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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삼각지

돌까마귀 2024. 11. 15. 16:27

이인선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 노래, 1967년 발매 후 20 주간 인기 차트 1위,

노래를 부른 가수 '배호'는 1971년 29세에 신장염으로 사망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군인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이후 한국은 경제개발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뭉친 지도자와 국민이 한 몸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자 성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64년 1억 달러 수출을 하다가 1971년에 무려 10억 달러나 수출하였다. 외국에서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며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돌진적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급격한 ‘이촌향도(離村向都)’와 ‘계층이동’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기회를 잘 활용한 능력 있고 성실하며 운 좋은 사람들은 성공하였으나, 능력과 성실성이 부족하고 불운하여 이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즉,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시절 한국인의 희망을 상징하던 도시에서 성공한 사람과 뒤처진 사람 간의 명암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 가요계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배호는 바로 그 시절 외면적으로 밝고 명랑하게 그려지고 있는 도시의 이면에 드리워진 우울한 그림자를 딛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도회지의 실패한 사람들의 쓸쓸한 내면을 표출하는 노래를 불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작곡가 배상태는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다. 서라벌 예대 작곡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 대구 KBS 전속가수 1기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렇게 가요계에서 활동을 하다 그는 군에 입대하여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해병대 군악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그는 외출을 나와 삼각지에 있는 단골 술집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창 밖을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요즘 세상에 저런 순정파 사내가 있다니, 애고~ 한 여자를 못 잊어 허구한 날 헤매고 다니잖아 ㅉㅉ, 나도 저런 사내가 있었으면 평생을 같이 살겠는데"라며 중얼거리는 술집 아가씨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조금 전까지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던 그 사내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삼각지 로타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순간 배상태는 신을 영접한 무당처럼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오선지에 쓰기 시작하여 곧장 완성하였다.

1942년 중국 산동성 지난에서 출생한 배호(본명 배만금)는 KBS와 TBC 악단장을 지낸 큰외삼촌 김광수와 MBC 악단장을 지낸 작은외삼촌 김광빈 등 외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 한국 가요사에 빛나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내놓기 전에 그는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을 취입하였으나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하였다. 크게 기대하고 취입한 음반의 실패와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좋지 않는 건강 등으로 여러 시련에 시달리고 있는 그는 그 당시 종로 2가에 있는 궁전카바레에서 7인조 캄보밴드를 조직하여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이때 이미 지병인 신장병이 악화되어 공연하는 날보다도 집에 누워 있는 날이 많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배상태 작곡가는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배호에게 자신이 삼각지 술집에서 떠나간 여인을 잊지 못해 비에 젖어 걷고 있는 그 순진한 사내를 보면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를 주었다. 이 때 몸이 좋지 않는 배호는 장충동의 녹음실에서 의자에 겨우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 곡을 취입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 노래는 발매 후 20주간 인기 차트에서 1위를 하면서 배호는 그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로 등극하였다. 또한 이 노래에 이어 그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등의 노래가 연속으로 히트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그 후에도 여러 좋은 노래를 발표하여 인기가도를 달리던 배호는 1971년 7월 <마지막 잎새>, <영시의 이별> 등 그의 생애 마지막 음반을 발표하였다. 그 후 그를 평생 괴롭혔던 신장염이 더욱 악화되어 1971년 11월7일 만 29세로 사망하여, 많은 팬들의 애도 속에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묻혔다.

 

1981년 MBC 한국가요 조사에서 그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남자 가수로 선정되었고, 2005년 광복 60주년 KBS 가요무대 조사에서 그는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었다.

2001년 11월 삼각지 교차로에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세워지고, 인근 도로는 배호길로 명명되었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짖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도는 이 발길
떠나바린 그 사랑을 그리워 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2021-03-23 조갑제 닷컴,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22)에서 퍼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