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이재국의 글 퍼 옴
LG 트윈스의 뿌리 ‘MBC 청룡’ 창단의 비화비사
MBC의 독자적 프로야구단 창단 시도
문화방송(MBC)은 1981년 5월경 창사 20주년 기념사업으로 프로야구팀 창단을 구상, 이호헌에게 구체적인 창설계획을 요청했다. MBC의 구상은 현재처럼 전국에 프랜차이즈를 분할, 조직적인 프로야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축구의 ‘할렐루야’처럼 우수 선수만을 모아 1개팀만 구성, 프로야구의 싹을 틔우겠다는 계획이었다. MBC에서 야구해설을 맡아 기회 있을 때마다 야구의 프로화를 부르짖어온 이호헌은 MBC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대략적인 설계도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야구사 1149쪽>
메이저리그 역사를 보면 1869년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최초의 프로야구팀으로 창단했고, 일본프로야구 역사를 보면 193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당시 대일본동경구락부)가 최초의 프로야구팀으로 창단했다. 그 이후 속속 프로팀이 만들어지면서 리그가 형성됐다.
1982년 6개 구단 체제로 출범한 KBO리그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어쩌면 한국프로야구도 MBC 한 팀으로 먼저 시작됐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MBC 이진희 사장은 야구에 조예가 깊었고 추진력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청와대 실세들과도 교분이 두터웠고, 파워도 있었다. 실제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직후인 1982년 5월에는 문화공보부장관으로 임명돼 청와대로 입성하기도 했다.
1981년에 그는 독자적인 프로야구단을 만든 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기업들을 끌여들여 프로야구리그로 만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계획만 세운 게 아니라 실제로 이미 경기도에 훈련장 부지까지 확보할 정도로 MBC 프로야구팀 창설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7월쯤 정부 쪽에서 주요 스포츠의 프로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비서실 이상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이를 주관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마산 출신의 우병규 정무제1수석비서관을 통해 동향 출신 야구인 이호헌 씨(2012년 별세)를 소개 받았고, 이 씨에게 프로야구 창설에 관한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때마침 MBC 이진희 사장이 그동안 구상해 온 독자적인 프로야구 창립계획을 정부에 보고했다. 그러잖아도 방송사가 프로야구에 참여한다면 홍보와 흥행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야구의 프로화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1981년 8월쯤이었다. 이호헌 씨는 훗날 KBO 초대 사무총장이 되는 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 이용일 씨를 이상주 교문수석에게 소개했고, 둘이 함께 20일 만에 18쪽짜리 ‘한국프로야구창설계획서’를 완성했다.
이용일 씨가 만든 당초 계획에 따르면 4개팀을 창단해 한국프로야구리그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당시 실업팀과 대학팀 선수 명단을 놓고 출신 고교별로 분석한 결과 ‘서울-경기-인천-강원’을 1개팀으로 묶고, ‘충청-호남’ 1개팀, ‘대구-경북’ 1개팀, ‘부산-경남’ 1개팀으로 나누면 전력 균형이 맞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추후 이를 수정해 총 6개팀(서울 1개팀, 경기-강원 1개팀, 충·남북 1개팀, 전·남북 1개팀, 대구-경북 1개팀, 부산-경남 1개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1981년 10월 5일, 프로야구 창립계획이 정부 관계기관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서 프로야구단을 만들 기업을 물색하는 작업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서울 지역은 MBC에 우선권이 돌아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미 MBC가 독자적인 프로야구 창단계획을 갖고 있었던 데다 이진희 사장이 이미 프로야구 창설 작업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1순위로 창설 의사를 밝혔다.
롯데그룹은 1975년부터 실업팀 ‘롯데 자이안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부 측에서 프로화를 권유하자 부산과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경남 울주군 출신이라 경남을 연고지 삼아 프로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시작한 곳이 대구이므로 대구와 경북을 프랜차이즈로 창단하기로 했다.
불과 10일 만에 3개 구단이 정해졌다.
그러나 초반에 속도를 내던 창단 기업 물색 작업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호남, 충청, 경기·강원의 3개팀 후보 기업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참의사를 나타냈다. 두산은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때 가뭄에 단비처럼 두산그룹에서 “프로야구를 하고 싶다”는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당시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이 미국 출장을 가 있는 사이에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박용곤 회장이 제 경동고 1년 후배입니다. 박 회장이 당시 그룹계열사인 동아출판사 사장한테 ‘이용일 선배한테 쫓아가서 꼭 우리 두산도 프로야구에 끼워달라고 부탁하라’고 심부름을 시킨 거예요. 박 회장이 귀국한 뒤에 만났죠. 그래서 제가 ‘서울은 MBC로 확정됐으니 두산이 대전을 맡아줘야겠다’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박 회장이 펄쩍 뛰더군요. ‘당연히 두산이 서울 아니냐’면서.”
