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후에 오르는 산이 힘겹다. 입이 즐겁게 배를 채우고 나니 그만큼 다리가 수고로움을 감당하게된 것이다. 여러 기관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터라, 한 쪽의 흡족함이 때로는 다른 쪽의 짐이 되는 모양이다. 모자란 듯이 식사 양을 조절했어야 하는데 입 욕심을 덜어내기가 아직도 쉽지 않다.
식식거리며 오늘 산행의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땀을 흘리는데, 저 멀리 산등성이 위에서 누군가 연달아 내지르는 “야호”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건 퀴퀴한 소음으로 청정한 산 속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 의기양양하게 산울림을 즐기려는지 모르지만, 목까지 차오른 욕심 덩어리들을 토해내는 것처럼 역겨운 것은 웬일일까. 바닥까지 훌훌 다 내려 놓고 잠잠하게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는 산 속 토박이 거주자들을 놀라게 하는 외부 침입자의 무례한 고함소리처럼 들렸다.
시끄러운 길거리에 익숙해지려면 고성과 빠른 발걸음이 필요하지만, 호젓한 산 속에서는 속삭임이면 충분하다. 살랑대는 바람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처럼, 작은 소리와 다정한 눈짓으로 다가가는 게 산 속의 언어다. 우루루 떼 지어 왁자지껄하면 나무와 새, 바위와 구름, 바람과 풀 섶이 내는 깊은 소리를 알아차릴 수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나를 휘감아 오는 것은 내가 그러지 못해서일 것이다.
사람의 기세를 뽐내려 산에 오르는 게 아닌가 보다. 작은 걸음이 좋을 것 같다. 천천히 내딛어야 나뭇가지의 유연함처럼 뻣뻣해진 마음결이 풀어져 나무와 돌 사이로 들어설 수 있을 성싶다. 그래야 좁은 틀 속에 꼭 갇혀 있는 내 참 마음의 여린 줄기가 봄의 햇순처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무슨 과업을 이루어내듯 산에 성큼성큼 오르는 게 아닌가 보다. 산의 손짓은 정겹다. 그 그늘 속에 고요히 파묻혀 들어가 스스로 돌이 되고 나무가 되어 서로 얼싸안는 게 무던한 산의 바람이고 정서일 것이다.
문득, 맑은 개울물이 되어 이름 모를 풀들을 적셔주고, 푸드득 한 마리 새가 되어 서로 볼을 부비며 태고의 신비스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 우리들 순수한 마음도 정녕, 저 큰 “야호” 소리보다 속삭이는 이들 자연의 소리에 친숙하게 잇대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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