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평야에 있던 6개 씨족집단의 연합으로 발족된 신라는 주위의 여러 소국들을 망라하여 연맹왕국을 형성했다. 법흥왕 때부터 태종무열왕의 즉위 때까지 신라는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를 완성하고 대외적으로 크게 영토를 확장했다. 국호는 지증마립간 4년(서기 503년)에 신라로 확정될 때까지 '사로'·'사라'·'서라벌'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땅, 해 뜨는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때 부터 '마립간' 대신 중국식 왕호가 사용되었고 중국과의 교섭이 다시 회복되었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여 통일을 위한 사상적 뒷받침을 얻게 되었다. 이후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신라는 진흥왕 때 정복사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했으나, 고구려와 백제는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에 대한 공격을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