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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월 8일 李奉昌 義士 義擧일을 앞두고...

돌까마귀 2022. 12. 29. 15:37

보물 「이봉창 의사 선서문(李奉昌 義士 宣誓文)」은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으로 김구(金九)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제출된 것이다.

이 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 의사의 의거 행적과 한인애국단의 활동, 항일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로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1972.8.16. 보물 지정)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십삼년십이월십삼일 선서인 이봉창  한인애국단앞

 

이봉창 의사 의거

일명 ‘동경의거’로 알려진 사건으로, 1932년 1월 8일 도쿄의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裕仁)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의거를 말함. 이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봉창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 해 10월 비공개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음.

이 사건은 중국인들의 항일의식에 큰 영향을 끼쳐 일제가 중국의 항일운동을 무력으로 억압하고자 1932년에 일으킨 제1차 ‘상해사변’을 촉발시켰고, 이어서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가 거행되었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한인애국단

김구 주도로 결성된 항일무력단체로, 한․중 우의와 일본수뇌 암살 목적으로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되었으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도 이 단체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