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바로 알기

제22회 3.16 인동시장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돌까마귀 2025. 3. 15. 09:20

언.  제 :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어디서 :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 351-2 만세로광장에서

 

국민의례에 이어 삼일절노래제창 / 고운매합창단, 동구 어린이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 광복회 동구지회장, 고운매합창단 단무장

 

박희조 동구청장 기념사

 

"굴러온 돌" 소녀상과 노동자상이 '박힌 돌" 만세운동조형물을 쫓아내서

 

돌까마귀가 3개월 동안 1인시위를 벌인 끝에 

 

그나마 이렇게 한쪽 귀퉁이로 돌아오게하였다.

 

이장우 대전광역시장 기념사

 

대전 독립만세운동 '최초' 논란…동구 vs 유성, 진실은?

동구 인동 만세운동이 최초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유성장터만세 운동이 시기상 더 빠르다는 지적 나와

대전 지역에서 최근 3·1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열린 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에 대한 정확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동구 산내면 만세운동이 그간 최초로 알려졌지만, 시기적으로 유성장터 만세운동이 더 앞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전 동구와 유성구는 지난 14일 각각 ‘제22회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와 ‘2025년 유성장터 만세운동 및 의병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 같은 독립만세운동은 대전과 충남 지역의 항일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지만, 시기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우선, 대전 지역 만세운동의 효시는 산내면 출신 양사길 선생이 주도한 1919년 3월 16일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이 촉발제가 되어 대전 시내는 물론 유성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919년 3월 16일, 지족리에서 이상수·이권수 형제가 대형 태극기를 마을에 게양한 후 유성시장으로 나가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작한 ‘유성장터 만세운동’이 더 앞선다는 주장도 있다. 이후 3월 31일과 4월 1일에는 주민들이 헌병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일본 헌병의 발포로 한 명이 숨지고 다수가 체포되는 등 대전 지역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 재야 학계와 시민단체는 3월 16일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동시장에서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날짜는 3월 16일이 아닌 3월 27일이며, 이날 대전장(인동)에서는 김창규, 조상련, 윤명화, 김완봉 등이 주도해 200여 명의 군중이 합세한 가운데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초의 대전 독립만세운동은 유성장터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인 인물이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사무처장·교육연구소장이다. 
그는 “3월 16일 인동 독립만세운동과 관련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훈을 받은 사례는 물론 재판 기록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20년 전 독립운동가를 만들기 위해 조작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문화계에서는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한 문화계 인사 A씨는 “이는 단순한 해묵은 논쟁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후대가 과거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25년 3월 17일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의 글 퍼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