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州 李氏 大宗會 漆谷, 石田宗會

돌밭종택의 이모저모

돌까마귀 2022. 7. 15. 16:17

언   제:2010.10.28(목)

어디서: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3리 구바우

왜관역 뒤 칠곡군청길 미군기지 담장을 따라가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나타나는 마을 표지석

고향마을 제일북쪽의 종택으로 이어지는 마을 안길을 한켠의 감나무 

종택 바로앞 오른쪽집(以자晉자:칭계댁)의 폐허로 변한 사랑채 

종택 바로앞 왼쪽집(壽자曇자:유오댁) 부로끄 담장의 담쟁이넝쿨

대문앞의 주차장-하마비가 있던곳 

1671년 10대조 문익공께서 매원에서 이거해 오시며 지으신 종택중에 제일 오래된 대문채 

좌우로 방을 두어 행랑채를 겸하는데 마름과 머슴이 거처하였다 

바깥마당 서편의 회나무-사연이 많은 나무다 

사랑채-화마로 소실되어 중건하였고 유리창은 근년에 보온을 위해 미닫이로 설치했다. 

사랑채와 붙어있는 중문채-안 행랑채를 겸한다. 

 

바깥마당 동편(중문채 앞)의 모과나무 

안채-화마로 소실되어 중건하였고 좌측으로 ㄱ자형으로 지어졌으며 그 끝과 사랑채 후면 사이에 아녀자들이 드나들던 내문이 따로 있다. 

안마당 우측(동)의 부속채 뒷모습-광과 디딜 방아간이 있었으나 현재 디딜방아는 없어져 아쉽다.

사랑채와 중문채의 뒷모습과 장독대

중문채의  

중문채를 바깥마당 동쪽끝의 남새밭에서 본모습-오른쪽에 있는 2칸의 방은 찬모,침모의 방이었다  

안채 뒤에는 남새밭이있고 담장을 따라 대나무숲이 길게 펼쳐저 저녁 무렵이면 참새때들의 군무가 장관을 이루었었다. 

담장넘어 사람들이 많은곳은 2010년 10월에 중건한 문익공 불천위 사당 창수문, 그너머에 농암정사가 보인다.

사랑채 좌측(서)의 회나무 아래에서 본 창수문-문익공 10대종손 夏鎭(삭개)형님이 매달려 일경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나무다. 

창수문에서 내다본 사랑채와 회나무 

사당뒤편의 무성했던 대나무숲은 묘우 중건공사때 건물의 홰손방지를 위해 뿌리를 뽑아내고 콘크리트 차폐벽을 지하에 설치하였다. 

담장밖에는 아름들이 소나무가 울창한 솔밭이 있었으나 도로개설로 멸실되었고 어릴적 단오날에는 아낙네들의 그네타기 대회가 열렸었다.

사당내부의 문익공 불천위와 돌밭종가 4대봉사 신위 

상량문이 들어있는 대들보 

 

새로 갖춘 향나무 잿상 

사당앞의 350년된 향나무와 백일홍나무 

 

 

 

 

농암정사-聾巖 相奭 종증조께서 세우신 정자로 유림들과 강론을 펼치시던 곳으로 

한일합방후 그의 손자 景萬 壽曄 삼종숙께서 창씨개명에 항거하여 칩거하시며 독서에 몰두하시던 곳이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많은 문집과 유물들이 2차례에 걸친 도난으로 없어졌으나 영남대와 경북대 박물관등에 남아있다.

 

문익공 불천위사당 중건에 맞춰 묵은 때를 벗겨내고 서가를 새로 짜넣어 면모를 일신하였다. 

 

 

 

촘촘한 문살이 돋보이는 위로 여는 문의 모습 

 

대청에서 뒷산인 작오산(鵲烏山)이 보였으나 도로가 개설되어 후정이 좁아지고 담장을 당겨 쌓았다. 

 

 

고향마을을 지키시는 납실할매와 서우아지매-만수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