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언저리길 답사후기

보문산 동녘에 숨어있는 믿음의 흔적을 찾아서

돌까마귀 2023. 10. 26. 10:51

언   제 :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어디서 : 대전 중구 옥계동, 호동, 석교동의 보문산 자락에서

 

10월 25일 독도의 날

보문산을 좋아하고 대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옥계동 솔빛아파트 뒤의 보호수 느티나무 밑에서 길을 나선다

10:20 옥계동 84  '목은 이색 대전 영당'에 올라 

기념사진을 한장 찍고 있는데

지각생 '청마'님이 헐레벌떡 뒤따라 오셨다.

이색 초상 - 대전영당본 (李穡 肖像 - 大田影堂本)

고려말 3은(三隱) 중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초상화이다. 이색의 초상화는 원래 관복차림과 평상복차림의 두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복차림만 전해진다. 관복차림의 그림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것으로 모두 4본 5점이 전해진다. 가로 78.7㎝, 세로 146.3㎝ 크기의 대전영당본(大田影堂本)은 헌종 10년(1844)에 옮겨 그린 것으로 누산영당본과 동일한 형태와 규모이며, 뛰어난 화가에 의해 옛 그림 화풍이 잘 표현된 초상화이다. 현재 초상화는 대전시립박물관에 모셔져있다.

옥계동 '즐거운 유치원' 뒤 능선을 따라 나가며

'은진송씨' 문중의 묘지가 무수하게 펼쳐저 있는 아주 완만하고 편안한 이사동 산줄기에서 

멋진 주변 경관에 발걸음은 자꾸 늦어진다.

대전둘레산길 1구간 보문산길의 오도산 위에 서있는 사한정(沙寒亭)도 보이고

저멀리 흐미한 충남 최고봉 서대산 오른쪽으로 대전둘레산길 3구간의 국사봉과 강바위산, 비파산성이 연이어 보인다.

대전 최고봉 식장산도 보이고

자느리 고개를 넘어 이사동에서 제일 높은 200m봉에 올라서니 길을 잃었던 양 두마리가 기다리고 있고

막걸리 한순배를 나눈 뒤

'보문산행복숲길' 이사동 진입로에 내려서니

따스한 가을 햇빛은 길벗들을 반겨준다.

보문산 시루봉에서 남쪽으로 뻗다가 이사동전망동에서 동쪽으로 휘어내린 산줄기는  

남쪽은 옥계동 모암골, 북쪽은 호동 범골을 가르며 대전천까지 흘러 내린다.

보문산행복숲길 호동 진입로와 합쳐진 임도는

호동 쉼터에 닿으니 

12:25 점심상을 차리고 함께 한 '김순표'님은 오후 일정 때문에 범골로 내려 가신다.

13:00 점심상을 접고 행복숲길을 따라 나가다

호동석불에 올라서니

'마중물' 일요안내산행팀장의 기력이 예전만 못하다.

"호동 석불님에게 기력충전 좀 받으세요"

"네 열심히 받겠습니다"

보문산성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가파른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곳곳에서 조망도 즐기다가

보문산 행복숲길을 가로 질러

석교동 무명약수터에서 잠시 목을 축인 뒤

석교동 산 4-2번지 감투바위로도 불리는 '석교동 민불'에서

기념사진을 한장 남긴다.

기도터와 돌탑을 둘러 본 뒤

또 하나의 기도터를 지나

석교동 산 18-1 '보석천약수터'에서 보문산행복숲길에 올라

왼쪽(南)으로 두 모퉁이를 돌아나가

"대전시민 행복기원 약사여래불" 위의 기도터에 올라 

마중물 일요팀장님이 보문산 산신령께 삼배를 올린 뒤 飮福을 하니 우리 단체의 모든 산벗들께서는 무탈하시리라.

다시 보석천 약수터로 되돌아 나와 데크계단을 올라서 산허리를 돌아 나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보문산마애여래좌상 (寶文山磨崖如來坐像) 앞에 닿았다.

