귀여운 손자놈을 안겨준일이다. 사업적으로는 별 소득이 없었지만 세번째는 아주 큰 성취감을 안겨준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안내대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기적인 생각이 없는것도 아니어서 첫번째 보람으로는 뽑지 않었어도 나에게는 아주 크나큰 행복이었는데 아주 많은, 좋은사람들을 만나 너무나 좋은 기억들만 머리속에 가득하다. 때로는 독선과 아집속에서 자아도취에 흐느적 거린점도 많았지만 2008년에 시작한 대청호반산길따라가 8개구간으로 확정되어 대전시에서 관광상품으로 개발계획을 착수한 일이며 아우라지님의 조언..

첫눈 내리는 보문산성을 오르며

가을이 서서히 기울어 가는 어느날 아침 일요일이라 한적한 한밭골의 어느 낭자훈육소 큰문 앞에는 스무나문명의 남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입고 등에는 개나리 봇짐을 하나씩 메었는데 어떤이는 쌍지팡이를 짚었고, 어떤이는 외지팡이를 짚었는데, 간혹 목에다 요상한 쇳덩어리를 매달은 사람도 있는것이 때지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듯, 빙 둘러서서 왕초 인듯한 사내의 예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둘러 볼 물건은 다섯개 인대 그중 두개는 너무 크고 무거우며 한개는 너무 오똑한 곳에 얹혀 있어 가져오기가 힘들다. 나머지 두개 중 한개는 대여섯명이 들면 될듯하고 한개는 큰돌에 붙어 있으나 여럿이서 때어내면 될듯하고 작업이 끝난후에 우리가 도망 나올 길이 천길 낭떨어지니 조심을 해야하고 요..

가자! 산으로! 대전의 산으로!

한밭 땅에 들어와 산지 어언 30여년 시내버스표 한장으로 거의 매일 산을 찾지만 그동안 올라서 본 산봉우리는 불과 200여개 그것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다 올라본 봉우리는 20여개에 불과하다. 한밭벌을 둘러싸고있는 두 겹의 산줄기에는 봉우리라 일컷는 꼭지점이 400개가 넘으니 평생을 올라도 대전의 산봉우리 모두를 다 못올라 볼것 같아 나는 매일 산에오른다, 하나의 봉우리라도 더 올라보고, 하나의 물길이라도 더 걸어보고, 하나의 사연이라도 더 들어보려고... 연분홍색 진달레 향기를 맡으며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노란색에 가까운 신록을 보았든가? 계곡을 흘러 내리는 물소리 들으며 솔향기에 취한 체, 솔솔바람 불어오는 능선길을 걸어 보았는가? 빨간 단풍잎을 입에 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낙옆 쌓인 산..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그가 내가슴깊이 들어와 앉은 때는 1968년 이었다. YS와 부딛힌 원내총무 대결에서 한창 민감한 청소년기의 고등학생 눈에는 그는 바로 영웅이었다. 71년 대통령 선거유세때 대구 수성천변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청중들은 마을마다 버스로 모아온 공화당의 동원 청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40대 기수 김대중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었다. 그래서 야당도시 대구와 경북에서 그는 51%의 득표를 얻었지만 타지역에서의 득표 탓인지 아니면 부정개표 탓인지, 51대 49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었다, 동해의 물귀신이 될 뻔 했던 그가 되살아 나왔을 때, 끓는 피 두주먹을 불끈 쥐었었고, 스물을 넘은 내 가슴깊이 휘몰아친 유신독재는 문세광이 저질렀다는 영부인의 시해사건 마저 나를 못믿게 하였지만, 유신의 심장..

친일이냐? 독립운동가냐?

머리와 가슴을 아무리 굴려 봐도 보이는 건 희미한 님의 그림자 느끼는 건 잡히지 않는 님의 허수아비 보이지 않고 만질수 없는 님들이 엮어놓은 허무맹랑한 홀로서기 독립 이야기 글자 한자 고치면 될것을 무얼 그리 애태우며 전부를 뒤집을려고 하나? 고친 한자가 가슴속 깊이 박혀 먼 훗날 네 아버지, 네 할애비 독립유공자 만들어 드리면 서훈도 받고 공적비도 새우고 국립현충원에라도 모시게 된다면... 그래 잊자 네 할아비 모습은 잊자 유성땅 갑동 갑하산 한자락이 고향산천 보다 더! 고향답고 남보기에 더 보람된다면 효평동 삼거리에 우뚝서있는 공덕비는 그 값어치를 다하였을 것을... 고쳐진 옛 예기는 바람속에 묻혀 배고개 넘어 저멀리 심곡, 효뜰, 갈밭에 흩 뿌리리라 대청호 푸른물위에 새끼손가락 걸며 맹세하지 못할지..

노무현 전대통령을 되돌아보며

2009년 4월은 내게 정신적으로 너무 잔인하다 1979년 4월은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서울의봄이 오는가 하였었다 신군부 군화발에 짓밟히고 최류탄에 쫓기면서도 목놓아 외치던 군부독재타도는 민주산악회를 모태로 생겨난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삶의 보람으로 이어졌었다 광주의 잔인한 봄이 지나고 해마다의 봄은 계속 힘들었으나 1987년 봄까지 이어진 고난의 세월은 6.29 항복선언으로 보람도 있었다 민추협의 와해속에 치러진 87대선은 형님먼저,아우먼저 양보가 아닌 욕심에 거덜나더니 삼당야합으로 이어받은 정권은 작은대통령의 전횡과 외환위기로 무너지고 세번의 낙선과 세번의 은퇴선언을 뒤집고 올라선 정권도 세아들의 욕심이 망쳤고 돼지저금통과 수도이전 깃발을 들고 인터넷 세대를 사로잡은 상고출신 노동변호사,국회의원 딱한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