< 이용일 전 KBO사무총장의 인터뷰 내용>
두산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은 1896년 서울의 배오개(종로4가)에서 출발했다. 두산과 충청권을 연결할 고리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는 인천 지역을 맡을 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차라리 서울과 가까운 인천으로 가겠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결국 청와대에서 시그널이 왔다. “일단 프로야구를 조직해야 할 것 아니냐. 3년 뒤에는 서울로 올라오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두산이 대전을 맡아줄 것을 종용했다. 두산이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단 대전으로 내려간 뒤 1985년 서울 입성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해태가 광주.호남을 맡고, 삼미가 인천.경기.강원에 자리잡는 것으로 확정되면서 원년 6개 구단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MBC가 ‘최초의 서울팀’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각 구단은 팀 명칭부터 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두산그룹이 ‘OB 베어스’로 팀명을 확정하고 심벌마크까지 만들었다. 당시 OB맥주는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다. OB맥주가 1980년 ‘OB베어’라는 체인점을 모집한 뒤 곰을 상징 동물로 삼았는데 그것을 그대로 따왔다.
해태는 민족기업이라는 자부심을 뿌리내리겠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용맹한 동물인 호랑이(타이거즈)를 앞세우기로 했다.
삼성은 라이온즈로 정했다. 삼성그룹이 창업 이래 사자를 간판 동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롯데는 실업팀에서 사용한 ‘자이안트’를 넘겨받아 ‘롯데 자이언츠’로 새출발하기로 했다.
삼미는 사내 공모를 통해 “스타 없는 프로팀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뜻에서 슈퍼스타즈를 닉네임으로 정했다.
다른 팀들은 한국프로야구위원회(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창립 총회가 열린 1981년 12월 11일 이전까지 속속 팀 명칭을 발표했지만, 문화방송은 그때까지 팀명을 정하지 않았다. 원년 6개 구단 중 가장 늦게 애칭을 정했다.
MBC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12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팀 애칭을 공모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당시 컬러TV 1대와 자전거 3대를 상품으로 내걸고 팀 애칭을 공모한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런 다음 12월 19일 마침내 ‘MBC 청룡’이라는 팀 명칭을 확정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지점은 전문의 기사처럼 공모 결과 ‘드래건스’와 ‘이글스’의 의견이 박빙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에 컬러TV라는 경품이 커 보여서 그런지 무려 1만1200명이 응모했고, 그중 435명이 ‘용’을 뜻하는 ‘드래건스(Dragons), 410명이 ’독수리‘를 의미하는 ’이글스(Eagles)’라는 이름을 적어 보냈다. 불과 25표 차이였다. 하마터면 ‘MBC 이글스’가 먼저 탄생할 뻔했다. 그랬다면 현재의 한화 이글스는 다른 애칭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 그렇다면 MBC는 왜 영어 ‘드래건스’가 아닌 우리말 ‘청룡’으로 결정했을까.
이에 대해 MBC 청룡 조광식 초대 단장(2011년 별세)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공모 결과 드래건스란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외래어인 데다 가까운 일본에도 유사한 팀명(주니치 드래건스)이 있어 청룡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현 (MBC) 사옥이 있는 정동은 예부터 용마루로 불리는 용터였다는 고설에 근거해 청룡을 심벌로 정했습니다.”
MBC 청룡의 엠블럼은 1월 20일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 용머리의 형상을 한 선수가 하늘을 날며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한편으론 촌스럽기도 하지만, 1980년대의 향이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 MBC 청룡을 좋아했던 어린이들은 이 그림을 사랑했고, 지금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엠블럼을 보면 가슴 셀렌다는 팬이 많다.
원년의 다른 5개 구단은 모두 영어로 된 팀명을 썼지만, MBC는 유일하게 우리말인 청룡을 선택했다. 나아가 지금까지 KBO리그에 존재한 역대 17개 팀명 중에서도 우리말로 된 팀명은 청룡이 유일하다.
그런데 정작 MBC 청룡의 심벌마크에는 한자를 사용해 ‘MBC 靑龍’이라고 표기하고, 1982년 개막전에 입은 첫 공식 유니폼에는 가슴에 영어로 ‘ChungYong’을 흘려 쓴 점이 흥미롭다.
●원년 6개 구단
▲OB(두산) 베어스(Bears)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Lions)
▲해태(KIA) 타이거즈(Tigers)
▲삼미 슈퍼스타즈(SuperStars)
▲롯데 자이언츠(Giants)
●추후 인수 및 창단 구단
▲청보 핀토스(Pintos)
▲빙그레(한화) 이글스(Eagles)
▲태평양 돌핀스(Dolphins)
▲LG 트윈스(Twins)
▲쌍방울 레이더스(Raiders)
▲현대 유니콘스(Unicorns)
▲SK 와이번스(Wyverns)
▲우리(넥센-키움) 히어로즈(Heroes)
▲NC 다이노스(Dinos)
▲kt 위즈(wiz)
▲SSG 랜더스(La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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