복전암(福田庵)에서 보문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1㎞쯤 올라간 곳에 위치한 높이 약 6m의 바위 남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다. 일명 '장수부처'라고 불린다. 두광(頭光) 신광(身光)을 지니고 연화대좌 위에 앉은 부처를 얕은 부조(浮彫) 선각(線刻)으로 새겼는데, 얼굴과 어깨부분은 얕은 부조기법으로 입체감을 살렸으며 그 아래 부분은 선각에 가깝게 처리하여 마치 바위에 그림을 그린 것 같다. 불상의 머리 위쪽의 바위가 균열되면서 머리의 오른쪽(향좌) 나발(螺髮)이 일부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이목구비는 큼직한 편으로, 깊게 패인 눈썹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이 날카롭고 분명하다. 눈은 가늘고 길게 뜨고 있는데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콧잔등은 평평하고 입술은 두툼하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아래로 쳐져있어 다소 침울한 느낌을 준다. 귀는 큼직하고 귓불이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았으며 목에는 두툼한 삼도(三道)가 두 줄만 표현되었는데, 마치 목걸이를 두른 것처럼 아래로 쳐져있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부분이 마멸되어 분명하지 않으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승각기(僧脚崎)를 입고 양 어깨에 걸쳐 통견으로 입었는데 가느다란 옷주름을 따라 붉은 칠을 했던 흔적이 보인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으며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었고 왼손은 배 위에 얹었으나 마멸이 심하여 뚜렷하지 않다.
간략하면서도 단순화된 조형감각, 토속적인 상호표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애불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장수바위가 반겨주고

통천문을 엎드려 기어서 지나면

장수바위 위에 올라서니 식장산이 훤하게 보인다.

선답자가 없는 우거진 숲과 큼직한 바위길을 뚷고 '복전선원' 비구니 산책로를 내려가다 

쉼터에서 마지막 술잔을 나누고

복전선원 여승들이 매끼 공양을 드리는 작은 부처님도 둘러보고

복전선원의 북쪽 담장길을 지나

여승절로 불리는 복전선원에 올라선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복전선원 목조대세지보살좌상(福田禪院 木造大勢至菩薩坐像)이 모셔져있는

전체높이가 53cm인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있으나 안정감이 있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어깨 폭이 넓지 않고 아담하다. 머리는 보계가 높아 솟아 있으며, 보관은 화연보주와 봉황, 꽃등으로 장엄 되었으며 중간부분엔 대세지보살의 특징인 정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턱 부분이 둥글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두 눈을 지긋이 내리떴으며, 오뚝한 코에 굳게 다문 입가에 엷은 미소가 있다. 목에는 三道가 표현 되었다. 법의는 양 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 양식이다. 하품중생인의 두손은 곡선적이며 매우 사실적이다. 세련된 옷주름선의 표현, 오뚝한 코, 적당한 신체 비례, 단정한 결가부좌 자세, 수평으로 가로지른 군의 표현 등 17세기 중반경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전선원 경내를 샅샅이 둘러보고

석교동으로 넘어가 동명중학교 뒤로 이어지는 

솔밭 능선을 내려가니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봉소루(鳳巢樓)가 반겨주고

보문산 남쪽 기슭에 있는 봉소루는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 학자이면서 교육자인 남분봉(1607∼1674)이 학문을 가르치던 서재이다. 원래 봉소재라 불렸는데 ‘봉소’는 새들의 보금자리란 뜻으로, 실제로도 봉소루 주위에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 등이 많이 있어 많은 새들이 오가고 있다. 봉소루는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으로, 숙종 40년(1714)과 영조 34년(1758)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다.

안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이고, 누는 앞면 1칸·옆면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안채와 누가 붙어서 ㄱ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 정면에는 봉소루 현판이 걸려 있다. 1970년대에 건물을 고쳐 세웠으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범골로 22번길의 '따호'님 거실에는 버섯 닭 볶음탕이 끓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