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石烏) 창작글 모음 88

그리움이 사무쳐 / 비박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 여름 긴긴 밤에 달빛에 젖어있는 정든 얼굴 보고파서 애꿎은 장맛비 원망에 밤새는 줄 몰랐었다 다달이 보던 모습 변하지는 않었는지 석달을 건너뛰어 이번에는 만날려나 '천하무적' '산사람'도 쾌차하여 나오겠지 가을바람 불어오는 찰랑대는 물 위에도 오랫만에 주고받는 님들의 잔속에도 중추팔월 열이래 달은 눈동자로 파고드리 2010.9.15 석달만에 만나게 될 밤 산적들이 그리워서

大屯山 讚歌

석양이 짙어 가는 낙조대 위에서 희망을 쫓아 보는 젊음이 더냐 마천대를 싸고 도는 하얀 띄 구름은 칠성봉 넘어 들어 용문굴 찾아간다 목동이 불어 주던 피리 소리는 장군봉 돌고 돌아 금강다리 걸렸는데 삼선계단 올라 서며 가뿐 한숨 쉬어도 개척탑 그늘에선 그님이 기다리리 상칼바위 신선바위 줄줄이 이어지나 청춘은 간데 없고 애원만 남았는네 수양버들 휘 늘어진 괴곡동천 맑은 물은 천등산 암벽 밑을 휘 돌아 흘러간다 2009.3.29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유익한 테마산행을 마치고

푸른 마루금을 거닐며

더 얼마나 걸어야 할까 찬이슬 아직도 새벽잠 덜 깻는데 묻혀가는 발자욱 마다 핏물보다 진한 흔적 저승길 멀지 않은 숨소리도 함께 묻고 바람은 능선을 핥어 벌때처럼 날아오니 날 마다 은하수 물에 온몸 담궈 씻으리라 태초에 일어나서 티 없는 그 숨결로 넓디 넓게 펼친 벌판 눈 녹아 흐르는 물에 내 영혼을 새로이 행궈 그 초원에 뿌리리라 2010.9.1 빗소리에 취하고 탁배기에 취해

추억의 비박산행 / 산상의 밤이 깊어지면

빗줄기 굵어지면 정자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예기 나누고 밤하늘 맑으면 잔디밭에 둘러앉아 풀벌레 소리 들으며 작은별을 헤아리자 반딧불이가 비쳐주는 아름다운 내님의 뽀오얀 옆얼굴 말없이 바라보다 살며시 어깨를 기대어 온다면 자근자근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어보자 별빛에 반짝이는 눈동자에 빠졌다가 하현달이 잠겨있는 자그만 술잔에다 따스한 사랑을 덤으로 띄워서 나 없인 못산다는 님에게 권해보자 2010.7.23 大暑날 무더위에 지친몸 비박의 추억속으로 젖어들며

봄 비

박인수가 노래 했었지 나를 울리는 봄비라고 연이틀 추적거리는 비는 정말 나를 울린다 아스팔트 한자락에 누워 노오란 물을 토해내는 담배 꽁초의 몸통도 울타리 철조망에 얼켜 겨우네 움추렸던 울화를 터트릴 개나리의 꽃망울도 봄비 봄비 나를 울리는 봄비 원망스런 봄비를 탓한다 날개 젖은 까막 까치와 함께 봄비를 탓한다 2010.4.1 내일이면 비가 개어 심연(深淵)에서 빠져 나오길 기대하며

대전의 산이 좋아

간다 간다 오늘도 간다 풀내음 솔내음 맡으러 간다 가지끝에 매달린 쪽박달이 반가웁고 하늘가에 둥실 뜬 새털구름이 반가우니 간다 간다 내일도 간다 흙냄새 물냄새 맡으러 간다 구비구비 흘러가는 비단물길이 정겨웁고 올망졸망 키제기하는 한밭벌도 정겨우니 가리라 가리라 모래도 가리라 그리고 글피도 가리라 한밭땅 언저리 산을 찾아서 2010 비오는 삼월의 마지막날

