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88

1.4후퇴 흥남철수가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굳 세어라 금순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해매였드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 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떳다 철의 장막 모진 설음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 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춰 보자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가수 현인(1919.12.14~2002.4.13)이 1953년에 발표한 강사랑 작사/박시춘 작곡의 노래로 발표한지 58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의해 자주 불리는 국민 가요로 돌까마귀도 노래방..

2010년을 보내며

산길을 걸으면서는 언제나 행복했었다, 탁배기나 소주 한병 그리고 따뜻한 물 한병, 마음의 점을 찍을 쌀국수 하나 달랑 넣은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은 구름속을 걸었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한적한 마을앞에 내려서면 산은 항상 내 코 앞에서 반겨 주었었다, 때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 때로는 바삭거리는 낙옆과 함께, 때로는 뽀드득 거리는 하얀 눈과 함께... 간혹 찬바람이 심술을 부리며 귀때기를 때려도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 산은 바로 포근한 안가슴을 내어주며 보듬어 주었었다, 어쩌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항상 거기 그곳에 있었다. 내가 산에 빠져 들게 된것은 코 흘리게 어린 시절 고향 마을 뒷산에 널부러진 탄피와 포탄 파편을 주으러 동네 형들 뒤를 쫒아 다닌게 시작이다, 인..

한여름 날의 보문산자락(보문산의 추억/원문)

대전둘레산길에 취하여 원거리 산행을 잊은지 벌써 여러해, 한달에 두어번씩 산악회를 따라 다녀오기는 하여도 예전에 비하면 鳥足之血인데 월요일 하루를 쉬고 모처럼 집뒤의 보문산에 올라봤다. 대전의 명산이랄수 있는 보문산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많다, 대충 헤아려봐도 160여개가 넘는다, 그것도 100m 이내의 옆길이나 200m이내에서 합쳐지는 길을 빼드라도 그정도이니, 보문산 북쪽기슭 문화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대사동,부사동,석교동,호동,옥계동,학고개 넘어 동구의 이사동,오도산 아래 구완터널 위 원앙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중구의 구완동,무수동,사정동,산성동,동서남북 어디서나 시루봉이나 산성을 향하여 오르면 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한 두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수 있는길도 있고 6시간이상 걸리는 길도 더러있다, 대전에 ..

2009년을 보내며

돌이켜 보건대 2009년은 나름대로 보람있게 보낸 한해였다. 첫번째가 개인적으로 과년한 딸년을 시집 보내므로써 남매뿐인 자식들이 모두행복한 가정을 꾸린 일이요, 두번째가 한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기에 예쁜 며느리가 귀여운 손자놈을 안겨준일이다. 사업적으로는 별 소득이 없었지만 세번째는 아주 큰 성취감을 안겨준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안내대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기적인 생각이 없는것도 아니어서 첫번째 보람으로는 뽑지 않었어도 나에게는 아주 크나큰 행복이었는데 아주 많은, 좋은사람들을 만나 너무나 좋은 기억들만 머리속에 가득하다. 때로는 독선과 아집속에서 자아도취에 흐느적 거린점도 많았지만 2008년에 시작한 대청호반산길따라가 8개구간으로 확정되어 대전시에서 관광상품으로 개발계획을 착수한 일이며 아우라지님의 조언..

첫눈 내리는 보문산성을 오르며

가을이 서서히 기울어 가는 어느날 아침 일요일이라 한적한 한밭골의 어느 낭자훈육소 큰문 앞에는 스무나문명의 남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입고 등에는 개나리 봇짐을 하나씩 메었는데 어떤이는 쌍지팡이를 짚었고, 어떤이는 외지팡이를 짚었는데, 간혹 목에다 요상한 쇳덩어리를 매달은 사람도 있는것이 때지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듯, 빙 둘러서서 왕초 인듯한 사내의 예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둘러 볼 물건은 다섯개 인대 그중 두개는 너무 크고 무거우며 한개는 너무 오똑한 곳에 얹혀 있어 가져오기가 힘들다. 나머지 두개 중 한개는 대여섯명이 들면 될듯하고 한개는 큰돌에 붙어 있으나 여럿이서 때어내면 될듯하고 작업이 끝난후에 우리가 도망 나올 길이 천길 낭떨어지니 조심을 해야하고 요..

가자! 산으로! 대전의 산으로!

