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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죽음에 서명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이서현 기자의 글 퍼 옴>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실은 죄책감이었다. 쉽게 놓아줄 수 없었던 이유였다.고미애씨는 2021년 6월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울음과 한숨, 그리고 한탄이 뒤섞인 곳. 경기 일산의 한 병원 중환자 대기실, 그곳에서 미애씨는 한 장의 종이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들 왜 포기해? 아직 숨 쉬고 있잖아!" 미애씨 고성이 대기실 구석구석을 헤집어놨다. "선택해야지. 어려운 건 알지만." 냉랭한 눈빛으로 오빠는 대꾸했다. "저건 아버님이 살아 계신 게..

광복 80주년 / 갑자기 찾아온 광복

오래고 간절했던 국민의 염원은 너무나 갑자기 현실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모두 거리로 뛰쳐나올 만했건만, 증언과 기록에 따르면 그날은 조용했다고 한다. 누구는 ‘해방’이라고, 누구는 ‘독립’이라고 부르는 광복 당일의 풍경이었다. 광복은 극소수를 빼곤 예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이라 할 일본 패전의 분위기는 1945년 들어 스멀스멀 번졌다. 일제가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서 “전쟁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간다”고 떠들었는데도 그랬다. “도쿄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불바다가 됐다(도쿄 대공습·45년 3월 9~10일)”는 얘기가 돌았다. 또한 공습에 대비해 국내에 방공호를 짓고 대피 연습까지 하는 것은 전황이 결코 일본에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전쟁 상대방이 거의 코앞까지 들이닥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