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둘레산길 산행후기

甲辰年 첫 수요산행 / 장동에서 계족산성 돌아 다시 장동으로

돌까마귀 2024. 2. 15. 13:54

언   제 : 2024년 2월 14일 수요일

어디서 : 장동 진골에서 계족산성 찍고 계족산 100리 숲길따라 장동초등학교 까지

누구와 : daum cafe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수요안내산행팀과 함께

 

09:20 읍내동 대한통운발 장동산림욕장 경유 산디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장동초등학교 승강장에 내려

 

장동만남공원에서 인사를 나누고 

 

'요강바위 주유소'를 가는 길에 업무에 충실한 두 사진작가님은 오늘도 수고가 많으시다.

 

요강바위 신령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막걸리도 한 잔 씩 나눈 뒤 장동 진골을 향해 출발!

 

텃골마을 입구 장동주민문화센터 앞을 지나며 

 

미 캠프에이스 기지촌으로 번창하였던 욕골마을과

 

장동고개 방향을 둘러보고

 

장동로 228번길을 따라 진골로 들어선다.

 

길 이름은 장동로 278번길로 바뀌었지만 

 

담장에 그려진 편백나무 앞에서 기념사진도 한 장 남기고

 

언덕 윗길로 올라서 구비돌아 나가면

 

아주 조그만 정원이 반겨주니 봄이 오면 온갖 예쁜 꽃과 나무들이 반겨줄 것이다.

 

원두막에서 '외돌개'표 도토리묵무침을 안주로 한잔 씩 나누고 길을 나서니

 

산책을 다녀오던 동네 犬녀석이 뒤 돌아서 일행들을 안내해 준다.

 

계족산 황토길에 올라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이현동 산성을 향해 길을 나서니

 

현직 시절 대덕구의 발주를 받아 설계 제작 시공하여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았던 산불감시초소가 반겨준다.

 

난이도 中급의 산길이 왜 이리 험하냐고 일행들의 원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지만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1호 이현동 산성은 천오백년의 세월을 담고 일행들을 반겨준다.

 

梨峴洞山城 

계족산성에서 북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산성은 남북방향의 봉우리 두 개를 중심으로 말안장 모양의 평면형으로 축조되었다. 성은 둘레가 300m이고, 테뫼식 석축산성으로서 내탁외축(內托外築)하였는데, 성벽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남벽의 일부에서 높이 1.2m의 성벽이 남아 있고, 이곳에서의 성벽 축조는 계족산성의 성돌과 유사한 편암계(片岩系)의 돌을 가지고 쌓았는데, 성벽을 약간씩 안쪽으로 물려서 쌓았으나 축조방법은 조잡하다. 

 

북벽의 통과지점은 능선의 경사도가 완만하기 때문에 석루(石壘)를 높게 쌓았다. 

 

성안의 남쪽 봉우리에 크기 5m×6m, 깊이 80㎝, 북쪽 봉우리에 크기 4m×5m, 깊이 80㎝정도의 구덩이가 있다. 이는 저장시설 또는 봉수시설로 짐작된다. <이상 명조체 글씨는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리지역의 문화재'에서 퍼 옴>

 

계족산성이 남쪽으로 보이는 남벽 위, 이장 해 간 묘지에서 오찬을 차리니 '진수'와 '성찬'이가 함께 하고 

 

오찬을 마치고 급경사를 내려가는 오금은 저리지만

 

계족산성 수해복구공사로 한 동안 통제되었던 길은 발길이 뜸하였던 탓으로 발목까지 낙옆이 덮인다. 

 

오르 내리막을 계속하며 힘이 들 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대청호를 뒤 돌아보며 한숨을 쉬지만

 

왜? 이 길이 中급이냐며 항의성 주저앉기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이제 마지막 봉우리라는 늙은 까마귀의 거짓말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애고~ 힘들어~'

 

'야! 계족산성이다! 고생 끝이다!'

 

북쪽 방향, 외돌개님 왼쪽으로는 신탄진 시가지, 오른쪽으로는 대청댐과 청남대를 배경으로 독 사진을 한 장 씩 남기고

 

남동쪽 방향으로 대전시기념물 제20호 견두산성 뒤로 저 멀리 옥천군 군북면의 고리산도 살펴 본다.

 

북서쪽의 대전둘레산길 제7구간 금병산길 밑에는 유성구 송강동과 관평동의 아파트들이 키제기를 하고

 

성벽 밑이 궁금한 '호두나무'님은 

 

작품사진 남기느라 뒤 따라 오르는 두 작가님을 응원하신다.

 

'그런데 이분은 왜 이러시나?'

 

이제부터는 사진작가님들의 촬영타임

 

한참을 작품 담기에 열중 한 뒤 '수해성벽복구공사' 구간을 우회하여 남문으로 향하니

 

저 멀리 고리산을 배경으로 멋진 장면이 봉수대 위에 펼쳐진다.

 

국가 사적 355호 大田 鷄足山城

대전시 장동 계족산(해발420m)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는 약 7∼10m 가량 되며,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상 명조체 글씨는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리지역의 문화재'에서 퍼 옴>

 

한참을 둘러보며 사진찍기를 마치고 남문 위에 둘러 앉아 주막집을 펼치려니

 

'앵?' 오늘따라 횐님들이 준비한 주류가 다 덜어졌다. '애고 아쉬워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땀에 젖은 셔츠도 시원한 성돌에 식혀 말린 뒤

 

하산 길에  나서니 애초의 계획을 바꿔 

 

계족산황토길에 내려서 임도삼거리로 향한다.

 

임도삼거리에서 봉황정 능선길을 포기하고 '계족산 100리 숲길'을 따르며

 

간간이 나타나는 계족산성을 당겨보기도하며

 

대덕구 연축동과 장동을 가르는 경계선의 4각 정자에 닿으니

 

대전둘레산길 6구간 금강길에 들어섰다.

 

왼쪽 서편으로 갑천 건너 전민동의 엑스포아파트가 보이고

 

대덕구 와동과 장동을 가르는 고내미고개에서 한숨 돌린 뒤

 

새뜸마을로 내려가

 

한적한 옛길을 따라 걸으며

 

시골 향기도 즐기니

 

따스한 봄날씨는 모두의 겉옷을 벗게한다.

 

장동 만남공원에서 오후 일정이 바쁜 세분이 먼저 떠나고

 

여덟 명이 둘러 앉아 대둘 역사상 초유의  '주류부족사태'로 개봉하지 못한 '외돌개'표 순대와

 

'산골보립밥'표 해물파전과 묵무침을 앞에 놓고 '대단하다 둘도 없다'를 외치니 갑진년 첫 수요산행이 모두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