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답사와 추억여행

어남동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와 유회당 묘소를 찾아서

돌까마귀 2023. 12. 8. 19:02

언   제 : 2023년 12월 8일 금요일

어디서 : 대전 중구 어남동 단재로229번길 47호 단재생가와 어남동 71번지, 단재로 482-24 귀후재에서

 

단재 선생이 '의열단 선언'이라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신지 꼭 100년이 되는 올해

며느님 이덕남 여사(부축받으시는 분)도 지난 11월 24일 당신 곁으로 불러 올리시고 맞은 탄신 143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10시 30분에 시작하는 기념식에 앞서 DMC어린이합창단의 합창 연습소리를 들으며

생가 주변을 한바퀴 돌아 보다가

좌로부터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최창희이사, 노덕일 대전중구문화원장, 이기전 산성마을신문대표도 만났다.

참가 내빈 모두에게 점심으로 떡국을 대접할 곳도 둘러보고

단재홍보관 앞으로 나가보니

식전공연을 펼칠 산성동풍물단이 막 도착하였으니

뒤 따라 기념식장으로 들어선다.

대전문화관광해설사회의 문경혜, 김진희 전 회장님과 이기봉 해설사님도 만나고

대전 땅 구석구석을 해집고 다니는 이광섭 대전시공식블로그기자와 중구문화원 사무국장님도 만나고

또 다른 합체를 보여주는 대전사랑 대전부르스팀도 만나고

대전향토문화연구회 김인수, 김긍원님도 만나고

한소민 대표를 비롯한 한밭문화마당 회원님들도 만나고 나니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43주년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단재약력소개

조선혁명선언문 낭독

이동한 중구청장 권한대행의 헌사

김승환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의 헌사

노덕일 대전중구문화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강만희 대전지방보훈청장의 축사가 이어진다.

작년과 달리 아주 따스한 봄날같은 날씨에 정치꾼들이 한명도 오지 않아 

돌까마귀는 편하게 기념식을 지켜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단재 문학상 시상에 이어

DMC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시작되고

독립군가에 맞춰 손뼉도 쳐보고

앵콜 곡으로 '고향의 봄' 노래까지 들은 뒤

참석자 모두 단재 동상 앞으로 나가 헌화를 시작한다.

선 후배의 만남도 이어지고

전역한 단재부대장도 만나고

마지막으로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최창희 단재기념사업회 이사와 함께 돌까마귀도 헌화를 한 뒤

맛있는 떡국으로 점심을 대접 받고 

계백장군의 애마에 올라 단재로를 대전시경계 끝까지 달려  

대전광역시 기념물 유회당 권이진의 묘역 (權以鎭의 墓域)도 둘러본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리지역 문화재'에 기술된 설명문>

권이진의 묘는 정생동에서 금산군 복수면 백암리로 넘어가는 길의 정상인 말구리재 아래, 중구 어남동 산6번지에 있다. 묘소는 1735년(영조 11) 1월 26일에 조성하였다.
권이진의 字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시호(諡號)는 공민(恭敏)이다. 조선 중기의 예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권득기의 증손이고, 송시열의 외손이다. 따라서 권이진은 가학과 우암학 및 윤증의 무실학(務實學) 등을 함께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권이진은 문과에 급제 후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다. 특히 호조판서로 국가재정 안정에 기여해 조선 최고의 호조판서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권이진의 경륜에 대해 성호 이익은 묘지명에서 “몸을 닦아 덕을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 인물로 평했다. 권이진의 저서로는 「유회당집(有懷堂集)」이 있다.
묘소의 매장 형태는 전주이씨와 합장묘(合葬墓)이고,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분묘의 외형은 유돌분(乳突墳)이다. 봉분의 하단에는 가로 147~114㎝, 높이 40~43㎝ 크기의 둘레석 14개를 설치했다. 둘레석의 하단부대석는 6~8㎝ 정도가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바닥면을 넓게 지지하도록 하였다. 묘역의 석물로는 신도비, 묘비, 문인석, 상석, 망주석이 있다.
묘비의 비문은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이 찬술했고, 글씨는 담운(澹雲) 조명교(曹命敎)가 썼으며,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지문(誌文)을 찬술했다. 문인석의 높이 170㎝, 전면폭 54㎝, 측면 두께 50cm이다. 서쪽의 문인석은 높이 161㎝, 전면폭 59㎝, 두께 49㎝이다. 형식은 양관을 쓴 금관조복형으로 폐슬을 늘어뜨리었다. 특히 금관의 경우 중앙 부분에 직선의 양梁 대신 가운데에서 ‘V’자로 대칭되며 구불구불한 구름 형상을 새겨 넣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동안이다.
신도비는 재실인 귀후재 전면 앞마당에 있다. 비신은 166×62×45㎝(높이×전면폭×두께)이다. 신도비의 비문은 정범조(丁範祖)가 찬술했고, 강시영(姜時永)이 글씨를 썼으며, 두전(頭篆)은 6세손 권영수(權永秀)가 썼다. 권이진의 묘는 조선 후기 18세기 사대부 무덤의 규모와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되돌아 나와 대전시경계산길 상태도 점검하며 백암리로 넘어 갔다가

오후 2시부터  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도 참석하여 청강을 하니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