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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물길이 좋고 넓은 대청호가 좋아! 대전이 좋아!

돌까마귀 2021. 6. 29. 09:09

2009년 1월에 쓴 글인데 요즘같은 코로나19시국에 다시 한번 읽어 볼 만해서 올립니다.

 

한밭 땅에 들어 와 산지 어언 30년

시내버스표 한장으로 거의 매일 산을 찾지만 그동안 올라 본 산봉우리는 불과 200여개

그것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다 올라 본 봉우리는 20여개에 불과하다.

한밭벌을 둘러 싸고있는 두겹의 산줄기에는 봉우리라 부르는 꼭지점이 400개가 넘으니

평생을 매일 올라도 대전의 산에 다 못올라 보고 눈을 감아야 하기에 그래서 나는 매일 산에 오른다.

하나의 봉우리라도 더 올라보고, 하나의 물길이라도 더 걸어보고, 하나의 사연도 더 들어보려고...

 

연분홍 색 진달래 향기를 맡으며,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노란색에 가까운 신록을 보았든가?  

계곡을 흘러 내리는 물소리 들으며 솔향기에 취한체, 솔솔바람 불어오는 능선길을 걸어 보았는가?

빨간 단풍잎을 잎에 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낙옆 쌓인 산비탈을 걸어 보았든가?

하얗게 쌓인 눈에 무릎까지 빠져보고, 살짝 녹았다가 겉이 다시얼어 빠싹거리며 밟히는 그 쾌감을 느껴 보았는가?

봉우리 하나를 눈감고 알기까지 그것도 사계절을, 거기다 이른, 한창, 늦은 계절을 다즐겨 보았는가?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산을 보았는가?

 

새벽 여명에 호수에서 피어 난 물안개가 갈대밭과 물버들에 걸친 모습을 보았는가?

물 빠진 모래밭에 넓게 깔린 초록 양탄자와 무리를 지어 피어난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았는가?

해거름 서산을 넘어가는 햇님이 만들어 낸 화려한 황금빛 노을을 보았는가?

따스한 백사장에 누워서 은하수 건너편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견우와 직녀를 보았는가?

물건너 마을의 아스라한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찰랑이는 파도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이 골짜기 저 봉우리 산자락 마다, 이 호숫가 저 호숫가 물가 마다 저 마다의 예기가 묻혀 있는 곳

볼거리 배울거리가 옆에 있는 곳, 들 날머리 길목 마다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같이 있는 곳

시내버스타고 짧게는 10분거리에, 길게는 한시간 거리에...  그것도 귀찮으면 두발로 걸어서

 

가자! 산으로! 들로! 넓고 맑은 물가로!

대전의 산, 내, 들이 좋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늙은 까마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