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조율시이(棗栗柿梨)’는 제사상 차림에 과일은 대추·밤·감·배의 순서로 배열한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제사상에 제물을 차리는 방식을 ‘진설법’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진설법은 조율시이와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것은 동쪽에 차리고 흰 것은 서쪽에 차린다)’가 있다. 최근 이러한 진설법이 근거 없는 원칙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상 제례의 지침서인 ‘주자가례’의 제사상 차림에는 과일의 구체적인 명칭을 제시하지 않았다. ‘과(果)’로만 그려져 있고 총 6종이다. 다만 주석서에는 계절에 수확되는 과일을 차린다는 뜻의 ‘시과(時果)’라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조율시이가 제사상의 기본 과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이들 과일이 국내 풍토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조선시대 유형원이 저술한 ‘반계수록(1769년)’에선 묘목을 심을 때는 뽕나무와 대추·밤·감·배나무를 비롯해 여러 과일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예전부터 집을 지을 때도 앞마당과 뒷산에 대추나무·밤나무·감나무·배나무를 심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만큼 우리 풍토에서 잘 자라는 나무라는 뜻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17부터 4년간 전국 종가의 제례음식을 조사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과일과 채소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어류에서는 지역별 특징이 두드러졌다”고 했다.
갯벌이 풍부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는 낙지와 꼬막을 제사상에 차리지만, 경상도에서는 올리지 않는다. 또 충청도와 전라도의 제사상에는 홍어가 올라가지만, 경상도에서는 문어를 최고 제물로 여긴다.
이런 현상은 주자가례 등의 모든 예서에 제물의 구체적인 명칭이 없는 탓에 자연스럽게 지역 산물을 중심으로 제사상을 차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김미영 연구위원은 “조율시이나 홍동백서 등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면서 “아마도 근대 이후에 민간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자가례에서 ‘향토(鄕土) 음식’을 중심으로 제사상을 차린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지역성을 비롯해 계절성과 시대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며 “수백 년 전 조상들이 드시던 음식과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오늘날의 제사상도 거기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해야 제례 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3.3.2 세계일보 배소영 기자의 기사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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