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 격하시키는 결정을 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建國(건국)을 공식으로 기념하는 경축일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8월15일마저 해방의 날로만 기념하고 건국 선포일로 기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지우려 하는 좌익책동에 집권세력이 넘어간 결과이다. 드디어 朴槿惠 (박근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이란 말을 한국사 교과서에서 쓰지 못하게 했다.
盧武鉉(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4년 5월 말 연세대 강의를 통해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適者(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 弱肉强食(약육강식)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다.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간명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노무현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좌편향된 가치관, 즉 계급투쟁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1961년에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캄보디아보다도 못한 국민소득을 가졌던 나라(103개국중 87등)를 50여년 만에 세계 7위의 수출대국, 삶의 질 세계 12위의 복지국가로 바꿔놓은 主力(주력)은 보수층으로 불리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고 극언을 한 노무현이 변화를 거부하고 독재를 하여 인류역사상 最惡(최악)의 체제를 만든 守舊(수구)좌익의 본산 북한정권에 대하여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를 비교하면 그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었던 사상의 뼈대를 읽을 수 있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2007년 10월2일, 訪北(방북) 중 평양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북한주민들의 행복이 플로레타리아가 정권을 잡아 이른바 인민主權(주권)을 행사하는 독재의 전당에서 나온다는 말은 계급투쟁론적인 사고방식의 완벽한 표현이다.
한국에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다. 이 헌법에 대하여 그는 “그놈의 헌법이 토론을 못하게 돼 있으니까 (대통령이 직접 토론하는 것은) 단념해야지요” (2007년 6월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라고 했다. 사회주의 독재 장치는 '전당'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심장은 '그놈'이다.
헌법의 명령에 따라 국가의 안전보장을 수호하는 기구는 국군이다. 계급투쟁론 신봉자들은 헌법과 국군을 지배계급의 도구로 규정,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본다. 노무현은 국군통수권자로 있으면서도 국군을 이렇게 매도하였다.
"젊은이들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 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니냐. (전작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나."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
계급투쟁론이 머리에 박히면 세상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편을 가른다. 반대 세력을 기득권 세력, '계급의 원수' 등으로 몰고 증오심을 부추긴다. 자기 편은 무조건 감싼다. 노무현의 경우엔 계급적 특권이나 박해를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런 계급적 관점을 유지, 정책에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한국의 보수언론을 이렇게 비방하였다. 대통령이 좌익운동권 수준의 연설을 했다.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은 守舊(수구)언론과 결탁해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지난날 독재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왔던 守舊(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세력을 흔들고 守舊(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7년 6월10일, 6월 대시위 20주년 기념사)
한총련은 북한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던 좌익 학생 운동 조직이었다. 노무현은 이들을 아주 따뜻하게 바라본다. 이 또한 계급투쟁론적 감정일 것이다.
“한겨레 21에 올라와 있는 한총련 회장 편지를 읽어봤다. 일부 보도나 사회 일각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단순히 어떤 사상에 경도돼 우리 사회에 철없는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편지 속에서 확인했다.” (2003년 5월1일 100분 토론)
계급투쟁론에 빠지면 법을 지배계급의 압제 도구로 본다. 노무현은 한총련이나 공산주의자 같은 국가 반역자를 다스리는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말한다.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2004년 9월 5일 MBC 특별대담)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10일 일본 방문 중)고 했다.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에서 공산당에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의 주장을 한 대통령이 있었어도 나라가 유지된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계급투쟁론 신봉자는 계급투쟁론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하여 세워진 북한정권을 절대로 반대할 수 없다. 성경을 믿는 이가 교회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노무현은 북한의 核개발을 막아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核개발을 사실상 비호하였다.
“미국의 對北 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보다 더 해주고, 체제안전을 약속해야 한다.”(2006년 8월18일)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며 남한의 지원 여부에 따라 핵 개발을 계속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2006년 5월29일 향군지도부 초청 환담 中)”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합니다. 제도적·물질적 지원 이런 것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합니다." (2006년 5월9일 몽골 방문 중)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 지금도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11월 12일 국제문제협의회 LA지부 간담회)
1997년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 씨를 찾아내 암살한 이는 김정일이 보낸 공작원이었다.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 한국 정부의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2006년 12월9일, 뉴질랜드 교포 간담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2007년 9월11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
노무현의 계급투쟁론적 인식이 한국 현대사에 적용되면 彼我(피아)개념이 뒤집어진다. 대한민국과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을 편든다.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아픔의 근현대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2003년 3월1일 3·1절 기념식)
“몇 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온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인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온다.”(2004년 3월1일 3·1절 기념식)
그는 2003년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학생들 앞에서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을 꼽았다. 한국 대통령이 1950년 10월 북진통일 직전에 중공군을 보내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막은 자를 존경한다고 한 것은 이스라엘 대통령이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한 것과 같다.
그의 통일관도 계급투쟁론의 영향을 받은 듯, 북한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헌법 제3조), 평화적 자유통일을 하라(헌법 제4조)는 헌법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연합체제에서 각기 지방정부를 갖게 될 것이며 통일수도는 개성일대에 대단히 상징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2004년 2월24일 방송기자클럽회견)
북한정권을 대한민국과 同格의 국가로 인정하는 反헌법적 논리이고, 북한의 연방제 공산화 통일 방안을 수용한 것이다. 노무현은 신행정수도로 위장한 수도이전의 진짜 의도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舊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는 遷都(천도)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2004년 1월29일)
1982년 노무현 변호사가 釜林(부림)사건 변호인이 되어 좌익운동권을 변호하다가 접하게 된 계급투쟁적 가치관은 대통령이 된 후 국가 정책에 전면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그의 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념과 사상은 낡은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利害(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자각)'이고 '자기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이론화된 신념'인 것이다. 증오의 과학인 계급투쟁론 신봉 세력을 상대로 이기려면 우리도 종교적 신념이나 삶을 건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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