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악마'로 규정했던 동물, 기록에 남은 경악(驚愕) 스러운 수치( 羞恥)

동물병원 진료대 위 작은 사랑앵무의 희미한 숨소리에 가슴을 졸입니다. 수의사로서 저는 매일 생명의 경계에 선 동물들을 마주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숨소리가 내 진료대 위의 한 마리를 넘어 전 지구상에서, 혹은 우리 땅에서 영원히 멈춘다면 어떨까요? 그것을 우리는 '멸종'이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한 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 그 사라짐이 우리 삶에 어떤 구멍을 내는지 실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종의 멸종은 단순히 동물의 숫자가 '0'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년을 이어온 역사가 통째로 삭제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의 설계도인 DNA, 그 거대한 뿌리 전체가 지구상에서 증발하는 일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생태계는 정교하게 짜인 그물망과 같습니다. 한 줄이 끊어지면 그물 전체가 헐거워지듯, 한 종의 멸종은 공생 관계에 있던 다른 종의 동반 멸종을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새로 시작하는 이번 연재 '이하늬의 멸종위기동물'을 통해,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동물들의 '슬픈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합니다.
대부분 멸종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밀어냈는지, 그 잔인하고도 안타까운 기록을 직면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 바로 '한국늑대'입니다.
얼마 전,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했던 늑대 '늑구'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늑대 한 마리의 탈출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다행이 무사히 포획되어 동물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회색늑대는 아주 드문 동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늑대'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현재 한국 야생에서 한국늑대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사실상 '절멸' 상태입니다. 즉, 우리 산천에서는 더 이상 늑대의 하울링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오월드에서 복원 중인 늑대들이 순수한 한국늑대 혈통인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땅에서 그 맥이 끊겼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아기 돼지 삼형제' 등 각종 이야기와 동화 속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던 늑대는 왜 그토록 허망하게 남한에서 사라졌을까요? 그 비극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늑대 멸종의 첫 단추는 일제강점기에 끼워졌습니다.
일제는 이른바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을 벌였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을 없앤다는 명분이었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식민지 지배 정당성을 확보하고, 가죽 등의 자원을 수탈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늑대는 매우 영리하고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입니다. 집단으로 사냥하며 가족을 지키는 늑대의 습성은 인간의 축산업과는 상극이었죠. 일제는 호랑이, 표범과 함께 늑대를 '악마'로 규정했습니다. 공식 기록에 남아 있는 수치만 해도 경악스럽습니다. 그 당시에만 2600여 마리의 늑대가 사살되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며 서로를 돌보던 늑대들에게 인간의 총구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우두머리를 잃은 무리는 흩어졌고, 새끼들은 굶어 죽었습니다. 한반도 생태계 정점에서 멧돼지와 고라니의 개체 수를 조절하던 '생태계 조율사'의 지위는 그렇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해수구제 사업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소수의 늑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총성보다 더 무서운 '소리 없는 살인자'가 한반도 전역에 뿌려집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시행된 '쥐잡기 운동'입니다.
보릿고개 시절, 곡식을 갉아 먹고 병을 옮기는 쥐를 박멸하기 위해 정부는 대대적으로 쥐약을 살포했습니다. 문제는 이 쥐약이 쥐만 죽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2차 소비자인 여우나 늑대가 먹으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용된 쥐약의 주성분은 '와파린' 계열이었습니다. 수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성분은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강력한 항응고제입니다. 이 약물을 섭취한 동물은 체내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전신 출혈을 일으키며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이 독극물은 한반도의 여우를 멸종시켰고, 끈질기게 버티던 한국늑대의 숨통마저 끊어놓았습니다. 1980년 경북 문경에서 포획된 한 마리의 늑대를 마지막으로, 야생 한국늑대의 기록은 사실상 멈춰버렸습니다. 그리고 1997년 서울동물원에 남아 있던 늑대를 마지막으로 남한 늑대의 명맥은 완전하게 끊기게 되었습니다.
늑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그래서 늑대 복원을 위해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바로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인 '스널피'의 탄생입니다. 당시 황우석 교수팀과 서울대 연구진이 한국늑대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죠. 그 복제 늑대는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져 사육되다가 노령의 나이가 되어 제가 진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진료대 위에서 스널피를 마주했을 때, 제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스널피의 세포는 늑대의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의 난자를 사용해 복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늑대의 난자를 채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또한 태어난 후에 대리모도 개였습니다. 수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종의 보존이란 단순히 DNA 복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늑대 무리 안에서 전수되는 사회적 행동, 사냥 기술, 그리고 그들만의 하울링 같은 '문화'가 거세된 채 실험실에서 태어난 존재를 진정한 '늑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인간이 멸종시킨 종을 다시 인간의 기술로 복제해 내는 이 광경은, 어쩌면 인류가 느끼는 거대한 죄책감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스널피는 노환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울동물원에 회색늑대가 있으나 '말승냥이'(늑대의 북한말)라고 안내가 되어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온 회색늑대이기 때문입니다.
혈통 논란을 떠나, 우리는 왜 이토록 늑대를 되살리려 애쓰는 것일까요? 그것은 늑대가 사라진 산천이 비정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천적이 사라진 멧돼지는 도심으로 내려와 사람을 위협하고, 고라니는 농작물을 초토화합니다. 포식자의 존재는 피식자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생태계의 순환을 돕습니다. 늑대를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서운 짐승 한 마리를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우리 땅의 '생태계 시계'를 다시 돌리는 일입니다.
한국늑대의 멸종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줍니다. 무지가 부른 학살(해수구제)과 효율만 따진 행정(쥐잡기 운동)이 결합했을 때, 수만 년을 이어온 생명이 얼마나 허망하게 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늑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인간의 오만함과 파괴된 생태계뿐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멸종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삵, 남생이, 반달가슴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늑대에게 했던 실수들을 이들에게 반복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6.5.19 오마이뉴스 이하늬 기자의 글 퍼 옴>
'퍼 온 글, 토론, 강의, 역사와 전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늑구 복귀 2주 만에 그림책이 나왔다고? (0) | 2026.05.22 |
|---|---|
| “24시간 설탕물 먹여 만든다” 믿었던 사양꿀의 불편한 진실 (1) | 2026.05.16 |
| 헌법 전문에 ‘윤 어게인’ 주장 넣자는 국힘…어그러진 개헌의 미래는? (0) | 2026.05.10 |
| 발 닿는 곳마다 수두룩…선 넘은 민폐 쓰레기 (1) | 2026.05.07 |
| 외국어 이름이라도 우리 기업. 한글 이름이면? (0) | 2026.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