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묵'의 성장과 어두운 역사
어묵은 오뎅, 가마보코, 덴푸라, 간또, 고기떡, 생선묵, 어묵 등 세대별·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각양각색이다. ‘오뎅(おでん)’은 일본말, ‘어묵’은 우리말, 보통 이렇게 배웠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어묵은 생선살을 익힌 것이고, 오뎅은 익힌 생선살로 만든 탕이나 전골이라고 알고 있다. 일반인에게 이 정도 지식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뎅과 어묵은 왜 한동안 같은 의미로 사용됐을까. 나름의 역사가 있다.
오뎅? 어묵?
어묵과 비슷한 음식으로 ‘어환(魚丸)’이란 것이 고대 중국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에도 있다. 숙종 45년(1719년)에 간행된 <진연의궤>에는 생선숙편(生鮮熟片)이 등장한다. 생선을 으깨고 여기에 녹말, 참기름, 간장을 넣고 쪄낸 다음 잣가루를 넣은 간장에 찍어 먹은 음식으로 현재의 어묵과 가깝다. 흔히 어묵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이들의 어묵과 어묵요리도 함께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공설시장이자 근대시장인 부산 부평시장에서 내놓은 1915년의 ‘부평시장월보’를 보면 260여개 점포 가운데 어묵가게가 세 곳이나 있었다고 기록하고 어묵을 ‘가마보코’로 표기했다.
일제강점기의 신문기사나 소설에 가마보코는 고급반찬으로, 오뎅은 요릿집이나 요정에서 맛볼 수 있는 고급음식으로 등장한다.
서민은 자주 접할 수 없었지만 부유층에서는 상당히 인기를 누리던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한글학회가 1955년 왜색용어표기 간판글을 우리말로 바꿀 때 오뎅은 ‘꼬치안주’로, 가마보코는 ‘생선묵’으로 고쳐 사용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볼 때 이때까지 둘은 확실히 구분됐다. 1960년대 후반 ‘어묵’이란 단어가 등장했지만 오뎅과 가마보코가 1970년대까지 혼용되고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어묵'이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발음하기 편한 ‘오뎅’이 대세가 됐다.
성장과 흑역사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어묵은 특수를 누렸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제조시설로 어묵을 만들었다.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이 저렴하게 단백질을 섭취하기에 어묵만 한 게 없었다.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에서 만든 어묵이었지만 1960년대 어묵은 김치와 장아찌가 도시락 반찬의 전부였던 시절,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소시지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어묵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1970년대 들어 도시마다 공장이 생기면서 공장 주변에 포장마차가 등장했다. 최고 인기 안주는 참새구이였지만 1970년 정부가 참새포획을 금지하면서 대체 안주가 필요하여 어묵이 다시 각광을 받게된다. 겨울철 소주 한잔에 어묵과 뜨끈한 국물은 서민의 고된 하루를 달래주는 위안이 됐으며 전국의 학교 앞 분식점에도 떡볶이와 어묵이 등장했다.
아울러 어묵공장도 자동화시설을 갖추면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전통시장에선 어묵장사로 큰돈을 만지는 이들도 등장했다.
인기와 함께 문제점도 드러났다. 제조와 유통 과정의 위생 문제였다. 상온에서 쉽게 변질되는 특성으로 인해 대장균이 검출되거나 여름철 식중독 발생의 원인 음식으로 지목됐다. 과도하게 방부제를 넣거나 중량을 늘리기 위해 밀가루를 많이 넣는 편법 제조도 문제가 됐다. 경향신문은 1976년 6월26일자 ‘이것이 부정식품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밀가루 어묵’을 고발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1980년대에도 계속 지적됐다. 1990년대엔 대기업이 어묵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존 중소업체와 전통시장의 수제어묵가게는 위기를 맞았고 1998년에 한·일 어업협정으로 어로구역이 축소되면서 어묵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어묵매장이 고급 빵집처럼 베이커리형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어묵업체들은 수제어묵으로 고품질의 다양한 형태의 어묵을 선보이고 있다,
[경향신문 2018.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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