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 20일 굿모닝 충청에서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의 글 퍼 옴>
재밌고 통쾌한 드라마 가운데는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학창 시절 경험이 대개 있기에 학원물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학교생활이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여기에 학교 폭력도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교 폭력이 추억의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입시 중심 인문계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이제는 실업계고등학교가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등장하는 실업고의 이미지 연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
우선 충남을 배경으로 한 작품부터 보자. 드라마 ‘소년시대’에서 ' 임시완'이 역할한 '장병태'는 늘 맞고만 살았는데 전학 간 학교에서 완전히 달라진 입지를 갖게 된다. 아버지가 불법 댄스 교습소를 개설해 운영하다가 단속에 걸려 야반도주하는 바람에서 온양에서 부여로 전학을 가게 된다. 장병태가 전학을 가게 된 학교는 부여농업고등학교였다. 그런데 ‘부여의 소피 마르소’라고 불리는 부여여상의 '선화'를 두고 부여농고와 부여공고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지고 만다. 웃음을 유발했던 똥물 대전(大戰)이 그 정점을 이뤄 화제가 되었다. 어쨌든 부여공고는 일진이 가득한 학교로 그려진다. 부여여상, 부여농고뿐만 아니라 부여공고 학생들은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불량한 복장에 담배와 술, 폭력을 일삼는 학생들로 묘사되기에 바쁘다. 그래도 자신의 전공과 면학을 같이 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더 많음에도 말이다. 농고는 순수하기라도 하지 공고 학생들은 더 싸움을 잘하고 불량스러우며 거칠게 묘사된다.
특히 공고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드라마 ‘스터디그룹’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주인공 '윤가민'은 성적을 높여 대학에 진학하려고 일부러 유성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유성공고는 ‘조폭영재학교’라고 불릴 만큼 폭력적이고 불량 학생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그려진다. 교복은 거의 걸치지도 않고 실내에는 담배를 대놓고 피울 수 있는 드럼통을 곳곳에 배치했다. 학교별로 이뤄져야 할 실험 실습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 슬럼가에 있을 것 같은 일탈적인 모습들이 극단적으로 설정되었다. 성적이 아니라 싸움 순으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가 정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에 재능이 없는 윤가민은 유성공고에서도 바닥을 기는 성적을 보이게 되고 스터디그룹을 조직해 대학 진학을 위한 성적 올리기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스터디그룹을 만드는 것조차 힘들 뿐만 아니라 온갖 장애물이 닥치게 된다. 하지만 윤가민은 사실 알고 보니 ‘힘숨찐’이었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싸움만은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인데 이를 감추고 있었다. 그 정도 싸움 실력이면 머리가 매우 좋은 것으로 생각되어 공부를 조금만 해도 성적이 급상승할 듯싶다. 어쨌든 지루할 만하면 윤가민이 터트려주는 시원하고 통쾌한 활극이 재미를 주고는 한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학생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윤가민의 활약은 대리만족을 시켜주기에 충분하다. 현실이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판타지 픽션으로라도 해결하는 듯싶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터디클럽으로 학교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는 시도는 신선하고 의미가 있어 보였다. 현실과 이상의 매시업이다.
하지만, 공업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도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교육 관점에서 전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업고는 그 학교의 정체성에 맞게 특화된 전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일 수도 있다. 더구나 윤가민은 결국 공업고를 자신의 내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었다. 더구나 이런 학교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등장하다가 웃음의 대상이 되어 묘사되거나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혹여 공업고에서 면학에 힘쓰고 있는 학생이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공업고는 과거형이 아니다. 사회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공업고의 상당수는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아직도 공업고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곳도 있다. 이런 학교들은 대개 나름의 전통과 명예 그에 따른 자긍심으로 전문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을 계속하고 있다. 웬만한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입학 성적이 우수하고 세계기능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한다.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졸업생들도 나름 일찍 사회에 진출해 자리를 잡거나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학교 폭력의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공업고 등의 실업계 학교가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그 이름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공부를 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들을 드라마나 영화, 웹소설과 웹툰은 유의해야 한다.
소수자들을 보호해야지, 그들을 수단화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에도 어긋나고 민주 공화정의 원칙에도 반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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