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는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시대였고,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지요.
서태지와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문화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에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시기가 90년대랍니다.
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는 인기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4주연속 1위를 수상하면서, 이제 곧 5주연속 골든컵을 수상할 것이 예상되던 시기였는데요.
그런데,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넘사벽이나 다름없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꺾고 당당히 1위에 오른 여자가수가 있었는데, 바로 그주인공은 김수희였고, 그녀는 ‘애모’라는 곡으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1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무도 예상치못했던 센세이셔널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것처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김수희의 애모에 무너지는 모습 그 자체는 엄청난 충격과 파란을 불러일으켰답니다.
1993년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꺾고 1위를 차지한 김수희의 애모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애절한 노래로, 대중들의 가슴을 완전 사로잡았던 90년대의 명곡중의 명곡이 되었고, 지금도 이 노래는 노래방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기리에 애창되고 있는 추억의 가요로 자리잡았답니다.
이렇게 희대의 파란과 이변을 일으킨 김수희는 애모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과 명곡들을 발표한 우리나라 가요계의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폭발적인 인기로 김수희는 그 해 연말 ‘최고가수왕’까지 차지하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된답니다.
김수희가 발표해서 히트한 노래로는 ‘너무합니다’ ‘남포동 부르스’ ‘멍에’ ‘남행열차’ ‘애모’ 같은 노래들이 있는데,
김수희가 불렀던 이 곡들은 정말 한번 들으면 가슴에 애잔한 물결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일으키는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명곡들로서,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과 갈채를 받았던 곡들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수많은 히트곡들을 쏟아내면서 ‘국민가수’라고 불리울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기가수 김수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화려한 삶을 살았던 김수희였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답니다.
김수희는 가수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 때 대마초흡연과 관련된 구설수에 올랐으며, 암시술과 관련된 사기행각, 그리고 처녀행세로 인한 방송출연금지 파동 등 여러가지 스캔들을 일으켰던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장본인이랍니다.
김수희 프로필
1953년 4월 26일 부산 출생, 숙명여고 졸, 1970년 데뷔, 남편 김태식 1남 1녀, 희레코드 대표이사
김수희는 1953년도에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혼자의 힘으로 자녀들을 키우고 양육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고 곤궁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
김수희의 어머니는 부산 초량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했는데요. 이 당시 7살이었던 김수희는 노래를 잘해서 가게앞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노래를 불러서 가게홍보를 도와주었고, 그녀가 귀엽게 노래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녀의 공연(?)을 보기위해서, 일부러 가게를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7살 때부터 이미 김수희의 천부적인 노래실력을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시작했고, 이 때가 김수희의 첫 리사이틀 무대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김수희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으며, 혼자서 여러명의 조카들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야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습니다.
사실 김수희의 오빠가 이혼하면서 맡겨놓은 조카 6명이 그녀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 어린 조카들을 양육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김수희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미8군부대의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 당시 김수희에게 노래는 사치스런 꿈이 아니라, 살기위해서 부닥쳐야하는 생계 그자체였습니다.
김수희는 여러곳의 업소에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당시 돈을 아끼기위해 무교동에서 청계천까지 드레스를 걷어붙인체 뛰어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당시 김수희는 인기가수들을 대신해 노래를 부르는 대타가수로서 푸대접을 받으면서 노래를 불렀던 무명가수였답니다. 그렇게 수년동안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김수희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남진과 윤복희가 함께 하는 리사이틀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게된답니다.
이들 최고 가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김수희는 그들의 후원으로 가수로서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답니다.
그 때 김수희가 처음으로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곡은 '너무합니다'입니다.
이 노래를 발표했던 70년대 중반 당시 김수희는 완전 무명이었고, 일반사람들은 전혀 김수희라는 가수를 알지못했던 시절이었고, 따라서 그녀가 발표한 앨범은 제대로 빛을 보지도 못하고 완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가수로서 첫앨범이 실패한 후, 그녀는 첫번째 남편 이용호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게 된답니다.
결혼한 김수희는 가수활동을 완전 접고, 본격적인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 때부터 김수희는 파출부와 빵 배달하는 일, 골동품 중계상 등 여러가지 허드렛일을 닥치는 데로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이렇게 가수활동을 접고 생활전선에서 뛰어다니던 김수희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전갈이 전해진 것인데요.
