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2010년을 보내며

돌까마귀 2022. 7. 27. 18:29

산길을 걸으면서는 언제나 행복했었다,

탁배기나 소주 한병 그리고 따뜻한 물 한병, 마음의 점을 찍을 쌀국수 하나 달랑 넣은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은 구름속을 걸었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한적한 마을앞에 내려서면 산은 항상 내 코 앞에서 반겨 주었었다, 때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 때로는 바삭거리는 낙옆과 함께, 때로는 뽀드득 거리는 하얀 눈과 함께... 간혹 찬바람이 심술을 부리며 귀때기를 때려도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 산은 바로 포근한 안가슴을 내어주며 보듬어 주었었다, 어쩌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항상 거기 그곳에 있었다.

 

내가 산에 빠져 들게 된것은 코 흘리게 어린 시절 고향 마을 뒷산에 널부러진 탄피와 포탄 파편을 주으러 동네 형들 뒤를 쫒아 다닌게 시작이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놓고 처절하게 피흘리며 싸운 그곳에 동족상잔의 비극도 모르고 좌와 우도 모르든 우리들은 그저 엿장수 아저씨의 꼬드김과 달콤한 가래 엿이며 빨간 10환짜리 종이 돈의 유혹에 빠져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오르 내렸었다, 옆동네 아이의 팔다리가 떨어진 뒤에야 그친 그 산행(?)은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 여름이면 소먹이러,겨울이면 땔 나무 하러 다니면서 다시 이어졌고 고등학교 시절 시작한 지금으로 말하면 아르바이트가 평생 직업이 되어버린 간판쟁이가 나를 더욱 산에 심취하게 만들었었다, 군대 가기전 칠곡군청에서 발주한 가산산성 조감도를 그리기 위해 가산바위에 올라서 스케치 하며 조망한 그 산줄기는 지금까지 내가본 어느 산 보다 더 깊게 내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고 군대시절 만진 5만분의1 군사용 지도의 채색 작업은 산줄기와 골짜기를 볼수있는 혜안을 나에게 주었으니 전역후 이어진 직업 속에서도 항상 산길은 내 눈앞에 펼쳐저 시간만 나면 산능성이에 올라 나홀로 산길 찾기에 몰두하게 하였었다. 간혹 길을 잃어 난감 할때도 있었지만 주민등록번호 적어 놓고 구입한 5만분의1 지형도는 언제나 나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었었고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해집으며 돌아다닌게 40년이 넘었나 보다.

 

78년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내가 산을 바라보는 시각에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환기를 맞게 되는데 대전시가 동구와 중구로 분리되어 시장실 현황판을 수주한것이 인연이 되어 대전이 산에 둘러쌓인 분지란것을 알게 되었고 대덕군 기성면과 진잠면 경계(지금의 서구 관저동과 흑석동)의 일직선으로 뻗은 마루금이 눈에 확 들어오니 한달에 두번 쉬던 그시절 첫 휴일에 바로 구봉산에 올라서 맛본 그 느낌은 지금까지 내가 대전 주변의 산에 매료되어 거의 매주(요즘은 매일) 대전둘레산을 찾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산이란 항상 그곳에 자리 잡고있다, 계절이 바뀌어도,날씨가 변하여도, 낮이나 밤이나 항상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간혹 산을 사랑하고 자주 찾는 분들도 한 두번 다녀온 산은 잘 가지 않는다.국내 유명산을 100대명산,1000산,3000산 등으로 정해놓고 열심히 다녀 오는데 정작 자기 집 주변의 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른 아침과 한낮 그리고 해질녘

이른 봄과 늦은 봄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

맑은 날과 흐린 날 그리고 비오는 날, 그것도 가랑비 올때와 소나기 올때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칼 바람에 싸레기 눈까지 뿌리며 귓때기를 때리는 추운 날

하얗게 쌓인 눈길을 뽀드득 소리 들으며 걷는 길과 켜켜이 쌓인 낙옆을 바스락 소리 들으며 걷는 길

그런 산길이,

그것도 버스표 두장이면(요즘은 이것도 사라지고 카드로 바뀌었지?) 다녀 올수있는 산길이 있는

우리 대전은 복 받은 땅이다. 그래서 우리 시민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대전둘레산길을 한바퀴 돌면서 한쪽으로는 대전천,유등천,갑천 물줄기가 가로 지르는 대전 시가지를 조망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점점히 박힌 작은 섬들이 다도해를 연상시키는 생명의 호수 대청호와 눈덮인 계룡산의 우람한 산줄기를 조망하고

운 좋은날, 멀리 지리산 주 능선과 속리산 주 능선 까지 볼수 있는곳 우리 한밭 벌의 둘레산길에 빠져보자

한바퀴 또 한바퀴 그리고 또 한바퀴 철따라 출발점을 바꾸어 돌아보자

그래서 그 산자락에 묻혀있는 옛 이야기며, 골짜기 마다 숨어있는 문화재며, 봉우리마다 누워있는 산성의 무너진 성돌을 만나보자.

 

2010,12,31

전남 광양만 광양비츠호 선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전둘레산길을 그리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