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칠곡 감호당 (漆谷 鑑湖堂)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2길 6-5
감호당은 1623년에 석담 이윤우가 경치를 즐기고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지었으나 그의 교육의 장소이었고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소 이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석담의 사회적 위상뿐만 아니라, 영남의 3대 반촌으로 전해지고 있는 매원 마을의 역사적ㆍ상징적 의미가 큰 역사문화 환경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건립연대를 17세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널영쌍창이 유존하고 있으며, 위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제공형 보아지가 이색적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칠곡 지경당 (漆谷 止敬堂)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104-5
지경당은 경북 남부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튼 ‘ㅁ’자형 배치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서고를 둔 안채의 공간구성과 팔작 지붕처럼 꾸민 가구와 지붕의 구성이 돋보이며, 사랑대청 상부의 흔치 않은 천장형식이 눈길을 끈다.
19세기 중후반 이후의 양식 편년을 읽게 하는 키 큰 창호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가옥으로 내외담 등 일부가 멸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립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칠곡 해은고택 (漆谷 海隱故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104-10
조선 중기 문신 석담 이윤우(1569∼1634)와 그의 아들 낙촌 이도장(1603∼1644)이 정착한 매원마을에 후손들이 세운 집 중 하나이다. 안채인 정침은 이동유(1768∼1836)가 정조 12년(1788)에 짓고 사랑채는 순조 16년(1816)에 지었다. 그 뒤 이동유의 후손 이철연(1851∼1905)의 호를 따라 ‘해은고택’이라고 부른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 곳간채, 정침을 ㄷ자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정침 오른쪽에는 담장을 둘러 별도로 사당을 두었다.
정침은 앞면 6칸 반·옆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사랑채는 앞면 7칸·옆면 1칸 반 규모이고,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또한 곳간채는 앞면 6칸·옆면 1칸 규모이며, 대문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모든 건물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 집은 매원마을의 주택 중에서 지은 시기가 18세기 말로 오래되었고 규모도 잘 갖추고 있어 시대와 지역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칠곡 진주댁 (漆谷 晉州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30-5
칠곡 진주댁은 왜관읍 매원마을의 상매에 위치하고 있으며, 박곡 이원록의 9세손 상립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진주댁은 전면의 농경지와 동정천, 못안들 안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원래 안채⋅사랑채⋅곳간채⋅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진 부유한 양반가 후예의 주택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안채와 사랑채는 일제 식민지배기의 새로운 양식이 부분적으로 수용되긴 했지만, 대체로 매원마을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계승⋅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안채는 좌우측면에 눈썹지붕을 달아 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확장했고, 대청 전면에 문을 달아 외기를 막도록 했다. 이런 모습은 실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조선 후기 상류가옥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칠곡 중방댁 (漆谷 中芳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104-2
칠곡 중방댁은 매원마을의 자연부락 중 상매(上梅)에 자리잡은 부유한 양반의 상류층 가옥으로 조선후기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현존하는 안채와 중사랑채 외에도 사랑채, 광채가 있어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었고, 대문채와 마구간, 연자방아, 장독대 등의 시설물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중방댁의 건축에 사용된 양질의 목재는 물론 보기 드물게 큰 안채의 규모(정면8칸, 측면 2칸)에서만 보더라도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양반가의 살림집으로 볼 수 있으며, 영남의 3대 반촌(班村로) 중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는 매원마을의 주택건축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비지정 문화재 박곡종택(朴谷宗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21-1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묵헌종택 (默軒宗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로3길 13-5
묵헌 이만운이 죽은 뒤 유림의 뜻에 따라 조선 순조 20년(1820)에 세운 건물이다.
묵헌 이만운(1736∼1820)은 퇴계, 한강, 문익공을 잇는 정통 성리학자로 우리 국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증보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원래 이 집은 대문채와 방앗간채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랑채와 정침, 사당이 남아 있다.
정침과 사랑채는 문익공 이원정의 아들인 이한명(1651∼1681)이 조선 현종11년(1670)에 세웠고, 사당은 순조 20년(1820)에 유림에서 세웠다.
사랑채는 앞면 10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중문이 없이 10칸이 연이어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정침은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로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배치형태가 개방적이고, 지역적인 특색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동산재 (東山齋)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동산1길 24-18
동산재는 광주이씨 석전문중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낙촌 이도장(各村 李道長)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의 낙촌정, 장자 귀암 이원정(歸巖 李元禎)의 유덕과 공적을 알리기 위해 1903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2칸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와가 경암재, 장손 정제 이담명(靜齋 李聃命)의 별사봉향을 위해 세운 정면4칸 측면1칸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와가의 소암재와 묘실, 대문채, 관리사를 일괄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재사(齋舍)와 정사(亭舍)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면서 건립 순서와 세계(世系)가 역순 이면서도 건축구성상 정연한 위계성을 갖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건물이 초창 이후 큰 변형이 없이 유지되어 건립당시의 건축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보존 할 가치가 있어 경상북도에서 기념물적 성격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비지정 문화재 귀암고택(龜嵓古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동산2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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