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어디서 : 대전 동구 이사동에서 절고개 넘어 중구 구완동 지나 무수동까지
지난 11월 25일 올린 한밭언저리길 후기에 "가을하늘"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대전의 보물 김민섭님이 댓글을 다셨는데 눈에 확 띄는 내용이 있어 동짓달 초사흘 돌까마귀 귀 빠진 날 한파주의보를 뚫고 길을 나선다.
소룡골행 52번 버스를 내려 윗사라니 四友堂 옆 寒泉을 지나며 명판을 살펴보니 沙蘭里 淂山 밑의 샘이라 적혀있는데
蘭谷 宋炳華가 이곳에 살면서 봉강정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칠 때 부터 沙寒이 沙蘭으로도 불려졌었구나 생각을 하며
光影池를 지나 수석당(壽石堂) 송창재(宋昌在)가 소화동천(小華洞天)으로 불렀던 물방아골(水砧)로 들어간다.
가을하늘님이 댓글에 달아준 암각서(巖刻書)를 찾기 위해 먼저 소화동천을 살펴 본 뒤
꽁꽁 언 무암천을 20m 쯤 내려가니 바로 눈에 띄는 바위가 있다
흐릿하여 판독을 할수없지만 걱정일랑 접어넣는데
가을하늘님의 판독문이 있지 않는가 ㅎㅎㅎ
송창재 선생은 이규홍 의병장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왜병에게 여러차례 끌려가 문책을 받았는데 후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곳에서 산신과 미륵님께 제를 지냈다.
물방아골을 되돌아 나와 광영소류지 주변을 이곳저곳 살피며 옛 표석을 찾아보지만 돌까마귀 눈에는 보이지 않아
가을하늘님께 구원을 요청하니 흔쾌히 알려주시어 한달음에 달려간다.
봉강정사 앞 울타리 옆에 바깥을 보고 앉아 있었으니 보통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았으리라 ㅎㅎㅎ
미완성의 화장실에서 巨事를 마치고 나와 오도산을 올려다 보며 다시 한번 이규홍 선생을 되새긴 뒤
잠겨있는 문 틈으로 三賢을 모신 동로사도 들여다 보고
영귀대(詠歸臺)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밟고 올라
담장 너머로 송병화선생을 모신 오적당도 살펴본다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밑을 지나 윗사라니 마을 서편 포도밭 사잇길로 들어서
절골길을 올라가니 이사동 유교민속마을누리길 안내판이 반겨주고
봉강정사를 뒤 돌아보니 희뿌연 비파산성(琵琶山城) 위로 '겨울하늘'이 쨍쨍거린다.
봄이 되면 붉은꽃 흰꽃 분홍꽃을 피울 매화밭을 지나
절고개를 넘어서니 이곳부터는 중구 땅 이름하여 구완동 어청골이니
구 한말 극재 송병관(克齋 宋炳瓘)이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던 마을이다.
운남로라 이름 지어진 신작로를 따라 내려가면
임진왜란도 비켜 갔다는 완전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대전역을 오가는 33번 구완동버스의 종점이 있고
고속도로 밑을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완전고개를 넘어 신완전마을이 있는 동구 소호동으로 이어진다.
구완천 제방 위에서 뒤돌아 본 어청골 위로 보문산의 마루금이 선명하고
구완천 물줄기가 좁디좁은 이 골짜기를 빠져 나가는 곳에 고속도로가 뚫렸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들은 되돌아 갔으리라.
고속도로 밑을 또 한번 빠져 나가면 운남로는 근심없이 살수 있다는 무수동(無愁洞)으로 이어지고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유회당(有懷堂)과 기궁재(奇窮齋)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아 있고
실개천을 따라 매년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를 하는 밭을 지나니 초가지붕을 한 정자가 반겨주는데
동쪽에는 관가헌(觀稼軒), 서쪽에는 수월란(受月欄), 남쪽에는 광영정(光影亭), 북쪽에는 인풍루(引風樓)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중구 보호수(6-2-25-2-1호)인 큰 은행나무 2그루와 배회담(徘徊潭)이라는 작은 연못이 옆에 있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동권씨(安東權氏) 유회당종가(有懷堂宗家)를 살펴 보고
조금전에 지나간 33번 외곽버스가 구완동종점에서 되돌아 나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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