한밭 땅에 들어와 산지 어언 30여년 시내버스표 한장으로 거의 매일 산을 찾지만 그동안 올라서 본 산봉우리는 불과 200여개 그것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다 올라본 봉우리는 20여개에 불과하다. 한밭벌을 둘러싸고있는 두 겹의 산줄기에는 봉우리라 일컷는 꼭지점이 400개가 넘으니 평생을 올라도 대전의 산봉우리 모두를 다 못올라 볼것 같아 나는 매일 산에오른다, 하나의 봉우리라도 더 올라보고, 하나의 물길이라도 더 걸어보고, 하나의 사연이라도 더 들어보려고... 연분홍색 진달레 향기를 맡으며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노란색에 가까운 신록을 보았든가? 계곡을 흘러 내리는 물소리 들으며 솔향기에 취한 체, 솔솔바람 불어오는 능선길을 걸어 보았는가? 빨간 단풍잎을 입에 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낙옆 쌓인 산..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그가 내가슴깊이 들어와 앉은 때는 1968년 이었다. YS와 부딛힌 원내총무 대결에서 한창 민감한 청소년기의 고등학생 눈에는 그는 바로 영웅이었다. 71년 대통령 선거유세때 대구 수성천변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청중들은 마을마다 버스로 모아온 공화당의 동원 청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40대 기수 김대중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었다. 그래서 야당도시 대구와 경북에서 그는 51%의 득표를 얻었지만 타지역에서의 득표 탓인지 아니면 부정개표 탓인지, 51대 49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었다, 동해의 물귀신이 될 뻔 했던 그가 되살아 나왔을 때, 끓는 피 두주먹을 불끈 쥐었었고, 스물을 넘은 내 가슴깊이 휘몰아친 유신독재는 문세광이 저질렀다는 영부인의 시해사건 마저 나를 못믿게 하였지만, 유신의 심장..

친일이냐? 독립운동가냐?

머리와 가슴을 아무리 굴려 봐도 보이는 건 희미한 님의 그림자 느끼는 건 잡히지 않는 님의 허수아비 보이지 않고 만질수 없는 님들이 엮어놓은 허무맹랑한 홀로서기 독립 이야기 글자 한자 고치면 될것을 무얼 그리 애태우며 전부를 뒤집을려고 하나? 고친 한자가 가슴속 깊이 박혀 먼 훗날 네 아버지, 네 할애비 독립유공자 만들어 드리면 서훈도 받고 공적비도 새우고 국립현충원에라도 모시게 된다면... 그래 잊자 네 할아비 모습은 잊자 유성땅 갑동 갑하산 한자락이 고향산천 보다 더! 고향답고 남보기에 더 보람된다면 효평동 삼거리에 우뚝서있는 공덕비는 그 값어치를 다하였을 것을... 고쳐진 옛 예기는 바람속에 묻혀 배고개 넘어 저멀리 심곡, 효뜰, 갈밭에 흩 뿌리리라 대청호 푸른물위에 새끼손가락 걸며 맹세하지 못할지..

노무현 전대통령을 되돌아보며

2009년 4월은 내게 정신적으로 너무 잔인하다 1979년 4월은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서울의봄이 오는가 하였었다 신군부 군화발에 짓밟히고 최류탄에 쫓기면서도 목놓아 외치던 군부독재타도는 민주산악회를 모태로 생겨난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삶의 보람으로 이어졌었다 광주의 잔인한 봄이 지나고 해마다의 봄은 계속 힘들었으나 1987년 봄까지 이어진 고난의 세월은 6.29 항복선언으로 보람도 있었다 민추협의 와해속에 치러진 87대선은 형님먼저,아우먼저 양보가 아닌 욕심에 거덜나더니 삼당야합으로 이어받은 정권은 작은대통령의 전횡과 외환위기로 무너지고 세번의 낙선과 세번의 은퇴선언을 뒤집고 올라선 정권도 세아들의 욕심이 망쳤고 돼지저금통과 수도이전 깃발을 들고 인터넷 세대를 사로잡은 상고출신 노동변호사,국회의원 딱한번에..

