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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육백마지기 메밀꽃밭 가을여행기

돌까마귀 2023. 9. 27. 08:44

소설 배경과 청옥산 육백마지기 가을여행 장소로 제격

강원도 평창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고원 도시라 불린다.

이효석(1907~1942)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친숙하다.

최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SNS)에서 뜬 육백마지기라는 곳도 있다.

이색적 풍경의 차박 장소로도 유명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

서울에서 평창을 찾아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서울역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1시간 40여분 후에 평창역에서 내렸다.

대합실 안내판에는 해발 660m 지점에 있어 KTX가 정차하는 역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적혀 있다.

밖으로 나가자 도로 건너편 너머로 산이 겹쳐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역에서 이어지는 도로가 내리막길이다.

평창에는 해발 700m 이상의 지대가 많다.

700m는 인간의 생체리듬에 가장 좋은 고도라고 한다.

한여름에는 시원하다.

눈이 내리면 겨울 스포츠를 즐기려는 이들이 찾는다.

이곳 출신 소설가 이효석이 고향을 무대로 집필한 소설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다고 묘사한 문장은 너무나 유명하다.

가을에는 만개한 메밀꽃밭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소설에는 봉평장도 나와 친숙함을 더한다.

 

메밀꽃 풍경과 이효석 문학시설

이효석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에는 건너편 하얀 메밀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들이 메밀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효석문학관에는 1936년 당시 '모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이 실린 문예지 '조광'을 비롯해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인근에는 효석달빛언덕이 있다.

입구는 작아 보이는데, 막상 들어서면 메밀꽃밭이 펼쳐져 있다.

소설에 나오는 나귀 모양을 한 조형물도 서 있다.

나귀는 주인공과 반평생을 같이 지내며 장을 옮겨 다닌 짐승으로 묘사된다.

이곳에선 재현된 이효석 생가와 근대문학체험관 등도 찾아볼 수 있다.

평창을 방문했을 때는 효석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행사장에는 광활한 메밀꽃밭이 눈에 띄었다.

키 50~80㎝의 줄기에 작은 메밀꽃이 활짝 피었다.

소설에 나오는 달을 형상화한 듯한 모형, 펼친 책 모양의 조형물 앞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다 보니 이때만 볼 수 있는 계절의 풍경이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날이 어두워지자 길 건너편 언덕 쪽에 있는 '소금을 뿌린 듯'이라는 문자 간판에 조명이 들어왔다.

 

복작복작한 봉평 장날

평창역에서 차로 10여분 걸려 찾기가 쉽다.

골목길 입구에서부터 형형색색의 천막이 보인다.

2일과 7일이면 봉평장이 서는데, 방문한 날이 장날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니 꽤 넓다. 과일, 반찬, 건어물, 생선, 마늘, 밤, 즉석에서 짠 기름, 의류, 장난감, 화분 등 다양한 물건을 판다.

더덕을 파는 곳에선 특유의 더덕 향에 코를 킁킁거렸다.

단연 눈길이 가는 곳은 여러 음식을 파는 거리다.

은근하면서도 고소한 냄새에 몸이 먼저 방향을 잡는다.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붕어빵, 감자전, 오랜만에 보는 수수부꾸미, 올챙이국수, 삶은 옥수수….

상인들은 가격이나 재료, 조리법을 묻는 손님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며 능숙하게 조리기구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냈다.

그중에서도 메밀전 부치는 방법을 눈여겨봤는데, 가게마다 다른 듯했다.

달궈진 팬 위에 반죽을 둥그렇게 먼저 만들어낸 뒤 배추나 파 같은 재료를 올리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재료를 먼저 올린 뒤 반죽을 두르는 곳도 있다.

사용하는 배추도 서로 달랐다. 한쪽에선 배추김치를, 다른 쪽에선 배추 동치미를 쓰고 있다.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 음식 맛을 찬찬히 느끼고 싶어 인근 음식점으로 향했다.

메밀국수, 비빔국수, 메밀전, 메밀전병을 시켰다.

면부터 시작했다.

역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뒷맛이 쌉싸름하다.

다음은 메밀전병이다.

묵은지를 썼다는 전병은 매콤하지만, 이 역시 강한 맛은 아니다.

메밀전 역시 은근한 메밀 맛에 아삭한 배추의 식감이 더해졌다.

이후에 풍경을 보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 터라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른 식당에서 메밀 음식을 포장해 왔다.

만두피에 메밀을 넣어 만든 만두, 메밀묵이다.

김치와도 맛이 잘 어울렸다.

메밀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과거에 구황작물로 통했던 메밀이 이제는 별미가 됐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육백마지기

육백마지기는 청옥산(해발 1천256m) 정상 부근에 있다.

지명은 그만큼 넓은 평원이라는 뜻이다.

고원에는 풍력발전기가 여러 대 서 있다.

봉평면에서 육백마지기가 있는 미탄면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방문했던 날에는 쌀쌀한 날씨 속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근처에 다다르자 2㎞ 정도 오르막길을 더 가야 했다.

울퉁불퉁한 길에 차가 꽤 흔들리기 시작했다.

길을 올라갈수록 멀리 있던 풍력발전기가 크게 다가온다.

정상에 오르자 운무가 낀 산 아래 풍경이 펼쳐진다.

풍경에 감탄하는 함성이 점점 커졌다.

이곳에선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주변이 고즈넉하니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고원의 이색적인 풍경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다양한 자연의 풍경

맨 위에 있는 풍력발전기 근처 전망대에 올랐다.

비가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고, 운무가 풍경을 뒤덮는가 싶더니 다시 조금 걷히기도 한다.

몇시간이나 위치를 바꿔가며 풍경을 음미하기가 좋다. 쌀쌀한 날씨지만 아직 지지 않은 꽃도 보인다.

주차장 근처 안내판에는 청옥산 생태단지 조성사업이 설명돼 있다.

토사 유출을 최소화하고 방문객에게 볼거리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야생화 단지 등을 통해 자연 친화적인 복원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샤스타데이지가 활짝 핀 6월의 풍경이 유명하다.

하지만, 가을날에 처음 와 본 사람에게도 분명 이색적인 볼거리였다.

인근에는 '잡초 공적비'가 서 있다.

공적비에는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비를 세운다고 적혔다.

그 밑에는 청옥산 육백마지기 생태농장이라고 쓰여 있다.

근처에 있는 카페 겸 식당에서 곤드레밥과 감자전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맑은 날이 아니었고 비마저 내렸지만,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한 것 같았다.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0월호에서 김정선 기자의 글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