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취하고 있는 마실거리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은 양의 동서를 떠나 대자연을 숭배하던 민족의 전통제례의식 중에서 절대자와의 만남을 위한 매개체였다. 개개인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그리고 민족 저마다의 역사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해온 술은 이제 더 이상 특정 민족만의 음식이 아니고 지구촌 가족들이 상호 교류하는 인류 공통의 먹을거리로 자리 잡았다.
농경시대 이후 꾸준히 맥을 이어온 우리의 술은 곡류에 의한 곡주와 거기에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 사철따라 우리 땅에서 나는 갖은 과실류를 첨가한 과실주가 중심이었으니 참으로 우리의 술이야말로 먹을거리인 곡류와 과실을 형태만 액체로 바꾼 또 하나의 먹을거리 즉 밥이다.
이렇게 곡물로 담근 곡주를 용수를 박아 맑게 뜨니 청주요, 막걸르니 막걸리고, 끓여서 생긴 증기를 식혀서 맺힌 이슬을 모아 소주(燒酎)라 부르니 우리의 술이 밥이 아니라고 뉘라서 나서겠는가?
새참과 막걸리, 짜장면과 맥주
들일이 한참일 무렵이면 농촌생활 경험이 있는 도시 사람들은 흔히 아낙네가 채반을 머리에 이고 새참을 내오고 그 뒤를 따라 어린아이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오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할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러한 정겨운 모습이 남아 있는 곳도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요즈음의 대부분 농가에는 이미 새참을 내올 주부들의 일손마저 모판 나르는 일에 동원되기 마련이고, 평일에 모내기 한다고 아이들에게 특별휴가를 주는 학교도 없거니와 한 됫박짜리 주전자 하나 손에 듬직한 예닐곱살배기 어린아이가 있는 농가가 아예 없는 형편이다 보니 도시에서는 ‘야식’집이 인기이듯 농촌에서는 ‘새참’이 다방커피와 짜장면, 그리고 "치맥"으로 대치되고 있는 형편이다.
삼국사기, 춘향가, 한일합방, 대한민국
국내문헌에 최초로 소개된 술 이야기는 동명성왕의 건국신화 속에 담겨져 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지금의 압록강에 해당되는 청하(靑河)의 웅심연(熊心淵)에서 놀고 있는 세 처녀에 반해 그들을 궁실로 유인하여 술 대접을 하고, 만취하여 돌아갈 즈음 그들을 가로 막고 하소연하자 그 중 둘은 도망치고 유화라는 처녀만이 해모수에게 잡혀 해모수와 동침하여 주몽을 낳았다는 얘기이니 우리에게 있어 술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 때, 세 처녀에게 대접한 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술이었는지는 아쉽게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우리의 전통주를 찾아볼 수 있는 문헌인 주방문(酒方文), 규합총서(閨閤叢書),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 등에 소개된 것만 해도 술 이름이 백여 종이 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술 문화는 가히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었던 점만큼은 분명하다 하겠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의 어미 월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대접하기 위해 내온 주반상(酒槃床)에 등장하는 술 이름을 보면, 포도주(葡萄酒), 자하주(紫霞酒), 송엽주(松葉酒), 과하주(過夏酒), 방문주(方文酒), 천일주(千日酒), 백일주(百日酒), 금로주(金露酒), 화주(소주,火酒), 연엽주(蓮葉酒)...등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데...
백 가지가 넘었던 우리의 전통주가 기껏해야 막걸리, 약주, 소주 정도로만 그 위세가 약해진 것은 다름 아니라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령으로 주세령이 공포되면서 가정에서의 술 제조가 금지되면서부터이다.
일본의 식민통치 34년 11개월동안 묶인 것만 해도 말할 수 없이 억울한 우리의 술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된 주세법 조항에 묶여 전통주 생산이 원천봉쇄되었고, 1960년대 초에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양곡관리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술의 원료로 쌀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됨으로써, 우리의 전통주는 범죄자(?)들에 의한 밀주로 그 명맥을 일부나마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 건국이후 처음으로 쌀 자급을 달성했던 1977년도에 쌀막걸리의 제조를 허가하였고, 1980년대에 와서 그동안 범죄자 취급을 당하던 전통주 제조기능 보유자를 뒤늦게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90년대에는 교통부 장관의 추천으로 민속주 제조면허를 부여하는 제도가 생겨나 그나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안동소주, 이강주, 두견주, 소곡주, 지리산 국화주 등이 상품화 되기에 이르런 것이다.
우리의 밥인 전통 민속주를 아끼고 사랑하자. 우리의 술, 한산 소곡주가 프랑스의 와인보다 훨씬 향기롭고 감칠 맛나는 술이요, 안동소주와 지리산 국화주, 그리고 경기도 화성군에서 생산되는 백세주가 얼마나 맛깔 있는 밥인지 한 번 음미해 보고, 명절 때마다 양주병 들고 친지를 찾아 나서는 잘못된 문화를 타파하자.
<월간 좋은생각, 김근식의 잡학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 이곳저곳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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