봄 물빛에 젖어

물가에 서서 요광원 물가에 봄볕이 따스하다 파란하늘 새털구름 사이로 포근함이 내려와 온누리를 비춘다 바위틈에 박힌 발에 파르스름한 이끼양말을 신은 소나무 등걸에도... 물위로 고개숙인 머리끝에 졸망 졸망 노란진주를 매달은 버드나무 가지에도... 찰랑이는 물가에 앉아 겨울나며 찌든때를 벗겨내는 돌맹이 등짝에도... 따스한 봄볕이 물가를 맴돈다 2010.3.24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장산지에서 돌까마귀

待春夫 / 봄을 기다리며

내일이면 오실려나아니면 모래쯤엔 오실려나 기다림의 세월이결코 짧지는 않었지만아궁이 속에서 탁탁튀는등걸 타는 소리 들으며긴 동지 섣달을 참아왔다 어름장 아래 갇혀서도개울 바닥을 휘돌아 노는송사리때 모습을 보면서모진 겨울도 참아왔다 내일이면 오시겠지늦어도 모래쯤엔 오시겠지 남녘의 풋냄세 한입 가득 머금고따스한 산넘어 소식봇짐 속에 가득 담고 기다리다 지쳐서 주저 앉은 날 찾아서님은 오시겠지잊지않고 오시겠지 2010.2.5  대전 동구 삼괴동 마경산 기슭 대전천 지류 알미천 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입춘

배나무 골짜기에 바람이 분다 산넘어 기다리는 님의 가슴을 향해 양지바른 보문사 터 대나무 숲에들러 겨우네 간직했던 댓잎 향기 함께 담아 어청골 가마 터에 바람이 분다 목 말라 애 태우는 나의 가슴을 향해 수님이골 널바위 옆 눈 녹은 물 속에서 연초록 미나리의 고은 향기 가득 담아 2010.2.3 입춘을 하루 앞두고 대전 중구 구완동 오도산 아래서

大淸湖 讚歌

전라도 장수땅 신무산서 발원하여 진안땅 지나면서 정자, 주자 두 물줄기 함께 품어 흘러 내려 적등강이 되드니만 무주땅서 남대천 만나 호강으로 불렸었네 영동과 금산을 휘돌아 가르면서 봉황천 끌어 안고 차탄강이 되드니만 아래로 내려오며 화인진강으로 불리우고 옥천에서 보청천 만나니 말흘탄이 되었구나 한밭땅 북쪽끝 물놀이 마을 건너 청원군 현도면의 구룡산 절벽아래 형각진강 여울목에 물막이를 하였으니 이름하여 크고 맑은 대청이라 부르노라 사백구십 오미터를 흙과 돌로 막았으니 댐높이는 칠십이요 해발고도 팔십삼미터 만수위는 팔십미터 홍수위는 팔십이점 오 물넓이는 칠십이점 팔 제곱키로미터 평상수위 담은 물은 십사억 구천만톤 칠십오년 삼월부터 팔십년 십이월까지 총공사비 일천사백육십사억 원을 들여 한반도서 세번째 큰 민물..

두견주와 찔레꽃이 되고싶다

두견주가 되고싶다 평생을 아름다울것 같이 단풍옷 갈아입고서 나를 유혹하던 저산이 오늘은 하얀눈 뒤집어 쓰고 고요에 잠겨 말이 없으니 저산은 변덕스런 님의 마음 닮었다 두견주 삼키고 붉게 물든 예쁜 얼굴로 사랑을 맹세하던 님의 입술이 하얀 냉정함으로 굳게 잠겨 있으니 님 또한 변덕스런 저산을 닮었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가슴을 쳐도 결코 오지않을 붉은 추억은 가여운 가슴만 아프게 한다 아! 나는 차라리 고운 앵두빛 입술 적시고 님의 가슴속 까지 파고들수 있는 두견주가 부럽다 두견주가 되고싶다 찔레꽃이 되고싶다 찔레꽃이 되고싶다 날 지나쳐 그냥 가시는 무정한 님의 바지 가랭이라도 잡을수 있게 그래도 매섭게 뿌리친다면 작은가시 돋아내어 님의 손목 긁으리라 생체기에 피 딱지 앉고 다 나을때 까지라도 생체기를 볼때마..