구룡산 삿갓봉에서

거칠 것이 하나 없이 탁 트인 삿갓봉에 사방을 둘러 싼 찬란한 붉은 장막 그 속에 같혔으니 바로 내가 신선일세 땅거미가 짙어지고 밤하늘에 별이 뜨면 정겨운 님과 함께 술잔을 높이 들자 오작교를 넘나 들며 정담도 나눠 보자 새벽 닭 울음소리에 미리내는 사라지고 서쪽 하늘에는 샛별이 빛나는데 또 다시 붉은 장막은 마루금에 드리우네 사랑하는 벗들이여 흑룡의 등을 타고 저 찬란한 해를 향해 힘차게 날아보자 가슴속에 품은 큰뜻 하늘 높이 펼쳐 보자 2011년 1월1일 구룡산 해맞이 비박을 마치고

석호리 찬가

옥천 군북 소정리의 문박골 물길따라 돌거리 고개 밑의 옥색 물감 퍼 담은 뒤 석호리 함치 지나 아사골에 접어 든다 입춘 지난 꽃샘 추위 귀때기를 때리지만 쨍그랑 소리내며 깨어질듯 파란하늘 두둥실 뜬 저 구름은 막지봉을 넘어가네 청풍정 추녀 끝에 매어 달린 고드름은 고균선생 눈물인가 기생명월 눈물인가 열길 절벽 바위에다 아픈 상처 남겨 놨네 물 건너 장고개의 깎은 절벽 바위위엔 명주도포 걸쳐 입은 왜가리가 날아 들고 진걸 포구 뱃사공은 그물질이 바뻐진다. 2016.2.15 丙申年 정월 초 여드렛날 옥천 군북 석호리 대청호반에서

서화천 찬가

금산 군북 사기점서 상곡천으로 시작한 물 옥천군 군서면의 장룡산을 지나면서 금천으로 불리며 은행들로 흘러든다. 추부에서 흘러내린 또 한 줄기 추풍천은 서대산 앞 신평에서 조정천을 만나드니 지경리를 회돌이하며 소욱천이 되었구나. 금천과 소욱천이 은행들서 합쳐지니 성왕이 참수 당한 구진벼루 지나면서 비단강을 만날 때 까지 서화천이라 불리운다. 진터벌에 내려서며 구슬천 물 더하여서 중봉선생 얼이 서린 이지당을 지나가니 벼랑에 새긴 우암의 글씨 저녁놀에 붉게 탄다. 각신 지오 환평 추소 굽이굽이 돌아들다 환산에서 뻗어 내린 병풍바위 앞에서니 소금강이 여기구나 부소무니 절경이다. 2008.11.13 옥천 군북 추소리 병풍바위에서 돌까마귀가

겨울 비

이른아침 잠자리에서 하릴없이 일어나 자리끼 한모금 들이키고 창밖을 내다 보니 빠알간 뒷집 지붕위로 새벽하늘이 습하다 식장산에 걸려있을 초승달도 보이지 않고 보문산에 걸려야 할 샛별도 간곳 없고 가는골의 첫닭 울음도 습기 젖어 눅눅하나 가득함을 비우고난 아랫배의 편안함에 허리춤 추스리고 양팔 벌려 큰호흡 하니 가슴 깊이 구석구석 개운함이 젖어든다 등산화끈 조여메고 봇짐을 메고나니 나설걸음 어드멘가 이리저리 살피다가 애에라 나도몰라 소라티로 올라선다 음기 가득찬 새벽산길 홀로걷기 적막하나 행여나 뒤 쫓아올 님 생각에 볼 붉히고 혼자걷는 산길구비 기다림이 넉넉하다 약수터 물줄기는 겨울가뭄 탓이련가 쪼르르 똑 쪼르르 똑 애간장을 태우건만 님 기다림 시간보단 애달픔이 덜하구나 동쪽하늘 밝아오고 발자욱소리 부산한데..

크고 맑은 물을 위하여

줄골 장승고개 넘어 오던 봄 바람이 오리골 방죽 타고 토끼봉에 매달릴때 신선바위 옆자락 타고 고용골에서 꼬리잡네 길치고개 넘든 바람 고봉산서 숨 돌리며 고용골서 쉬던 바람과 줄뫼에서 합궁하니 에해라 봄이련가 얼은 물길 풀리리라 물속 깊이 숨어 있던 얼음고기 빙어련가 상촌 물길 그물 코에 갈 길 막혀 붙잡히니 상추 쌈에 초장 발라 님의 입맛 돋우리라 가을동네 추동 아닌 가래나무 가래울서 크고 맑은 호숫물을 어기여차 끌어 올려 한밭고을 가가호호 나눠주니 복 받으리 이름하여 대청이라 내륙의 다도해 한밭의 보물이고 충청의 젓줄이니 아끼고 사랑하여 자손만대 물려주세 2008.3.15 대청호반 B지구 가랭이에서

