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5일 다음 블러그에올렸던 글입니다>
꽃샘 추위가 아무리 설쳐도 오는 봄을 어찌하랴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王昭君의 글귀를 차용하드라도 봄은 오고 있었다.
늦으막하게 베낭을 메고 급행1번 버스에 올라 원내동에서 신탄진으로 가는 704번에 환승하여 대전교도소 승강장을 지나 대정동에 내린다.
내리고 보니 원계산길이 한 정거장 다음이라
옛 진잠길을 200여m 걸어 낮으막한 고개 밑에 다다르니 계산동 정류장이 바로 여기로구나
왼편으로 돌아드니 계산1통에서 세운 아치가 반겨주고
고속도로 밑 지하통로를 지나니 저멀리 왼쪽부터 빈계산과 도덕봉, 복룡공원이 보인다.
호남고속도 변 매화나무 뒤의 통신탑은 봄 햇살을 온몸 가득히 받고 있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계산교 다리 넘어 비닐하우스 속에는 푸성귀가 무성하리라.
길가의 매화는 활짝 웃는 얼굴로 길손을 반기는데
비닐하우스 옆 전원 주택은 고요 속에서 낮잠을 잔다.
늙은 왕버드나무 아래의 빈 의자는 누구를 기다리는지?
한적한 사기막골의 젊디 젊은 할머니들이 손수레를 끌고 들로 나가시고
아침 나절 내내 왱왱거리던 경운기도 참 때가 되었나 매화나무 아래서 쉬고있다.
바람 구멍으로 들여다 본 비닐하우스 속은 봄의 향기가 가득한데
여름을 기다리는 포도나무 가지는 잎 눈이 돋아났다.
저 멀리 구봉산 마루금이 하늘과 맞 닿았고
빈계산 머리 위로 코발트 빛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두둥실 떠 있으니
빨간 콘테이너 옆으로 관저지구 아파트들이 키제기 하며
빈계산 자락 동막골 다리 밑 개울의 봄 미나리를 훔쳐 본다.
빈계산 자락 동막골 다리 밑 개울의 봄 미나리를 훔쳐 본다.
측백나무 울타리도 봄 옷으로 갈아 입었고
주인 떠난 집 녹슨 철 대문 넘어 스레트 지붕에 매화가지가 걸렸다
엄마 젖가슴을 닮은 하얀 봉우리들은 대나무 활대를 꽂은 호박구덩이인데, 길섶 채전 밭에는 시금치, 열무, 대파가 봄 볓을 만끽하며 잘 자라고 있다.
또랑가에 내려서니 투명한 봄빛 물 밑에는 봄 미나리가 아직 움츠려있고
사열을 받는 부대형으로 서 있는 마늘 밭 위로 빈계산이 미소지으며 다가온다.
노란 산수유와 하얀 매화 가지 뒤에도 빈계산은 내려와 있고
차가운 꽃샘 바람을 타고 날라온 벌들은 연신 꽃 잎 속을 들락거리는데
늙은 감나무는 아직도 겨울 잠에 빠져있다.
대전에서 처음보는 석와(石瓦)집 용마루 위로 키재기하는 저 소나무들은
붉은 함석지붕 아래의 흙벽돌 담장에 기대서서 따뜻한 하우스 속 기름진 땅에 뿌리박을 날을 기다리는 두릅나무 가지의 맘을 알려나
움트는 포도나무 밑의 연두색 융단이 나그네를 주춤거리게 하고
노오란 개나리 꽃은 나그네를 목 마르게 한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송죽이라 했던가? 송죽같은 절개에 대해 되새겨보며
봄이 활짝피면 뒤따라 필 잎순을 손끝 혀끝 코끝에다 두눈까지 더하여 4감(四感)으로 즐긴다.
늙었어도 매화는 매화이니 돌까마귀가 늙었어도 속알머리는 빠졌지만 까마귀임엔 틀림이 없을터이고
고향땅 양지 바른곳 잘 가꿔진 정원의 아담한 집은 까마귀를 포함한 모든 도시민의 꿈이리라
졸졸졸 흘러 내리는 물소리에 갈증을 느끼니 한 바가지의 청량수가 길손의 목을 적셔주고
주인 떠난 빈집의 스레트 지붕 위에도 봄볓은 쏟아지고
쓰러진 문짝 위에는 하오의 졸음이 몰려온다.
빈계산 자락 매실 농원에도 흰꽃이 만발하였고
한시간 반을 더듬어 온 길손은 빈계산 넘어 수통골에 빠져 봄 내음을 맡으니
놀며 쉬며 봄 꽃 구경 실컷하며 약 6km의 들길 산길을 두 시간 반 동안 걸었으니,
이제 수통골 버스 종점에서 102,103,104,113번 버스 중 먼저 출발하는 아무버스나 타고 집으로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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