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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거 이야기

돌까마귀 2024. 11. 3. 09:10

 

밤늦게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보신 경험들 대부분 있으실 겁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마다 증상들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처방되는 약이 있습니다. 소위 ‘링거'라고도 불리는 수액으로, 응급실내 수십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한 쪽 팔에 주사바늘을 꼽고 이 수액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아프면 당연히 맞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굳이 왜 모든 사람들이 응급실에 가면 수액부터 맞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병원이 괜히 병원비 더 받을려고 무조건 맞히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수분 1~2%만 부족해도 장기 손상

사람 몸의 70~80%는 수분이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러다 보니 쉴새없이 인체에는 물이 공급돼야 하고 더군다나 물을 마실 수 없는 위급한 환자라면 더욱 필요한 요소 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는 수분이 1~2%만 부족해도 이를 경고하는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이로 인해 갈증과 통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수분을 보충하지 않으면 장기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손상되며, 질병과 노화, 사망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수액 주사에는 포도당이나 생리식염수가 포함돼 있어 기본적인 영양분 공급이 가능합니다. 아파서 누워있는 환자에게 수액이 없다면 아마 조선시대처럼 간병인이 계속 미음이라도 떠서 먹여야 할 겁니다.

 

환자 상황에 맞는 약물을 신속히 주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수액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 투여 경로가 사전에 확보돼야 하는데 최초 주사된 수액이 그 기능을 합니다. 정맥과 연결된 수액 주사에 새로운 약물을 신속히 공급하는 것이죠. 응급환자의 경우 증세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게 약물을 공급하면 위급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수액의 중요성은 커집니다.

 

소화 과정 없어 포도당 같은 작은 분자로 구성

그럼, 이 같이 응급 환자들에게 중요한 수액 주사는 어떤 성분으로 구성돼 있을까요?

수액은 일단 소화과정이 없기 때문에 포도당과 같은 작은 분자 단위 성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용도에 따라 포도당/탄수화물, 아미노산/단백질, 지질/지방 등 영양분을 첨가해 제조합니다.

5% 포도당은 298mOsm/L으로 혈액의 농도와 비슷해 ‘등장액’이라고 불리는데, 0.9% 생리식염액도 마찬가입니다.

생리식염액에서 ‘생리’란 혈액의 농도와 똑같은 삼투압을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이밖에도 수액제는 Na, K, Cl 등 전해질과 아미노산, 지방, 미량 원소 등을 첨가해 만듭니다.

 

여기서 갑자기 왜 혈액의 농도와 똑같은 삼투압을 맞춰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삼투압은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수분이 이동해 서로 농도가 같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싱싱한 배추를 소금에 절일 때에도 삼투압 현상이 발생하는데,

농도가 더 높은 소금물이 배추의 수분을 흡수해 배추의 부피가 줄어들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만약 혈액에 일반적인 물을 주입한다면 농도가 높은 적혈구가 수분을 빨아들여 결국 터져버리게 됩니다.

이 같은 현상을 ‘용혈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헤모글로빈이 파괴돼 황달이 발생하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혈액 농도와 같은 수액 주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JW중외제약, 수액 국산화 선구자

국내에서는 누가 언제 수액을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응급실에서 수액 봉지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봉지 겉면에 ‘JW중외제약’ 표시가 많이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특정 회사를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국내에서 이 회사를 빼고 수액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국에 수액이 처음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때 입니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쓰던 군수용 생리식염액의 극히 소량이 특별한 또는 예외적인 경로를 통해 민간으로 흘러나온 것인데, 워낙 귀해서 의사들조차 좀처럼 구경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시절 이화여대 부속병원 초대 원장을 지내던 이기섭 박사가 대한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을 운영하던 이기석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수액이 부족한 의료 현장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시에는 맹장 수술을 받고도 수분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업상 여건을 고민하던 중외제약은 1958년 마침내 수액 개발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수액을 생산하는 업체도 없었거니와 의사들조차 수액 제조요법을 잘 아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당시 수액은 크게 약액과 유리병, 고무마개가 결합된 단순한 구조로 이뤄졌지만 이 모두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유리병뿐만 아니라 마개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멸균공정에서 마개 부분이 터져버리거나 병이 깨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수많은 실패끝에 이런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하며 1959년 10월 ‘5% 포도당’ 수액제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면서 수액사업의 기원을 열게 됐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기초 수액을 만들어 공급하는 제약사는 JW중외제약 / JW생명과학 제조, 대한약품, HK이노엔 등 단 세 군데뿐이며 선구자인 JW중외제약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중입니다.

 

<옛 유리병 링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