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물 담기 전에는

돌까마귀 2022. 7. 17. 12:35

 

물 담기전 효뜰 심곡 사람들은

닷세마다 열리는

신탄진 장보러

배 고개를 넘었으리라.

 

갈밭사는 친구집 들러 물 한바가지 들이키고

덕고개 넘어 하산디에 이르면

둥구나무 아래서 사둔도 만나

시집간 딸년 소식도 듣고

사둔 등에 엎힌 외손자 재롱이 귀여워

지개 작대기 받쳐놓고

바지게에 담아온 계란 한 꾸러미

사둔 손에 쥐어 줬으리라.

 

 

물 담기 전 효들 심곡사람들은

바지게 가득 지고온

푸성귀며 알곡에다 인심까지 붙여 판 뒤

찢어진 마누라 고무신도 때웠고

아들놈 운동화도 한켤래 샀으니

허리 꾸부러진 노모에게는

털 쉐타 하나쯤은 챙겼으리라

 

장터 주막집 주모 넉살에

방아간 전표 건내고 대취 하며는

지갯다리에 매어논 갈치

괭이 놈이 물어 가도 모르고

육자배기 한가락에

젓가락 장단이 흥겨웠으리라

 

 

돌아 오는길

물 담기 전 효뜰 심곡 사람들은

할애비 산소 올려다 보며

시월 시향 걱정도 했을법 하고

해바라기 씨 영글면 기름짜서

등잔불 밝힐 궁리도 하였으리라.

 

실 개천 건너며

지난 여름 동네 천렵때 함께 끓여 먹은

매운탕 생각에 침 삼키고

집 앞에 다다르면 평상에 널어 놓은

다음 장날 내다팔

태양초 건사도 하였으리라.

 

 

뒤켠 부로끄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은

가을이 오는게 두려울 터이 지만 

 

물 담기 전

효뜰 심곡 사람들은

파아란 가을 하늘 쳐다보며

양지뜸 골짝 다랭이 논

나락 잘 영글기를 빌었으리라

 

 

2010.9.23 추석 다음날 대덕구 갈전동 대청호반에서

 

'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 옆 에 게  (0) 2022.07.17
전남 담양/순창 강천산에서  (0) 2022.07.17
고향 가는 길  (0) 2022.07.17
山上 露宿者  (0) 2022.07.17
그와 나  (0)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