삶, 애원, 생명이라는 것

삶 무릇 모든 섭생이 이땅에 태어 날때 저마다 가지고 태어난 가치가 있으니 조물주로부터 받은 땅을 딛고 하늘을 이고 바람을쐬고 물을 마시고 빛을 쪼일 권리이리라 내 다리를 갖고도 두다리로 걷는 사람들이 길섶에 핀 꽃들이 벌 나비에게 나눔을 배푸는 뜻을 알랴마는 그래도 사는동안 남의눈물 닦어주며 상은 못줄지라도 벌은 주지않는 푸근한 호박부침같은 그런 삶을 살레라 작은 몸땡이 빨려서 껍질만 남드라도... 애원 오뉴월 땡양지에서 삶을 향한 갈구든가 아니면 질긴 생명을 끊지 못한 애원이든가 넝쿨은 오늘도 잡어줄 가지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 끝에 빠알간 꽃을 피워서 벌과 나비들에게 질긴 삶의 건더기인 단물을 나눠 주려고 아니면 길가 풀섶에 숨어 꺽어 대려가 줄 손길 기다릴려고 그도 아니면 태어난 고귀한 삶 붉게 ..

백 중 (百 中)

틈실자란 나락논을 세벌논매기 끝내드니 외양간 한켠에 호미씻어 걸어놓고 동구밖 개울가에 가마솥 걸었드냐 앞집에서 닭내놓고 뒷집에서 쌀내놓고 김진사내 돼지잡아 마을잔치 벌렸으니 오늘하루 일손놓고 질펀하게 놀아보세 으뜸머슴 소등태워 집집마다 회가돌고 백가지 햇과일로 삼농님께 빌었으니 올해도 풍년들어 고앙가득 채우리라 개울가 모래밭에 청기 홍기 걸어놓고 삿바잡은 저팔뚝은 뉘네집 일꾼인고 으랏찻차 넘어간다 삼돌이가 장사로다 꽹가리 소리 요란하니 징 장고도 화답하고 김진사 헛기침과 삼돌애미 얼싸춤에 바위뒤켠 이뿐이는 옷고름을 입에무네 성안말 백중장터 왁자하니 펼쳐지니 물넘이서 마루넘이서 모두가 나왔구나 한해농사 다되가니 새경받아 흥청이라 2015. 8. 17. 백중장사 씨름대회를 보며

삼천동 찬가 / 三川洞 讚歌

대전의 3대 하천은 남에서 북으로 한밭벌을 가르며 흐르는데 三川이 모이는 곳을 삼천동이라 불렀었다 만가지가 가득차서 흘러 내린 한밭내가 萬仞山 / 大田川 보물산을 돌아 흐른 버드네에 스며 들고 寶文山 / 柳等川 건괘가 두개 겹친 이 마을서 으뜸 만나 乾 卦 / 甲 川 비단강에 뛰어 드니 부처님이 춤을 춘다 錦 江 / 佛舞山 2009.5.1 아주 좋은 이름을 버리고 '둔산3동'으로 개명 한것이 안타까워서

안타까운 세월호 침몰사고에 붙여

세 월 (4월과 5월) 잔인하였던 4월이 가고 5월이 왔습니다 아픔의 4월이 가고 이렇게 5월이 왔습니다 가신 님들에 대한 죄스러움을 갚지도 못하였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주고 그저 빌기만 하고 있었는데 5월은 이렇게 슬그머니 우리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들의 안일함과 안전불감증으로 다음 세대를 책임질 고귀한 어린 생명들이 아직도 진도 앞 바다에서 돌아 오지 못하고 엄니와 아빠의 귓바퀴에만 맴 돌고 있는데 5월은 이렇게 슬그머니 우리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부둣가 등대와 체육관을 오가며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에게도 흔들리는 보트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새찬 물결 해치며 목숨걸고 희생자를 찾는 그들에게도 아무런 도움도 못주고 그저 빌기만 하고 있었는데 5월은 이렇게 슬그머니 우리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

대전의 서쪽 끝마을에서

소 징 이 한밭의 서쪽 끝말 소징이에 들어서니 계룡산을 떨쳐 나온 으뜸내가 반겨주고 정도전의 채찍나무와 둥구나무 그늘 아래엔 촌로의 옛 이야기가 들마루 위에 펼처 진다 뛰노는 아희들은 마을회관을 들썩이고 수다스런 아낙내의 한 옥타브 높은 사투리와 반갑게 맞아주는 이장님의 온화한 미소는 하지를 지난 초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에 실려간다 2013. 6. 23. 계사년 초여름 대전 유성구 송정동 서쪽 끝 소징이마을에서

