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번 초록버스를 타고

#1. 어떤 꿈
나는 서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손자다. 이름은 삼정. 다섯 남매의 막내다. 우리 남매는 ‘황호’, ‘이현’, ‘용호’, '‘미호’, 그리고 나 ‘삼정’이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인간세상이 궁금했다. 형·누나들을 졸랐다. “궁금하지 않아? 가보자, 응?” “할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실 걸.”
어느날 용왕 할아버지는 우리 5남매를 부르셨다. “삼정아, 그렇게 인간세상이 궁금하니?” 물으셨다. “네… 한 번만 가보고 싶어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좋다. 그러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본디 너희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법, 내가 정한 시간이 되면 돌아와야 한다.”

다섯 남매는 어린 고래로 변신해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왔다. 얼마나 왔을까, 물 맑고 산 푸른 배고개마을에 이르렀다.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도 착하고 부지런했다. 우리가 배고개마을에 머무는 동안 비가 많이 왔다. 큰비가 며칠 내리더니 마을이 물에 잠길 위험에 처했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물길을 바꿔 마을이 잠기지 않도록 했다. 그렇다. 마을을 구했다.
아뿔싸, 마을을 구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시간’이 생각났다. 점점 몸이 굳어갔고 다섯 고래는 결국 바위가 됐다. 마을사람들은 고마워하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근사한 이름을 붙여줬다. ‘아름다운 바다에서 온 바위’란 뜻의 여수(麗水)바위. 훗날 5남매 이름은 황호동, 이현동, 용호동, 미호동, 삼정동 마을 이름이 됐다. 바위가 된 다섯 고래가 정착하게 된 이 마을은 고래골이 됐다.
#2. 꿈에서 깼다
703번 버스 안이다. 초록버스 71번으로 환승하기 위해 신탄진역 정류장으로 가고 있다. 71번 버스는 용호동과 대전동신과학고를 오가는 외곽 버스다. 직동종점도 경유한다. (직동이 종점인 71번도 있다.) 이번 초록버스 여행 목적지인 이현동(대덕구)으로 가는 여정이다.

용호동에서 오전 11시 35분 출발한 버스가 11시 41분 신탄진역 정류장을 스쳐가듯 출발했다. 71번 버스는 노선 자체가 유람이다. 금강과 대청호반을 따라 가는 노선이다. 금강 물길 따라 대청댐 방면으로 달리다가 보조댐/삼정취수장 지나 추동 방면 추동길로 접어든다. 추동길(대청호수로)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자전거 자유여행코스 60선’에 선정됐다. 사계절 드라이브코스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다. 71번 버스는 추동길과 노선이 거의 일치한다.
왼쪽으로 금강이 보이더니 금세 대청호를 끼고 달린다. 버스 창밖에서 쾌청한 호수빛이 전해온다. 윤슬을 한참 바라본다. 대청호오백리길 유람 때마다 밟았던 흔적도 스친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 풍경을 열심히 찍어본다. 결과물은 예상대로 딱 그만큼이다. 결과는 별로여도 사진찍는 몸짓 그것으로 만족할 때도 있다. 쉼없이 S자 길을 달린다. 어느해 봄 후배들과 자전거 타고 이곳 넘던 ‘고통의 시간’을 떠올릴 찰나 벌써 갈전동이다. 삼정동·갈전동 지나면 금방 이현동이다. 신탄진역 정류장에서 17분 걸렸다.

#3. 고래골
이현동은 뒷산 모양이 둥글넓적한 배[梨] 같이 생겼다 해서 배고개(배오개)라 했다. 한자로 배나무 이(梨), 고개 현(峴)을 써서 이현(梨峴)이 됐다. 지금은 두메마을, 오색빛호박마을, 더맑은이현마을 등 별칭이 많다. ‘고래골’도 있다. 여수바위 설화 때문이다. 대덕물빛축제 고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위로 굳은 용왕의 손주들을 만나러 간다. 설화처럼 바위도 고래 형상일까.
이 마을에 몇 번 왔었지만 여수바위는 한 번도 '영접'하지 못했다. 의외로 멀지 않았다. 마을을 걷다보면 곧 이정표가 있는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10여 분 뒷산으로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마을회관 ←0.6㎞ 여수바위 →0.2㎞’ 이정표가 보이면 금방이다. 역시 고래 형상은 아니었다. 고래 형상이었다면 고래바위라 부르지 않았을까. 여수바위를 고래처럼 형상화한 동화책을 본 아이들이 실제 모습에 실망했다는 얘기도 있다. 포스는 역대급이다. 크기와 기세가 진취적이다. 왜 고래와 연관지었을까 궁금했다. 앞뒤에서 멀리서 가까이서 유심히 봤다.

고래 한 마리가 물 위로 치솟아 올랐다. 날갯짓이라도 하려는 걸까. 여수바위 보러 가면 여러 각도에서 잘 보시라. 용솟음치는 고래가 보인다. 여수바위와 첫 대면은 3D 영상을 떠오르게 했다. 여수바위는 지금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인간들을 사랑했던 용왕의 다섯 손주가 소원을 이뤄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나도 소원을 빌었다. “로또 한 번~.”
#4. 어떤 이의 꿈
마을 전체가 미술관 같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벽화와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시선을 잡는다. 시작은 20여년 전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조윤상·신정숙 부부였다. 이 부부가 도예공방 ‘하늘강아뜰리에’를 운영하면서 이곳을 거점으로 예술마을의 움이 트기 시작했다. 또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잇따르며 지속 가능한 문화콘텐츠가 이어지고 있다. 하늘강아뜰리에는 대전시 지정 민간정원 1호다.