라디오 음악프로를 진행하던 'DJ 이종환'이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를 우연히 듣고난 후, 너무 좋은 곡이라고 극찬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급히 찾는 이벤트가 벌어진 겁니다.
처음에 발표했을 때는 김수희가 무명이어서 히트하지못했던 곡 '너무합니다'가 라디오DJ 이종환의 소개로 인해서 김수희의 이름과 노래가 널리 알려지게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김수희는 그녀의 최대의 역작 '멍에'가 만들어지게되는 기회를 얻게됩니다.
김수희의 '너무합니다'를 들어본 한 작곡가가 이 노래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녀를 위한 노래를 작곡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는데요. 그 노래가 그 유명한 히트곡 '멍에'입니다.
1982년도에 김수희가 발표한 '멍에'는 엄청난 히트를 하게되었고, 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이 노래를 계기로 김수희는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멍에'의 엄청난 히트로 김수희는 비로서 인기가수로서 인정받으면서, 높은 명성과 대중들의 사랑을 얻게된답니다.
김수희의 '멍에'는 KBS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무려 5주동안 1위에 오르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요.
'멍에'를 시작으로 김수희는 그 후에도 '남포동 부르스' '잃어버린 정' '남행열차'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크나큰 인기를 끌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중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왕성한 가요활동을 벌여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수로서는 성공가도를 달려나갔던 김수희였지만, 그녀의 결혼생활만큼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았답니다.
김수희의 첫번째남편은 바람같은 남자로서 조폭에 몸담고있는 건달이었지요.
김수희의 남편은 바깥에 외출했다가 1년에 한두번 정도 집에 들어오는 불성실한 남편이었고, 남편의 불건전한 주변환경 때문에, 김수희에게도 좋지않은 구설수가 자주 따라다녔습니다.
김수희는 데뷔 10년만에 스타가 되었지만, 엉뚱하게도 대마초사건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구설에 오르게된답니다.
조폭조직에 몸담고 있는 남편의 불건전한 환경 때문에, 김수희도 오해를 받아 대마초를 한 것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 것입니다.
이 대마초흡연 스캔들은 그 해에 김수희가 '멍에'를 통해 골든디스크의 가수상을 기대하다가 터져버린 스캔들이어서, 그녀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실 김수희는 결코 대마초를 흡입하지 않았는데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었는데, 그녀가 경찰에 출두해 조사까지 받으면서, 마치 그녀가 대마초를 흡입한 것처럼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게된답니다.
이 대마초사건으로 김수희는 방송출연 정지처분까지 받게된답니다.
결국 김수희는 재판을 받게되고,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협의 판결이 나면서 비로소 누명을 벗게됩니다. 그렇지만 이 대마초스캔들로 인해서 김수희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얻게됩니다.
이렇게 억울한 누명으로 치밀어오른 분노감과 화를 너무 안으로만 삭이면서, 절제하던 김수희는 결국 암에 걸리고만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화를 억누르다 그만 화병이 걸린 것이고, 그것이 바로 유방암이었답니다.
암에 걸린 김수희는 그 당시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터를 많이 받던 시절이라, 조용히 치료받기 위해서 필리핀으로 가게됩니다. 그런데, 필리핀에서 김수희는 또한번 엄청난 스캔들에 휩쌓이게 됩니다.
필리핀에서 심령치유로 불치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심령치료사로 유명한 '준 라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김수희의 남편 이용호는 이 심령술사 준 라보한테 부인 김수희의 유방암시술을 부탁했고, 또 실제로 준 라보가 김수희에 대한 심령시술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수희남편 이용호는 심령술사가 김수희의 유방암시술을 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해서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그리고 김수희가 심령치료사 라보에게 시술을 받은 후에, 그녀의 유방암이 95% 완치되었다고 남편 이용호는 주장했습니다.
이 필리핀의 심령술사 라보는 메스같은 수술도구를 전혀 사용하지않고, 오직 맨손으로만 사람의 몸속에 있는 장기를 만지고 시술을 해서, 장기속의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심령수술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팀이 필리핀에 있는 라보의 수술실로 잠입취재를 통해서, 라보의 심령시술이 완전 사기임이 밝혀냈습니다.