낙 옆 에 게

연두빛 시절이 그제 였던가 짙 푸르던 시절이 어제 였던가 오늘 아침나절 들 일 나가던 길 황금색 바탕에 붉은 수 곱게 놓은 곱디 고운 옷 입고 나 좀봐라 뻐기더니 마음의 점 찍은 뒤 찾아나선 마실길 이웃집 아낙의 삐딱한 곁눈질과 한 울안 또래들의 쓴 소리 입방아가 그리도 가슴 앓이로 박히어 오시든가 아니면 화려한 옷이 거추장 스럽던가 횅하니 부는 바람 스산하기 그지없고 너 뒹구는 포도위에 아픈 걸음 내 딛으며 애꿎은 청소부의 싸릿비를 원망하니 처박혀진 푸뎃자루 찢어진 틈사이로 초겨울 하늘 내다 보며 아픈 가슴 다스리게나 2010.11.25 대전 중구 대흥동 원도심에서 돌까마귀 회한에 젖다

전남 담양/순창 강천산에서

강천산에서 강천산 병풍바위에 구름 한자락 걸어놓고 신선봉 붉은 단풍잎 살그머니 하나 따다 비룡폭포 맑은 물 담은 술잔에다 띄웠더니 토라졌던 님의 얼굴에 볼 우물이 패여진다 운대봉을 돌던 바람 연대봉을 휘 감더니 우작골에 걸친 비단은 금강골로 흘러 들고 송낙바위에 걸린 달은 강천호수에 빠졌다가 왕자봉과 형제봉 넘어 님의 눈에 다시 뜬다. 1993년11월 대전엑스포를 끝내고 받은 보너스 휴가때 직장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물 담기 전에는

물 담기전 효뜰 심곡 사람들은 닷세마다 열리는 신탄진 장보러 배 고개를 넘었으리라. 갈밭사는 친구집 들러 물 한바가지 들이키고 덕고개 넘어 하산디에 이르면 둥구나무 아래서 사둔도 만나 시집간 딸년 소식도 듣고 사둔 등에 엎힌 외손자 재롱이 귀여워 지개 작대기 받쳐놓고 바지게에 담아온 계란 한 꾸러미 사둔 손에 쥐어 줬으리라. 물 담기 전 효들 심곡사람들은 바지게 가득 지고온 푸성귀며 알곡에다 인심까지 붙여 판 뒤 찢어진 마누라 고무신도 때웠고 아들놈 운동화도 한켤래 샀으니 허리 꾸부러진 노모에게는 털 쉐타 하나쯤은 챙겼으리라 장터 주막집 주모 넉살에 방아간 전표 건내고 대취 하며는 지갯다리에 매어논 갈치 괭이 놈이 물어 가도 모르고 육자배기 한가락에 젓가락 장단이 흥겨웠으리라 돌아 오는길 물 담기 전 효..

고향 가는 길

고향이 뭐길레 그때는 이리도 매달리며 달려 갔었다 고향이 뭐길레 그때는 그렇게도 흔들리며 가고 싶었다 고향이 뭐길레 그때는 밤세워 줄을 서며 가야 했었다 * 고향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그 고향에는 고향 산천이 있기에 고향 사람이 있기에 고향 냄새가 있기에 고향 마음이 있기에 고향이라 부른다고 대답하노라 辛卯年 섣달 그믐날 (2012.1.22) 돌까마귀 그때 그사람 그시절이 그리워서

山上 露宿者

냉기가 스며 드는 산 꼭대기 천막 안 천정에 매달린 간데라도 졸고 있고 밤 늦도록 지껄이며 마신 술 탓인가 까마귀 눈 꺼풀도 천근 만근이다. 옆집 산꾼의 코골이를 자장가 삼아 옆구리를 파고드는 냉기에 몸 맡기니 고향 가고 옆에 없는 옆지기가 생각나서 비몽 사몽간에 고향길을 달린다. 조잘되는 산새 소리에 눈뜨고 일어나니 고단하던 육신은 날아 갈듯 가뿐하고 이슬 젖은 지퍼 내리니 창밖은 여명이라 달아 오른 동녘은 붉다 못해 불이 탄다. 2012년 1월 1일 대전 동구 주산동 고봉산성에서 비박과 신년 해맞이를 마치고

