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한강과 한강 다리 전경 입니다.
한강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뉘는 서울, 지금은 수십 개의 다리들이 남북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아치교, 트러스교, 현수교 등 형태가 가지각색인데다 분수가 나오고 색색의 조명 불빛이 들어오는 등 개성 있는 모습으로 하나하나의 다리가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자, 이제 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근대화 이전 변변한 다리조차 없던 시기, 이 넓은 강은 오가기에 얼마나 거대하고 막막한 장애물이었을까요. 유일한 이동 방법은 배편이었을 것입니다. 강을 따라 수십의 나루터가 있었고, 뱃사공들은 이 나루터를 기점으로 사람과 물자를 옮겼습니다. 임금과 그를 따르는 행렬이 선왕 능 행차나 온천 등에 갈 일로 강을 건너야 할 때면, ‘부잔교’를 임시로 세웠습니다. 큰 배 80여척을 가로로 이어 묶어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길을 내어 도강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2023년 7월 기준 한강에 놓인 다리는 몇 개일까요. 곧 개통을 앞둔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 강동구를 연결하는 대교(명칭 미정)를 포함해 총 33개의 다리가 한강을 따라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서 서울시가 관리하는 교량이 22개이고, 나머지는 경기도에 위치해 있거나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다리입니다. 오늘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지어지기 시작한 한강 다리들의 이야기를 이어 보겠습니다.
최초의 근대식 교량, 한강철교
한강 다리의 역사는 1900년에 준공된 한강철교로부터 시작합니다. 한강철교는 1896년 3월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고종으로부터 한강다리 부설권과 경인철도 부설권을 얻은 후 4년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개통 당시에는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다리라는 점에서 ‘노량철교’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한강철교는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근대식 다리이자,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기술을 도입한 교량이었습니다.
한강대교에 남은 민족사의 비극
1917년 10월, 한강에도 사람과 차량이 건널 수 있는 다리가 건설됩니다. 1984년 한강대교라는 이름을 갖기 전까지 이 다리는 ‘한강인도교’, ‘제1한강교’라고 불렸습니다. 왜 철교가 생긴 뒤 17년이 지난 뒤에야 인도교가 생겼을까요. 당시 도시 내 교통수단이 대부분 보행 위주였고, 화물은 철도와 지게로서 운송되었기 때문입니다. 민간용 영업차가 최초로 들어온 것이 1912년이었고, 이 때 이후로 보행과 차량 통행이 가능한 다리 건설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한강철교와 한강대교의 준공으로 용산과 노량진 일대가 급격하게 도시화되었고, 영등포가 서울 제2의 도심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한강대교는 건설된 이후 두 번의 소실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1925년 을축대홍수 때입니다. 한강의 물길을 바꿀 정도의 기록적인 수해로 한강 교량들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중지도(현 노들섬)에서 용산 방향으로 건설되었던 한강대교의 소교와 한강철교의 일부가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습니다. 무너진 다리에 대교량 가설공사를 실시하였고, 한강대교는 1929년 규모를 확장해 다시 개통됩니다.
2023.7.9 매일경제 한주형 기자(moment@mk.co.kr)의 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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