마을 곳곳 일상의 예술작품들은 발길을 붙잡는다. 가장 눈길을 잡는 것은 감돌고기 작품이다. 여기저기 출몰하는 감돌고기(작품)가 반갑고 신기하다. 마을길에 감돌고기 벤치도 있는데, 신정숙 작가에 따르면 “동네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계시다가 ‘퇴근길’에 쉬어가시는 벤치”라고 한다.
감돌고기 벤치를 보게 되면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고 또 거기 앉아 기념사진을 안 찍을 수 없는 포토존이다. 마을의 감돌고기 작품은 감돌고기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감돌고기는 대전의 깃대종이다. 대청댐이 준공된 1980년 담수로 금강유역에서 자취를 감춘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이 마을의 또다른 시그니처는 ‘거대억새습지’다. 이곳에서도 감돌고기 작품을 여럿 볼 수 있다. 억새습지 초입에 높은 키의 조형물이 있는데 바람의 움직임으로 들리는 풍경소리가 인상적이다. 풍경소리는, 대청호 담수로 농지를 잃고 사향(思鄕)한 이주민들과 하천을 떠나간 감돌고기를 소환해 위로한다. 이곳에 오시거든 풍경소리 꼭 들어보시라.

#5. 찬샘마을로
억새습지는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두메마을길) 종점이자 2구간(찬샘마을길) 시작점이다. 억새숲 사잇길을 걸어 찬샘마을로 간다. 겨울이어서 많이 황량하지만 분위기 나쁘지 않다. 대청호를 아끼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맘껏 울고 가도 되는 곳, 대청호.’ 딱 그런 곳이다. 잠시 뒤 대청호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내민다. 섬 같은 뭍과 뭍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물길을 본다. 저기 멀리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보일 듯하다. 크고작은 고민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치유를 위한 몸짓이다.



대청호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이다 발걸음을 옮긴다. 찬샘마을로 건너가는 덱(deck)을 건넌다. 대덕구에서 동구로 넘어가는 다리다. 예전엔 다리가 없어서 찬샘마을로 건너가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신발·양말 벗고 건넌 적도 있다. 덱 다리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 우아하게 건너 찬샘마을로 넘어왔다.
찬샘마을은 오래 전부터 농촌체험마을로 유명한 곳. 봄여름가을이면 유치원·어린이집 단체손님 버스가 줄잇는다. 아이들 체험프로그램이 많아서 인기가 높다. 언젠가 ‘1박2일’ 시즌1 때 촬영을 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찬샘마을 오면 만나는 멋진 문구, ‘대청호오백리길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입니다.’ 이제 마을 뒤편 노고산성으로 갈 차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발끈을 묶는다. 아, 대청호오백리길 구간마다 안내판이 있는데 2구간 찬샘마을길 안내에 쓰인 근사한 사진이 있다. 쑥스럽게, 이 사진 모델은 나다.

#6. 노고산성
직동 지명은 ‘피골’이라는 마을이름에서 비롯됐다. 피골은 노고산성에서 흘러내린 백제군과 신라군의 피가 내를 이뤘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훗날 동(洞) 단위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한자로 표기할 때 기장 직(稷) 자를 음차해 직동(稷洞)이 됐다. 그런데 왜 피골을 한자로 표기할 때 기장 직(稷) 자를 음차했을까? 우선 사람의 피를 의미하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피 대신 잘 알려진 벼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인 피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피를 의미하는 한자가 없다. 그래서 피와 비슷하게 생긴 기장을 생각했고 기장을 뜻하는 ‘직(稷)’ 자를 따 왔다. 노고산성은 전망 좋은 곳으로 유명하지만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마을에서 이정표 따라 뒷산 노고산(250m)으로 오른다. 30여 분 오르면 대청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곧 만나는 돌무더기가 산성이었음을 말해준다. 몇 걸음 더 가면 큰 바위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할미바위다. 노고산(老姑山) 이름은 할미바위에서 유래했다. 아들을 병사로 보내고 매일 새벽 치성을 드리던 노모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전망 확 트인 쉼터에 오르면 마음도 뻥 뚫린다. 수묵화 같은 대청호 비경을 감상한 뒤 소원의 종도 쳐본다. 찬샘정 방향으로 내려간다. 20여 분이면 하산이다. 냉천버스종점까지 1㎞, 15분 걸어가서 오후 3시 40분 출발하는 61번 버스를 탔다. 판암역까지 금방이다.
글·사진=차철호 기자
71번 버스는 노선 자체가 대청호 유람입니다. 금강변 달리다가 대청호반으로, 창밖엔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요. 이현동 두메마을에 내리면 이야기도 많고 볼 것도 많아요. 왜 고래골이라고 부를까요? 여수바위도 찾아갑니다. 거대억새습지에서 休~. 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대덕구에서 동구로 찬샘마을로 갑니다. 뷰 끝판왕 노고산성 갔다가 찬샘정 내려서면 6㎞, 오늘도 위로와 휴식. 당신의 마음을 안아줍니다. ♠








<2025.2.3 금강일보 차철호 기자의 글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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