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언저리길 답사후기

구도동에서 대별동, 이사동 지나 자느리고개 넘어 범골까지

돌까마귀 2023. 12. 21. 13:23

언   제 :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어디서 : 구도동 대전천에서 지프재골, 감나무골, 사한골 돌아 자느리고개 넘어 모암골로

누구와 : 한밭언저리길을 좋아하는 이봄씅, 백제사랑님과 함께

 

한파주의보 탓인가? 간밤에 내린 눈 탓인가? 수요벙개산행 최초로 딱 두분만 나오셨다.

남대전종합물류단지 버스승강장 옆의 아주 멋스런 디딜방아 화장실 앞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애초에 계획했던 '구도동누리길 2코스 강바위산 산행'은 접고 눈길에 어울리는 코스로 발길을 돌린다.

대전천을 따라 내려오다 징검다리를 건너 낭월동 대전천 동쪽 제방길을 따라

대전로 낭월다리 밑을 지나서

초지공원으로 징검다리를 건느려는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캠핑족의 몰상식행위에 속을 끓였다.

초지공원 둘레길을 한바퀴 돌기 위해 올라서니

前人未踏의 눈길에 올라서니

두 분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오고

고속도로 절개지 위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판소리 한대목이 흘러 나온다.

초지공원 둘레 능선길에서 내려와 남대전장례식장 뒤의 대별천에 내려서니

눈 쌓인 물가에는  초록이 탐스럽고

지난 12월 6일에 올랐던 비파산성과 비파치조망바위는 흰 눈에 덮여있다.

30번 외곽버스가 다니는 산서로를 잠시 걷다가 대별로로 접어들어

자그마한 박원상의 묘 표지를 따라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오른쪽 산비탈에는 가을겆이를 넣어두고 겨우네 꺼내먹던 아주 낡은 '움'이 다 쓰러져 가고

집 뒤 켠의 몇 안되는 장독은 흰 모자를 쓰고있다.

우거진 대나무 숲길을 지나

통영대전고속도로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가 갈라지는 

산내교차로 밑 굴다리를 빠져나가 왼편 고속도로 옆길로 들어서니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42호 박원상의묘 (朴元象의墓)에 닿았다.

박원상(朴元象)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이다. 고려시대 공조전서를 역임하였으나 자세한 이력은 전하지 않으며 사육신인 박팽년의 증조부인 점으로 보아 고려말의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묘는 순천박씨의 묘 중 후손에 의해 그 직계 선조의 묘임이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따라서 박원상의 묘는 순천박씨의 연원을 밝히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며 또한 순천박씨의 대전 입향(入鄕) 시기 및 대전 세거(世居)를 밝히는데 있어서도 매우 긴요한 자료가 된다.

순천박씨는 고려 개국공신 영규(英規)를 시조로 삼으나 이후의 계보는 실전(失傳)되어 잘 알 수 없고, 고려말 대제학을 지낸 숙정(叔貞)을 중시조로 삼고 있는데 그가 박원상의 아버지이다. 

박원상에게는 수생(首生), 장생(長生), 안생(安生), 이생(易生) 등의 아들이 있으며, 

이 가운데 안생과 아들 중림(仲林)이 각각 박팽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리지역 문화재에서 묘에 대한 설명문도 찾아본 뒤

아주 특이한 차일석(遮日石)도 살펴보고

주과를 차려 제배를 하고 음복을 마치니 

이도령의 판소리 한대목이 절로 흘러 나온다.

눈 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하니

누워계신 님과 헤어저 왔던 길을 되 돌아 나가며

대나무 숲에서 기념사진도 남긴다.

안대별 마을길을 벗어나 북쪽으로 돌아서니

대전문화재돌봄사업을 시행하는 (사)백제문화원이 흰눈에 덮혀있고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 산내교차로의 3겹 지하통로를 빠져 나오니 보문산은 눈발에 가려 흐미하다.

위의 남대전풋살장이 아래 지도처럼 기존 도로를 무단점용하여 사용하니

이 벽돌집 주인은 동구청에 항의하며 다투다가 해결이 되지않자

위 지도의 녹색선처럼 자기도 '이사로' 옛길을 막아서 할수없이 뒤 돌아 나와 

한참을 멀리 돌아서 고속도로변 길을 따라 윗사라니 옛길을 걸어본다.

고속도로변을 벗어나 자라내(絶巖川) 천변으로 나오니

콘크리트 다리 위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이 쌓여있고

윗사라니 대추나무 밑에는 발가벗은 여인상이 강추위에 떨고있다.

눈발이 날리는 오도산을 바라보며 이사동 버스종점에 들어가

진수(珍羞)와 성찬(盛饌)이가 차려 준 

오찬(午餐)을 마치고

눈발이 그친 봉답(奉畓)의 벼 그루터기를 밟으며 걷다가

얼어 붙은 무논에서는 오금도 저려 본다.

이사동 은진송씨 제실 옆의 멋진 소나무 자태에 취하다가

윗사라니에서 모암골로 넘어가는 자느리고개에 올라서

고개마루를 조금 내려서니 한국전쟁 때 미군이 사용하던 GMC트럭을 

불하(拂下) 받아 화물차 영업을 하던 아주 오래된 트럭이 20년 째 자리를 지키고있다.

저멀리 흐미한 계족산 줄기가 손짓하는 모암골을 걸어나오다

대전광역시 동구와 중구가 갈라지는 모암약수터 삼거리에서

일제강점기의 사방공사표지를 살펴보다 이도령님이 미끄러져 웃음이 터진다.

물 맛 좋은 모암약수도 한잔 마시고

회전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에 들러

노송(老松)의 안타까운 주검도 살펴 본 뒤

호동 우체국 옆의 맛집에 들러 '살짝매운 아구찜'으로 소줏잔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