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이전 추억여행 후기

왕가산 넘어 대전현충원과 용계동 유적지를 찾아서

돌까마귀 2025. 1. 21. 15:27

< 2009년 5월 21일 다음블로그에 쓴 글>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날씨는 흐리다. 대전선사박물관에서 실시하는 문화유적답사 "용계동 원삼국시대 유적지 발굴현장참관"에 참가할 겸 길을나선다. 중앙로역에서 지하철타고 현충원역에 내리니 오전10시, 아우라지님께 전화드려 유적답사 동행을 권하니 흔쾌히 승낙하시고 노은동길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바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을 참으면 집안에 큰화목이 있으리라! 보통사람은 실행하기 힘든 글귀도 있고

쾌적한 능선길을 걷다보니 수정약수터가 반겨주고 왕가산 정상은 300m 남었다.

 

넓찍 넓찍한 바위길도 간간히 나타나고 

 

확트인 전망바위에서 유성천 너머 박산(202m)도 구경하고

 

뿌연 안개속의 월드컵 경기장도 내려다 본다 

왕가산(200m)정상의 묘지가 철조망에 갇혀 있지만 돌아가는 길모퉁이의 돌무더기는 성황당처럼 보이는데 200여m를 더 나가 확트인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길 건너 국립묘지의 안산인 183봉 뒤로 갑하산과 우산봉이 손짓한다.

 

발 아래 펼쳐지는 미완성 도로는 중리4가에서 시작되어 한밭대교와 갑천대교를 건너 충대정문 앞과 월드컵경기장을 지나온 한밭대로인데 이 구간이 완공되면 계룡로를 가로질러 한밭대학교와 수통골로 왕복 8차선이 이어진다.

급경사 절개지를 우회하여 내려와 도로건너 크레인 붐대 끝부분의 공터로 들어서니 사유지 철조망옆으로 대나무 밭이 펼쳐지고 낡은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좌측 흐미한 산길을 더듬으니 대전현충원 철책이 가로막는 183봉이다.

철책을 좌측에 두고 희미한 발자취 따라 500여m를 나가니 노은동에서 현충원 조류사로 이어지는 후문 출입로 공사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왕가산 아래로 한밭대로와 이어지고 공사장 넘어 정면으로 열매마을과 새미래단지 사이로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고

좌측 북쪽으로 보이는 매봉산 너머는 반석동이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길이 완공되면 대전현충원 출입이 한결 수월할테고

공사장을 가로질러 철책 안쪽으로 나있는 비포장길을 조금 걷다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니 초소가 있는 164m봉인데

남으로 뻗은 능선은 시원하게 벌목이 되어 있고 좌우의 굵직한 소나무숲 짙은 향기에 취하다보니 어느세 현충원 조류사 앞길에 내려섰다.  

 

현충지 물속의 용머리를 닮은건지 악어머리를 닮은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않는 바위 하나가 정자를 향하여 

군침을 흘리며 물속에 잠겨있고  십장생을 아로새긴 분수탑에는 가뭄 탓인가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현충문 뒤로 나란히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현충탑과 충혼탑 뒤로 갑하산 줄기가 병풍처럼 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다.

 

1년 만에 찾아뵙는 집안 어른들께 술 한잔 씩 올리고

 

당숙의 묘소 앞에서 점심도시락을 펴놓고 자주 찾아뵈지 못함을 사죄하며 시장끼를 떼운다.

 

약 3시간의 산행과 참배를 마치고 대전선사박물관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라 유성4가 '대한주택공사 대전서남부사업단' 강당에서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마련한 '용계동유적 발굴조사설명회'를 경청하고 발굴유물도 살펴본다.

 

발굴 현장인 야산(104m)은 진잠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남쪽으로는 목원대 옆으로 소태봉(163m)에 이어지는데, 사방이 확트인 곳으로 설명자의 말처럼 한밭의 명당임이 눈으로 느껴지고, 2000년전의 원삼국시대(삼한시대) 사람들의 주거지가 350여 개가 발굴 되었으니 그 시절 번창했던 대규모 취락지가 오늘날의 서울 강남과 비교할만하다고한다.

현장답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오후 4시 반, 유성시장 토종순대마을에 들러 아우라지님과 이별주를 나누고 지하철에 오르니 총 7시간의 오늘 여정이 가슴 속 깊이 뿌듣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