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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간 풍습 5월 / 단오(端午)

돌까마귀 2022. 7. 16. 11:04

단오의 어원

단오는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 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 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구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속절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기수민속(奇數民俗)들이다. 이러한 기수민속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 조의 기록에 전한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이 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 수리란 고(高)·상(上)·신(神) 등을 의미하는 우리 의 고어(古語)인데, '신의 날', '최고의 날'이란 뜻에서 불리워 졌다고도 하며, 일설에 의하면 단오의 유래와 더불어 중국의 초(楚)나라 사람 굴원(屈原)이 수뢰(水瀨)에 빠져 죽었다 하여 수릿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단오의 유래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때에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 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 이었다. 그 후 해마다 굴원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단오의 풍속

입하(立夏)와 소만(小滿)을 지나 음력 오월(五月)이 되면 태양의 열기가 뜨거움을 더해 간다. 오월의 절기(節氣)로는 망종(芒種)과 하지(夏至)를 들 수 있다. 절기는 태양의 운행에 기초를 둔 것 이며, 농사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망종은 보리나 벼와 같이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 을 거두거나 모를 내는 절기이며, 하지는 낮 시간이 가장 긴 절기를 말한다. 이 시기의 농사력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오월조의 농사관련 부분에 잘 나타난다.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 하오리라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잠농을 마를 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섭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오월오일 단오날 물색이 생신하다.

외밭에 첫물따니 이슬에 저으며 모찌기는 자네하소 논심기는 내가 함세

들깨 모 담배 모는 머슴아이 마타내고 가지 모 고추 모는 아이딸 너 하여라  맨드람 봉선화는 네 사천 너무마라.

 

창포에 머리감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전통사회에서 농가의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였다. 또 단오날 새벽 상추밭에 가서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단오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이는 벽사의 효험을 기대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단오날 중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으로 생각하여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려 두기도 한다. 말려둔 약쑥은 농가에서 홰를 만들어 일을 할 때에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오시에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농 가에서는 대추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 습속이 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그네뛰기와 씨름대회

단오의 대표적인 놀이로 그네뛰기와 씨름을 들 수 있다. 그네뛰기는 단오날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면 한복을 차려 입은 부녀자들이 치마폭을 바람에 날리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놀이로 씨름대회가 있다. 씨름대회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관례로 황소를 상품으로 주는데, 경기방식은 요즘과 같이 토너먼트식이 아니라 도전자들을 모두 이겨 상대자가 없게 되면 우승을 하게 된다.

단오제· 단오굿· 제호탕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 조의 기록에 의하면 "궁중의 내의원(內醫院) 에서는 옥추단(玉樞丹)과 제호탕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 "공조(工曹)에서는 단오 선(端午扇)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궁중풍속이 전한다. 제호탕은 한약재를 꿀에 섞어 달인 약으로 더위가 심한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곽란이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부채

부채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도구로 단오 무렵이면 더 위가 찾아오니, 이날 부채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한 것을 '단오선'이라고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단오의 세시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지혜와 신체단련을 위한 놀 이, 재액을 방지하기 위한 습속, 풍농을 바라는 의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단오의 시절음식

단오의 시절음식으로는 수리떡과 약떡이 있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이 날은 쑥잎을 따다가 찌고 멥쌀 가루 속에 넣어 반죽을 하여 초록색이 나도록 하여 이것으로 떡을 만든다. 그리고 수레바퀴 모양으로 빚어서 먹는다."라는 풍속이 전한다. 이것이 바로 수리떡을 가리키는 것이다. 약떡은 전라남도 지역에서 전하는 시절음식이다.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떡을 하는 예가 잘 없으나, 떡을 할 경우에 5월 4일 밤 이슬을 맞혀 두었던 여러 가지 풀을 가지고 단오날 아침에 떡을 해 먹는데, 이를 약떡이라고 한다. 앵두가 제철인 단오 무렵이면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아이들의 주전부리로 옥수수나 쌀 등을 튀겨 주기도 한다. 또 이 날은 새 쑥을 넣어 만든 떡으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제주도에서는 보릿가루에 누룩을 썩어서 부풀게 만든 기루떡과 곤떡·새미떡·인절미·표적·율적·해어·실과 등을 제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