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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과 한국사람

돌까마귀 2025. 2. 12. 17:49

<2025.2.8 충청메세지에서 김철홍 자유기고가,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의 글 퍼 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조선사람’이라 하지 않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을 ‘한국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미국·일본에 사는 재미·재일교포를 ‘한국사람’으로 부르기엔 어색하다. 미국에 사는 교포를 ‘한인’이라 많이 하고 ‘한인회’, ‘한인사회’, ‘한인교회’라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사는 동포를 ‘한인’이라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란 호칭이 처음 등장한 건 1897년 12월 2일자 독립신문이다. 그후 1923년 5월 19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되기 시작된 춘원 이광수의 소설 ‘선도자’에 ‘한국사람’이 잠시 다시 등장한 이후 1949년부터 ‘한국사람’이란 용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새 나라 사람을 호칭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1962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한국사람’이란 표현이 처음 나온 걸 보면 ‘한국사람’은 20세기 후반에서야 만들어진 새로운 인간형인 셈이다. 조선사람이 한국사람으로 변신의 역사는 실로 짧다.

조선 건국 전 1,000년 불교 국가로 부계 혈통, 즉 宗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에 宗法제도가 뿌리내리게 되는데, 이 제도의 핵심은 祭祀로, 제사를 지내려면 祠堂이 필요한데 사당 역시 조선 초에 처음 지어지기 시작하고 같은 성씨 宗親들 끼리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族譜를 처음 쓰기 시작한다.

제사, 사당, 족보는 오래된 조선의 전통으로, 한국 사람들의 전통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 초기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낯선 방식의 제사는 백성들의 강한 저항으로 실제 제사 지내고 사당 짓고, 족보를 만드는 것은 15~16세기 조선 중기에 가서야 뿌리내리게 되어 생각보단 훨씬 최근에 형성된 관습,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사람 중 6, 70%가 제사를 지내고 있고 심지어 제사를 금지하는 개신교도 중 20%가 제사를 지낼 정도라고 한다.

또한 1476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주자 성리학·유교적인 족보인 ‘안동권씨 성화보’는 그 중요한 의미와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족보 문화의 시작으로 이어오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기록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 김해김씨 시조, 박혁거세 등의 천년 전 이야기를 알 방법이 없어 당시의 족보는 존재하지 않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제로 인해 인구의 90%, 16세기까지는 인구의 40%가 姓氏가 없었다는 것이다. 성씨가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벼슬과 지위를 나타내는 爵位의 성격이 강했음을 말해준다. 다행히도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어 모든 사람이 성과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1909년 대한제국이 지금의 주민등록시스템인 民籍法을 시행하면서였다.

우리나라는 성씨가 ‘지역성’과 ‘본관’으로 구분되고 250개 이상의 성이 있다. 김씨 인구만 전체 인구의 1/4이 넘는 1천만 명이 넘고 그 뒤를 이씨가 7백만 명, 박씨가 4백만 명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밀양 박씨만 해도 1천만 명이 넘는데, 어떻게 한 성이 몇백만 명씩 될 수가 있는가?
바로 미국 흑인들의 성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배우로 얼마 전 타계한 제임스 얼 존스의 Johns는 영국의 대표적인 성이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 윌 스미스의 Smith 역시 아담 스미스처럼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성이다. 이처럼 흑인들이 백인들의 성인 존스, 스미스 성이 많은 이유는 1864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도 성과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이들 대부분이 당시 자기 주인 또는 자산가, 권세가의 성이나 이름을 따오게 된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나라도 당시에 권세를 누리며 재산이 많고 힘센 사람의 이름을 가지려 하다 보니까 김·이·박씨가 많은 것이다.

또한 조선 사람은 親해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이한 측면이 있는데 오늘날 한국 사람도 親戚, 宗親과 같이 모든 사회관계를 ‘친’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보통 일상에서 우리는 친구의 형을 만나면 “형님”, 친구의 누나를 만나면 “누님”, 친구의 부모님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친구 아버지를 만나면 “Mr. Kim”, 친구의 어머니는 “Mrs. Lee”라 부른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비숫하다. 대학에 입학하면 한동안 신입생 서로가 서먹서먹해서 말도 못 걸고 그렇다고 존댓말 할 수도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런 시기에 선배들에게 가족처럼 “형, 오빠, 언니, 누나”로 대하는 호칭 덕분에 선배들은 가정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서열상 역할을 자처하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바람에 어느 순간 동기끼리의 동질감,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진다는 건 그 사람이 우리 가족처럼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사람을 여러 번 만나면 ‘저 사람이 가족이라면 무슨 관계가 될까?’ 하면서 접촉하면 대부분 형, 누나, 동생, 오빠, 언니 관계로 편해진다. 즉 우리 얼굴 표정, 몸가짐이 이런 틀 속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흔히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 아줌마’로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요샌 아예 식당에서 ’이모‘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 “이모, 깍두기 좀 더 주세요.”하면 조카같이 마음으로 더 주기 때문이다.

요즘 재밌는 건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과는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형, 오빠, 언니, 누나 이러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건 五倫行實圖에 나와 있듯이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어른과 아이, 친구 관계의 예 등 인간의 대인관계를 5가지로 보고 조선이 만들어온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고려 사람이 조선 사람으로 나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한국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모든 인간관계를 가족 관계로 소급시키려 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인데, 이것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과연 올바른 것인가? 모든 사람을 대등하고 똑같이 대해야 하는데, 친소 관계가 팽배한 문화·사회가 때로는 불공평하거나 편향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세대 간,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직면할 수 있는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풀기 위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과 제도적인 시스템 구축이 작금의 어려운 상황에 지상과제임이 틀림없다. 또한 우리 모두의 의식 전환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우리 한국 사람, 대한민국에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국격과 위상이 안전한 나라, 우아한·럭셔리·대박 그런 느낌의 이미지와 명예 회복에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