그와 나

그와 나 필연이었다 대전의 산을 좋아 했기에 그와 나 우연이었다 대전의 길을 좋아 했기에 그와 나 인연이었다 대전의 옛것을 좋아 했기에 그와 나 당연이었다 대전의 사람을 좋아 했기에 그와 나의 만남은 산길에서 시작 되었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지도 한장들고 대전의 산과 들을 쏘다니다가 때지어 대전의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기에 쫓아가 보았더니 그곳에 그가 있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 그가 만들었단다 "대전의 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 주려고... 좋았다, 신선했다 몇달 뒤 어느 봄날 산길에서 다시 만난 그의 얼굴에는 흰 털이 덮혀 있었다. 해어지기 아쉬워 봄꽃이 활짝핀 담배공장으로 옮겨 술잔을 기울였다 환경을 논하였고 대운하를 논하였고 문화를 논하였다. 몇달 뒤 어느 여름날 거리에서 만난 그는 멋진 뒤태..

2011년 10월 26일

사천 삼백 사십 사년 시월 스무엿세날 분노한 민초들은 멍석을 뒤 집었다 "온 나라" 패거리나 "국민이 주인인" 패거리나 이도 저도 못 믿어서 멍석을 뒤 집었다. 새로운 볏짚으로 새끼꼬아 새로 만든 새로운 멍석을 깔고 새 판을 펼쳤다 새 멍석 위에는 새 술상을 놓을테고 새 술상 위에는 새 먹거리가 놓일레라 바라건데 이왕이면 새로 차린 술상에는 숫가락과 젓가락도 새것으로 바꾸어서 천지사방 골골마다 삶에 찌든 민초들이 마음놓고 몰려와서 맛난 음식 들게하소 2011.10.27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다시 태어난 대전문화연대

김선건,김선미 두사람의 공동대표 매마른 한밭벌에 씨 뿌리고 물을 주나 가뭄은 이어지고 땅심마저 척박하다. 겨울엔 북 돋우고 퇴비 덮어 다짐밟기 물오름 한창 날엔 거름 넣어 보양하니 어린새싹 문화연대 뿌리내려 움을 텄다. 오뉴월 장맛비엔 물 담을까 물꼬트고 가을녘엔 손 탈세라 허수애비 술레 세워 지극정성 6년만에 틈실하게 자라났다. 새로 뽑힌 두분 대표가 앞에서 끌어주고 운영위원 정성으로 뒤에서 밀어주니 사무국의 새 일꾼도 신바람이 절로 날터 횐님들도 힘 합치고 다같이 정성 모으면 찬란한 문화의 꽃이 한밭벌을 가득 덮고 대전, 유등, 갑천을 타고 비단강에 흘러드리 2011.2.25 대전문화연대 사무실 리모델링을 마치고

모래재의 가을

가득 담아 출렁이는 맑고 푸른 물가에는 할애비 손바닥 보다는 쬐끔 더 넓은 젖은듯 매마른 모래톳이 자리잡고 닿을듯 말듯 애끓는 목마름에 지쳐서 끝내는 뒤틀어진 상수리가 졸고있다 면경알 같은 물위로 가녀린 모가지 내밀은 으악새는 푸른 하늘에 흘러 가는 새털구름 쳐다보며 이 가을 다 가기전에 꺼내 달라 하소연 하고 할애비 산소 가는길 한뼘지기 다랭이 논에는 누렇게 나락이 영글고 모래재 언덕배기엔 알밤이 뒹구니 물에 잠겨 없어진 내탑국민학교의 가을 운동회 소리가 들려온다 2010.9.29 대전 동구 사성동 모래재 대청호반에서

향수에 젖어

만치골 흘러 내린 찬도랑 따라 누렁이 앞세우고 꼴 배러 가는길 방천 가 강냉이 밭엔 고추잠자리 춤추고 여름네 멱 감던 찬새미 지나면 모갈비얄 콩밭이 누렇게 익어가니 배방골 나락논에는 미꾸리가 파고든다 코스모스 산들대는 신작로 따라 안질고개 넘어가는 자갈길 걷다보면 높다란 물탱크 아래 코쟁이가 헬로 하고 구멍난 고무신 바닥 왕모래가 파고드니 아까워서 모셔 놓은 새 신발이 생각난다 추석치레로 사다주신 타이아표 검정 고무신 2010.9.21 경인년 팔월 열나흘 고향길 열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