심령술사 라보는 가축의 염통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눈속임수를 써서 마치 환자의 장기를 적출해서 수술을 하는 것처럼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지요.
준 라보가 사람의 육체속에서 맨손으로 꺼냈다고 보여준 그 내장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라보가 미리 준비한 돼지의 염통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라보의 심령시술에 의해서 김수희의 유방암수술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한 김수희 남편의 주장 또한 거짓임이 드러낸 것이지요.
희대의 사기꾼 라보의 사기행각에 동조해서 라보의 거짓된 심령시술을 진짜인 것처럼 전달해서 대중들을 우롱했다는 이유로 김수희와 그녀의 남편 이용호는 여론의 엄청난 뭇매를 맞게됩니다.
사실 암에 걸린 김수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심령시술로 유명한 준 라보에게 시술을 받은 것인데,
마치 자신과 남편이 라보의 사기행각에 동조한 것처럼 오해를 받은 셈이어서, 두사람 모두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된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이 심령스캔들 이후 김수희의 암은 완전히 완치되었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영원한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은 김수희는 오랫동안 칩거생활을 했고, 한 때는 일본으로 진출해서 일본에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김수희는 첫번째남편 이용호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건달출신인 남편은 자신의 존재가 아내 김수희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자책하고는 김수희에게 먼저 이혼을 신청하고는, 스스로 김수희곁을 떠나갔습니다.
그 후 김수희는 재혼할 생각없이 혼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설득해서 그녀의 마음을 바꾸어놓았다고 합니다.
김수희 어머니는 여자가 혼자서 살면 아무 남자나 마구 만나게되고, 오히려 생활이 문란해진다고 충고하면서, 차라리 한 남자를 만나 그남자에게 몰두하면서 사는 것이 건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면서, 김수희에게 새 남편감을 소개해줬습니다.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운영하면서 가수활동을 하길 바랬던 어머니의 중매로 김수희는 두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는데요.
어머니는 제주도의 MBC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그 남자를 서울에 있는 김수희의 집으로 초대했고, 집에서 만난 김수희와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답니다.
김수희의 현남편은 호남형에다 키도 크고 몸집도 큰 멋쟁이스타일의 남성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잘해주냐는 질문에 김수희는 '서로 양보하면서 산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김수희는 여러가지 스캔들과 전남편과의 이혼 등으로 마음의 상처와 함께 가수로서의 큰 위기를 겪었지만, 위기 때마다 그녀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앞으로 전진하는 강한 의지력과 남다른 강인함을 보여주면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김수희는 1990년 수년만에 다시 제7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다시 무대로 복귀하는데요. 그녀가 발표한 노래 '애모'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각종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하게 된답니다.
3년만에 다시 컴백한 김수희는 김건모와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등 기라성같은 인기 아이돌가수들을 꺾고, 대망의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었답니다.
김수희의 '애모'는 KBS 가요톱텐 1위를 5주 연속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93년도에 다시 역주행해서 가요순위프로그램 1등 12관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업적을 세울 정도로 엄청난 대히트를 치게됩니다.
세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애잔하면서도 감미로운 곡조의 노래 '애모'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녹이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해나갔는데, 지금도 '애모'는 노래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국민가요'로 큰 인기를 끌고있답니다.
그리고 김수희에게 기적같은 일이 또한번 일어나는데요. 김수희는 1987년 '남행열차'를 발표했는데, 발표 당시에 '남행열차'는 크게 히트하지도, 큰 주목을 받지도 않았는데요.
세월이 한참 흘러서 2000년대가 되고난 후, 갑자기 김수희의 '남행열차'가 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크게 히트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13년이 지난 후에야 소위 말하는 '역주행'이 또다시 벌어진건데, 특히 노래방을 중심으로 '남행열차'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 되는 기적같은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지금도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노래방에서 꼭 한번씩 부르게 되는 대중들의 흥을 돋구는 애창곡이자, 국민가요로 큰 인기를 끌고있습니다.
2022.7.2. 토 <KBS 1TV 빽투더뮤직> 김수희편을 보고 옛생각이 나서 이곳저곳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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