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잠시그친 해그럼 무렵에는
하교길 책가방 툇마루에 던져놓고
외양간에 배깔고 누운 누렁이 여물통에
어제 베온 시들은 소꼴 한삼태기 넣어주고
도롱이 걸쳐 매고 밀짚모자는 눌러쓰고
헌 소쿠리 손에 들고 차림을 마쳤으니
배방골 무논 가는길 강아지풀만 뽑아차면
새 물 냄새 맡고 오른 미꾸리가 기다린다
논두렁 물꼬아래 풀섶을 헤집으며
대소쿠리 받쳐대고 한쪽발로 몰아치면
아스라히 전해오는 미꾸라지 몸부림
아가미에 강아지풀 끼워 허리춤에 매단다
한곳에서 허탕치면 다른곳서 횡재할터
뉘엇 뉘엇 해질때까지 물꼬를 더듬으니
길잃은 메기까지 두어마리 건졌으니
매달린 미꾸리 무개에 바지춤이 내려간다
내달려 집에오면 기다리는 불호령은
숙제는 어이하고 무엇하다 왔냐지만
어머니 눈가에 비친 잔잔한 눈웃음에
허리춤 끌러드리면 말없이 받아드신다
우물가 독새기에 미꾸라지 풀어놓고
소쿠리 덮은 뒤에 한웅큼 소금 뿌리면
천지개벽이 따로없다 서로엉켜 요동치고
호박잎 뜯어넣고 주물러 씻어낸 뒤
가마솥에 불 지피고 푹 삶아 건져내어
체 받쳐 문지르면 뽀얀 국물 구수해라
애호박 풋고추에 대파와 정구지까지
얼가리배추 썰어넣어 천하일미 미꾸리국
마당에 멍석깐뒤 모깃불 피워놓고
바지랑대 끝에다 초롱불 메어달면
온가족 둘러앉아 저녁상을 펼쳤으니
한양푼 먹고나도 돌아서니 배 꺼진다
2009.7.28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속에 대청호반 신상동에서 돌까마귀 추억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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