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국민학생 시절, 아버님께서 읍내 장터 주막집 주모의 꼬드김(?)에 빠져 대취(大醉)하신 다음날 아침은 항상 마른 명태와 실갱이를 벌였었다. 누님은 열아홉살에 시집 가셨고, 형은 십리나 떨어진 중학교에 걸어서 등교하느라 새벽밥을 먹고 나갔으니 당연히 막내인 내가 아버님의 해장(解腸)을 위해 마른 명태와 사투(死鬪)를 벌여야 했었다.
광(庫房)에 걸려있는 '북어 두름'에서 한마리 뽑아서 물에 잠시 담궜다가 건너방 툇마루의 다듬이돌에 올려 놓고 다듬이방망이로 힘겹게 두들겨 패노라면, 풍로에 불지피고 양은냄비를 올려 놓으신 어머님이 이어받아 거의 가루가 될만큼 두들겨 패시는데 아마도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방망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의 '승리부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치르고 있을때 "노가리" 서너마리 구워놓고 '경포대에 비친 달'이라는 멋진 이름의 경월(鏡月)소주를 마시며, 바깥세상에서 들려오는 유신(維新)시대의 아픈 소식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취하던 기억이 새롭다.
명태(明太)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생선
대전에 자리를 잡고 은퇴 후 산과 들을 쏘다닐 때 "대전둘레산길 11구간"을 마치면 꼭 들렀던 안영교 옆의 "시골양푼이동태탕"집은 요즘도 가끔 찾어가는 단골집이기도 하니 내가 만난 명태의 이름도 북어, 노가리, 동태, 생태, 코다리 등 몇가지나 되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태의 이름은 잡는 방법, 가공 상태, 크기, 지역 등에 따라 무려 6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갓 잡아 올린 명태는 생태, 꽝꽝 얼리면 동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그물로 건져올리면 망태, 말리면 북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노랗게 말리면 황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검게 마르면 먹태,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 머리를 떼고 말리면 무두태, 물기가 약간 있게 꾸들꾸들 말리면 코다리, 소금에 절이면 염태라고 부른다.
잡히는 시기에 따라서는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잘 잡히지 않아 비싸지면 금태, 크기가 작은 새끼는 노가리, 산란 후 살 없이 뼈만 있는 명태는 꺽태라고 부르고, 예전 명태가 많이 잡혔던 함경도에서는 잡는 방법에 따라 망태, 조태로, 노가리는 왜태, 애기태로, 잡는시기에 따라 막물태, 은어바지, 동지바지, 섣달바지로 불렀다고 하며, 일본 호카이도(北海道)에서 들어오는 마른 명태는 북태(北太)라고 불렀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이 존재하는 건 우리 한민족이 전 세계에서 제일 명태를 즐겨 먹는 민족이기 때문으로 보이고, 가까운 중국에서는 서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았고, 이웃 일본에서는 명란은 먹으면서 명태는 별로 관심 밖인것 같다.
명태는 차가운 물에서 사는 한류성 어종으로, 겨울이 되면 알이 꽉 차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는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강원도의 동해 북쪽바다에 산란을 위해 몰려와 많이 잡혔으니 거진항의 옛 사진을 보니 엄청나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부두에 쌓인 명태를 손질(開腹)하여 덕장으로 보내 말리려고 끈을 끼우는 모습이 보이는데, 명태의 배를 갈라 꺼낸 알은 '명란젓'을 담고, 창자는 '창란젓'을 담그니 잘 익은 명란젓과 창란젓에 무를 썰어 넣고 담근 깍두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경상도 등 남부 지방의 쌀과 함경도 명태를 교환하는 ‘명태무역’이 활발했다고 하며, 명태라는 이름은 17세기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니 효종 3년(1652년) ‘승정원일기’에 "강원도에서 '대구알젓' 대신 '명태알젓'이 왔으니 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고,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는 ‘임하필기’(1871년)에 ‘명천의 태씨가 잡아 명태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명태는 1940년 어획량이 27만t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이후로 차츰 줄어들다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동해 바다 수온이 상승하니 명태가 한반도 앞 동해까지 많이 내려오지 않아 1970년대 부터 어획량이 급속도로 감소하는데 1970년부터 어린 명태인 노가리 어획 금지가 풀리면서 남획이 이뤄졌던 것도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동해 연안에서는 명태를 구경하기 힘들어지니 대화퇴(大和堆)라 불리는 동해의 북동쪽 어장에서 명태를 잡아오다 그곳 마저도 어획량이 줄어들자 요즘은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앞까지 원양어선이 명태를 잡으러 나가는데, 나 같은 술꾼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중의 하나로 "오양맛살"이라는 '게'맛을 내는 포장식품이 있는데 이것이 원양어선이 잡아온 북양명태를 가공하여 '게'맛을 내는 첨가물을 섞어 만든것으로 아직도 많이 팔리는 인기 식품이다.
요즘와서 국내산 명태는 구경하기가 정말 힘들고 명태의 우리나라 연간 소비량 25만t의 90% 이상을 러시아,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국립수산과학원이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명태의 '완전양식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2017년에는 인공 배양하여 방류한 명태가 우리 바다로 되 돌아오기도 하였으니, 해양수산부의 '명태 살리기'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우리연안에서 잡힌 '생태'로 '생태찌게'를 한 냄비 끓여 가까운 벗들과 함께 쐬주 한잔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본다.
2021년 1월 29일 이곳 저곳에서 퍼온 내용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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