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언저리길 답사후기

가는골에서 장고개 넘어 뫼전골까지

돌까마귀 2023. 8. 3. 11:13

언   제 : 2023년 8월 2일 수요일

어디서 : 식장산 가는골입구-불당골,쇠정골 능선-대전시경계능선-장고개(炭峴)-뫼전골-주원천-세천저수지-세천근린공원

누구와  : 한밭언저리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10:00 대전역 동광장발 회남행 63번 버스를 타고 오신 길벗들과 함께

10:35 폭염경보가 내려 무척 무더울것 같은 불당골 길을 포기하고

세천공원로 옆의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붙어 자라는 異種連理木을 잠시 둘러보고

단체 사진을 한장 찍은 뒤

식장산 불당골과 쇠정골을 가르는 능선을 타고 대전시경계 능선을 향해 된비알을 오른다.

된비알이 끝나는 조망터에서 막걸리 한잔씩 나누고

<동신과학고등학교>

<저멀리 식장산 꾀꼬리봉과 불당골 서쪽 능선>

완만한 오르, 내리막을 걷다가 잠시 된비알을 올라 막걸리를 또 한잔씩 나누고

아주 힘든 된비알을 조금 올라서니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와 대전광역시 동구 세천동을 가르는 경계 능선이다

부서진 평의자와 멀쩡한 평의자가 놓여있는 넓은 곳에 자리를 깔고 한시간 동안의 오찬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니

오늘 산행에서 제일 험한 된비알 꾀꼬리봉 오르는 길이다.

구급약함과 낡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쉬며

기력이 전만 못한 '마중물' 일요팀장을 기다려

꾀꼬리봉 우회로를 돌아

장고개를 향해 편안한 능선길을 지나며

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를 한장 찍고

첫번 째 갈림길에 닿으니 옥천군에서 멋진 산책로를 만들고 있다.

일부단창 만인막당(一夫單槍 萬人莫當)  

삼국사기(서기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탄현에 목책(木柵)을 설치하여 신라에 대비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의 임종상서(臨終上書)에도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 하니, 원컨대 한 말씀 드리고 죽고자 합니다. 신은 항상 시세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무릇 군사를 쓸 때에는 그 지리(地理)를 살펴 상류(上流)에 처하여 적세를 늦춰 놓은 뒤에야 가히 보존할 수 있사오니 만약 다른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오면 육로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라며 탄현에서 적을 막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 한사람의 충신 흥수(興首)도 서기 660년(의자왕 20년)에 신라가 5만 군사로 쳐들어 오자 거듭 "탄현이 백제의 요충지이며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창 한자루로 만 사람을 막을수 있는 곳(一夫單槍 萬人莫當)이니 마땅히 용맹한 군사를 뽑아 이곳을 지켜야 한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성충과 흥수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백제의 멸망을 가져 오는데 이때 신라군은 무방비의 탄현을 넘어서 한밭벌을 가로 질러 사비성으로 향하든 중 연산의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를 만나 주춤하다가 화랑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이 5천 결사대를 물리치고 사비성을 함락하였으니 이 고개는 백제의 멸망을 앞당긴 고개이다. 신라가 백제의 고토인 웅진에 주(州)를 설치하고 경주를 오가던 통로가 바로 탄현에서 삼징이(삼정동),널바위(판암동)를 지나 지금의 유성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1년 뒤 661년에 일어난 백제 유민들의 백제부흥운동에서도 백제부흥군이 신라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이 고개마루를 지켰다.

탄현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설혹 다른곳이 탄현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주요 교통로 로서의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 옛부터 충청도 옥천현과 공주목(유성), 회덕현을 이어주는 고개로 나제 동맹의 평화시대에는 두 나라의 교역로로 몫을 다하다가 충신의 충언을 듣지않고 백제 멸망을 앞당긴 이 고개는 1902년 경부선 철길이 놓이고 일제 강점기 국도4호선이 증약 세천을 거쳐 개통되기 전까지 많은 장꾼들이 대전 인동장과 옥천장을 오가던 곳으로 고개마루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사시사철 콸콸 솟는 샘이 있고 주막집이었을 법한 집터의 흔적도 몇곳 살펴볼수 있다.

 

장고개(탄현炭峴)의 남쪽 511m 봉우리는 국사봉 보루(堡壘)가, 북쪽 479m 봉우리는 꾀꼬리봉 산성이 있으며 시경계능선(식장지맥)을 따라 남과 북으로 많은 산성과 보루가 이어져 있으니 식장산 줄기가 지금의 휴전선 철책(GOP)과 같은 역할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대전땅을 살짝 벗어나 옥천땅 들마루에서 또 막걸리 한잔씩 나누고 일어나

1600년 전 백제와 신라군사들이 목을 축였을 샘물도 한 바가지 씩 마시고

주원천 본류를 만나기전 조금은 아쉽지만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또 막걸리 한순배씩 돌린다.

땀과 더위에 범벅 되었던 몸과 마음을 다스린 뒤 다시 길을 나서니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주원천 본류를 건너니 대전둘레산길 4구간 식장산길과 만나니

이름하야 철탑삼거리라 불리는 곳인데 실제 철탑은 '식장산전망대길' 도로 옆에 있다.

말고 깨끗한 주원천 물에 온몸을 담그고 남은 먹거리를 모두 비우니

세천저수지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라이언'님의 애마를 타고 간 판암동의 맛집은 돌까마귀가 생전 처음 가본 곳이지만

9.000원 짜리 밀면 맛은 대전 최고를 넘어 한국 최고라고 감히 우겨본다.

6명X9천원을 통크게 쏴 주신 失業者 '마중물' 일요팀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