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언저리길 답사후기

壬寅年 마지막 수요벙개 / 대전 최상급 조망터 3곳에서

돌까마귀 2023. 1. 19. 17:24

언   제 :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어디서 : 이사동 유교민속마을누리길 일부와 구도동 누리길 일부, 대별동 초지공원길에서

누구와 : 한밭언저리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 8시 40분 대전역 동광장에서 출발한 산정마을행 52번 외곽버스가 원동네거리-대흥네거리-부사오거리를 거쳐, 석교동에서 대전천을 건너 가오동을 돌아 대성삼거리를 지나서 대별교를 타고 다시 대전천을 건너 산서로를 잠시 타고가다, 절암천 자라교를 건너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 종점에 닿아 우리 일행들이 모두 내리니 버스에는 기사님 혼자 남으셨다.

사우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장 박고 우측 골목길로 들어서

사우당 담장모퉁이를 돌아나가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대전광역시무형문화재인 "매사냥"의 기능보유자 박용순 응사가 기거하며  후계자 교육을 시키던 집은 대문에 붙은 황동 주물간판이 멀쩡한데 낯선사람을 경계하는 거위소리만 요란하고 횡하니 비어있으니

훈련받는 매와 교육생들이 박용순 응사와 함께 2022년 12월 10일 대전 동구 효평동 265 옛 효평초등학교에 문을 연 "한국전통매사냥 전수체험관"으로 모두 옮겨 가고 황동주물간판을 미쳐 옮겨 달지 못한 듯 하다.

1961년 10월부터 1963년 3월까지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崔德新)이 쓴 광영지 표석 / 박정희 정부와 불화로 1976년 미국으로 건너 가 1981년 북한 방문 후 1986년 북한에 정착하자 누군가 표석의 이름을 파내 버렸다.

물레방아골로 들어가

소화동천을 살펴보며 이도령님이 가져온 家釀酒 막걸리로 기력을 보충 한 뒤

대전시기념물 25호 비파산성(琵琶山城)을 향해 된비알 솔밭길을 올라 가는데

미세먼지로 대전시가지와 보문산 조망이 시원찮아서 대전 최고의 조망터 조망이 별로일까봐 은근히 걱정된다.

비파산성 동쪽 끝자락 봉우리에서 동쪽능선을 타고 

끝까지 나가면 孝烈婦 파평윤씨 묘소이니 탁월한 조망터는 베낭을 내려 놓고 50미터 쯤 된비알을 내려가야 한다.

되돌아 올라와 반대편 조망터에서 지프재로도 불리는 비파치(琵琶峙)도 鳥望하고

근무를 마치고 30번 외곽버스편으로 비파치에 내린 2명의 산벗을 만나기 위해 되돌아 나오며 오도산도 살펴 본다.

비파산성 장대지에서 두 산벗과 만나 막걸리잔을 나누고

서벽을 타고 남문방향으로 나가니

남벽 위에는 황금빛 양탄자가 깔려 있다.

남문터에서 비파사 출입로를 향해 된비알을 내려가는데 

산악오토바이가 망가뜨린데다 따스한 날씨에 눈까지 녹아서 엄청 질퍽거린다.

길모퉁이 바위 밑에 누워있는 동자승도 살펴보고

따스한 양지쪽에서 산상오찬을 마치고 지프재에서 산서로를 가로 질러

봄나물철부터 출입이 금지되는 조경수단지를 지나

313m봉에 베낭과 스틱을 모두 내려 놓고 탕건바위 조망터에 내려서니 모두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313m봉으로 되돌아 올라와 기력충전을 위해 막걸리 한잔씩 나눈 뒤 고속도로절개지 조망터에 내려서니

처음 와 본 산벗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급경사 내리막길 끝에서 절개지 순찰용 철계단을 타고 내려갈때는 아마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남대전물류단지 울타리 밖을 돌아 초지공원에 올라서 다시 한번 기력충전을 한 뒤

순환산책로에 올라서니 대전 最高峰 식장산을 덮고 있던 운무도 걷히고

고속도로 절개지 위에는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저멀리 보이는 보문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장씩 찍고

남대전장례식장을 향해 북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타고 나가는데 오전에 올랐던 비파산성 鳥望峰이 잘가라 인사하고

왕릉 못지않는 무덤은 산벗들의 입을 벌리게 한다.

능선 끝자락에서 오늘 올라갔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조망터 모두에게 내년 겨울에 다시오마 약속하고

남대전장례식장 별관 처마밑에서 기다리던 두 산벗과 만나 마지막 주유소를 펼쳐 쇠진한 그들의 기력을 북 돋아 주었다.

대전천 징검다리를 건너면 낭월동

기온은 급강하하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드는데

대별삼거리를 지나 운전면허시험장 승강장에서 501번 버스를 타고 달려간 호동우체국 옆의 아구찜은 정말 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