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둘레산길에 취하여 원거리 산행을 잊은지 벌써 여러해, 한달에 두어번 산악회를 따라 다녀 오기는 하여도 예전에 비하면 鳥足之血인데 월요일 하루를 쉬고 모처럼 집 뒤의 보문산에 올라봤다.
대전의 명산이랄수 있는 보문산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많다.
대충 헤아려 봐도 160여개가 넘는데 그것도 100m 이내의 옆길이나 200m이내에서 합쳐지는 길을 빼드라도 그 정도다.
보문산은 산자락의 범위도 상당히 넓어, 북쪽기슭의 문화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대사동, 부사동, 석교동, 호동을 지나 옥계동 학고개를 넘어서면 동구의 이사동으로 이어지고, 오도산 아래의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구완터널 위 원앙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중구의 구완동, 무수동, 사정동, 산성동으로 이어지니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시루봉 또는 보문산성을 향하여 능선과 계곡으로 길이 연결된다.
한 두 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는 길도 있고, 이쪽 산자락에서 산꼭데기를 지나 저쪽 산기슭까지 6시간이상 걸리는 길도 더러있다.
내가 대전에 터를 잡은 30여년 전, 보문5거리에서 케이블 카 타는 곳 까지의 도로 한 가운데는 지금은 덮혀버린 대사천이 흘러가고 있었다.
양쪽 차도, 천변쪽 프라타너스 밑에는 오징어와 땅콩, 홍합과 해삼, 멍개등 갖가지 먹거리와 아이들 장난감이며 선글라스, 라이터, 악세서리등을를 파는 노점이 널려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야바위꾼들도 뺑뺑이와 컵돌리기며 장기판등을 펼쳐놓고 행락객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노점과 마주보는 상가에는 활쏘기, 총쏘기, 공 던지기등 각종 놀이장이 발길을 잡았었고, 케이블카 내리는 곳에서부터 UN탑까지의 비탈길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관상, 사주, 손금을 봐주던 수많은 도사님들이 날보고 "당신은 보문산에 묻힐 상"이라고 하며 점괘를 일러주든 그런 보문산이었다.
눈 쌓인 구불길을 터벅이며 올라가 꿩 또는 산토끼 볶음탕에 고래표 선양소주 잔을 기울이던 우영골과 윗사징이,
봄이면 고사리도 꺽고 홋잎도 뜯던 무수리 배나무골, 여름이면 가재며 피래미, 꺽지 잡으로 천렵갔던 구완리 어청골,
가을이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도토리, 알밤 주우러 갔던 범골과 누렇게 익은 벼 논두렁에서 메뚜기 잡든 이사리 들판.
1993년 대전엑스포장의 꿈돌이동산이 문 열기 전까지 인산인해로 북적이던 케이블카와 보문산 그린렌드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던 곳,
남대전고 뒷편과 복전암 뒷편, 미류나무숲에서 양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남정네들을 꼬시던 이동주보 모포부대가 있었던 곳,
백골저수지 아래 닭 백숙집 촌의 한복 입은 색시들의 젓가락 장단에 맞춰 나훈아의 "고향역"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목청껏 부르든 곳,
어렵던 시절, 타처 사람들이 1 년 동안 모은 돈으로 관광버스 대절하여 봄 놀이, 단풍 놀이를 오던 곳,
한복치마 허리를 넥타이로 동여메고 꽹가리를 부셔저라 두들기며 고된 시집살이 스트레스를 풀던 엄마들의 춤사위가 있었던곳,
이제는 술취한 아낙네들의 장구소리도, 아이스케키 사달라고 때쓰는 아이소리도, 젓가락 장단과 노래소리도 추억속에 묻어두고
건강을 위해, 웰빙을 위해, 힐링을 위해 땀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보문산으로 변하였다.
그래도 정이 있고 풍류가 있었던 그시절이 그립다.
2010.7.27 한여름날
모처럼 보문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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