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의 유래
1년의 마지막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하는데,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밤이라는 뜻이다.
제석의 풍속
제석의 풍속으로는 먼저 궁궐에서 지내는 '연종제(年終祭)'와 '묵은해 문안', 그리고 민간에서 행 하는 '묵은해 세배', '수세(守歲)', '세찬(歲饌)' 등이 있다.
연종제와 묵은해 문안
연종제란 궁중에서 한 해가 끝남을 기념하여 지내는 의식으로,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에서 이 연종제 행사를 행하여 왔다. 이때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제금[銅琴]과 북을 울리면서 궁안으로 두루두루 돌아다니는데, 이를 나례(儺禮)라고 한다. 이것은 1년 동안의 묵은 잡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깨끗하게 맞이하려는 의도에서 행하였던 것이다. 또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에 대포를 쏘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고 하였다. 지방 관아에서는 소총을 쏘고 징도 울렸다. 이러한 풍속은 고려 정종(靖宗) 때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인데,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에서 행하여졌다. 이에 대한 기록은《고려사(高麗史)》(卷六十四)에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조와《조선왕 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종실록 卷一三三) 동계대나의(冬季大儺儀)조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조선 성종(成宗) 때의 학자 성현(成俔)의《용재총화》(卷一)에 의하면 구나(驅儺)의 일은 관상감이 주관하는데, 섣달 그믐 전날 밤에 창덕궁, 창경궁의 대궐 마당에 들어가서 하는 행사로, 그 제도는 악공(樂工) 1명이 창사(唱師)가 되어 붉은 옷에 가면을 쓰고, 방상씨 4명이 황금빛 네 눈으로 곰의 껍질을 쓰고 창을 잡아 서로 치고 지군(指軍) 5명은 붉은 옷, 가면과 화립(畵笠)을 쓰고, 판관(判官) 5명이 푸른 옷, 가면과 화립을 쓰며, 조왕신 4명은 푸른 도포·복두(腹頭)·목홀(木笏)로 가면을 쓰고, 소매(小梅) 수명은 여삼(女衫)을 입고 가면을 쓰되, 웃저고리 아랫치마를 모두 홍록(紅綠)으로 하고, 긴 장대기(旗)를 손에 잡고, 12신은 각각 그 귀신의 가면을 쓰는데, 예를 들어 자신(子神)은 쥐의 형상 가면을 쓰고, 축신(丑神)은 소의 형상의 가면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며, 악공 10여명은 도열을 가지고 이를 따르는데, 아이 수십 명을 뽑아서 붉은 옷 붉은 두건(頭巾)으로 가면을 씌워 진자(振子)로 만들고, 창사(唱師)가 불러 이르기를, "갑작 (甲作)은 흉( 凶)을 먹고, 불주(佛胄)는 범을 먹고, 웅백(雄白)은 매(魅)를 먹고, 등간(騰簡)은 불상 (不祥)을 먹고, 남제(攬諸)는 고백(姑伯)을 먹고, 기(奇)는 몽강양조(夢强梁祖)를 먹고, 명공(明共) 은 폐사기생( 集死寄生)을 먹고 위함(委陷)은 츤을 먹고, 착단(錯斷)은 거궁기등(拒窮奇騰)을 먹고, 근공(根共)은 고(蠱)를 먹을지니 오직 너희 12신은 급히 가서 머무르지 말라. 만약 더 머무르면 네 몸을 으르대고 너의 간절(幹節)을 부글부글 끓여 너의 고기를 풀쳐내고 너의 간장을 뽑아 내리니 그때 후회함이 없도록 하여라" 하는데, 진자가 "그렇게 하겠나이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복죄(服罪)하면 여러 사람이 "징을 치라" 할 때 이를 쫓아낸다 하였다.
결국 대궐과 관아에서의 이와 같은 풍속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관상감에서 행하였던, '대나 (大儺)'라는 의식의 유속(遺俗)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조 말기까지 섣달 그믐날 조관(朝官) 2 품 이상과 시종(侍從) 신하가 대궐에 들어가서 묵은해 문안을 올린다는 기록이《동국세시기(東國 歲時記)》에 전한다.
대청소·세찬 만들기
제석 다음 날이 바로 설날이다. 그래서 제석에는 설날 차례를 지내기 위 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한다. 이 세찬은 살림살이의 정도에 따라 또는 차례를 지내는 집과 안 지내는 집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흰떡은 옛날에 멥쌀 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 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떡가래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떡방앗간에서 뺀다.
한편 옛날 제석에는 상사나 친척 또는 친지들에게 세찬으로 쓰는 생치(生雉)·전복·어란(魚卵) ·육포(肉脯)·겸자·곶감·대추 등을 선물하여 문안하였고, 지금은 주로 고기·생선·과일 ·술 등을 보내서 인사한다. 주부들이 세찬을 만들 때 남자들은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한다. 외양간을 청소하고 거름도 퍼 내며 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렇게 하면 묵은해의 잡귀와 액은 모두 물러가고 신성한 가운데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묵은 세배
섣달 그믐날 저녁에 사당에 절하고 설날 세배를 하듯 어른들에게 절을 하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그런데 이 묵은세배는 가까운 사이에만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시집간 딸들 이 친정 부모나 친척집에 가서 세배를 하는 것을 '망년과세(忘年過歲)'라고 한다. 전라도 진도 지방에서는 설을 앞두고 '몇뱃기'라 하여 자손들이 시부모나 친정 부모에게 음식을 차려 가지고 '名 日이바지'를 한다.
수세(守歲):이 날 밤에 방, 뜰, 부엌, 곳간, 변소 할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 놓고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한다. 이는 잡귀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며, 부뚜막 솥 위에 불을 밝히는 것은 조왕신을 위한 것이다. 이 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밤새도록 윷 놀이를 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운다. 충북에서는 한 해가 마지막 가는 밤이니 집에서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며, 바느질하던 것도 해를 넘기지 않게 한다. 전북에서는 이 날 밤에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고도 하며, 시루 떡을 해서 방안에 놓고 밥그릇에 쌀을 담아서 등잔불을 켜 놓아 불똥 앉는 것을 보며 재수를 본 다.
또 샘에다 바가지에 참기름 불을 만들어 띄운다. 옛날 궁중에서는 제석날 70세 이상 되는 조관(朝官)과 명부(命婦)에게 쌀과 생선 등을 하사하였다. 이 날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벽온단이라는 향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면 설날 이른 아침에 그 향 한 심지를 피웠다. 항간에서는 간혹 잘 만든 빨간 주머니에 이 향을 넣어서 차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석에는 한 해의 마지막 가는 날이므로 그 해의 모든 빚을 청산한다. 그래서 이 날은 빚을 갚고 또 빚을 받으러 다니는데, 만일 이 때 청산하지 못한 빚이 있으면 정월 보름까지 는 갚지도 않으며, 갚으라고 독촉을 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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