겨울 꽃

겨울이 시린 이유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장터 화톳불가에 둘러서서 언 손 호호 불며 마시는 따스한 커피 내음 속에는 결코 시린 겨울이 있을수 없다 바닥 넓이에 따라 사람을 가늠질하는 성냥갑 닮은 집의 따스한 거실 소파에 앉아 지난 달에 이사 온 아래층 사람도 아침마다 문 앞에서 만나는 앞 집 사람도 서로가 성도 이름도 모른채 스치며 지나가는 그네들의 겨울이 시릴뿐이다 새끼줄에 구멍탄 한장 끼워 들고 돌가루 푸대 종이 봉투에는 쌀 한줌 담아 새벽길에 끝집 할먼네 문간에 놓아 주던 벙어리 장갑 낀 신문배달 소년의 겨울은 하나도 시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코밑에 피어 있는 백만송이 장미보다 더 예쁜 새하얀 겨울 꽃이 눈에 부실뿐... 찹쌀 떠~억을 외치며 매밀 무~욱을 소리치며 해 저문지 오래된 찬..

고향 가는길 / 고향 땅에서

고향 가는길 한달에 한두번은 다녀왔든 고향길이 육십넘은 나이에도 설레임에 잠설치고 새벽기차 타러가는 발걸음이 가볍구나 어릴적 새뱃돈으로 받은 빨간 지전이 신기하여 아무도 모르는곳 비밀창고에 넣어놓고 학교에 다녀와서 냄새를 맡든 그 추억에 스무명이 넘어가는 대소가 손주들 줄 배춧닢 세뱃돈도 새돈으로 바꿔넣고 새벽별이 빤짝이는 플렛폼에 내려선다 한밭벌 출발 무궁화호는 온기가 덜하지만 옥천 영동 황간가는 경상도 억양의 사투리와 들고 맨 선물 꾸러미로 객차안은 따뜻해지고 추풍령에서 뒤쫓아온 번개차를 앞서보낸뒤 백두대간을 넘어서니 경상도땅 내리막길 차창밖 황학산 위로 새날이 밝아온다 온누리의 평화와 배달민족의꿈을담고 우리집의 행복과 너와나의 희망을 담고 우리 모든 회원님들의 건강과 행운을 담고 고향 땅에서 아직은..

술에 취해 세상 이야기

우리네 인간들이 거쳐야 할 세상중에 으뜸가는 세상은 저 세상 이라하고 버금가는 세상은 그 세상 이라하고 가장 못한 세상이 이 세상 이라더라 가장 못한 이세상에 그나마 나은것이 산에 살다 산에 눕는 산꾼 세상 이라하고 그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은것은 물에 살다 물에 눕는 물꾼 삶이 다음이라 보통의 사람들이 살고있는 땅세상은 파해치고 눌러덮고 말뚝박아 뽑아내고 구멍 뚫고 쇠길 내어 쇠말들이 내달리니 가장못한 이세상에 가장못한 삶이더라 내발달고 태어나서 두발로만 걸어가는 털없는 짐승들아 저세상 갈때까지 그나마 살기 나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땅세상서 찌든 육신 얼마라도 씻어내자 2009년을 보내며 돌까마귀 쓸대없이 깍깍되다

10월26일의 두 총소리

일천구년 시월 상달 스무엿새 이른아침 하얼빈 역두를 울린 세발의 총소리에 동북아를 삼키려는 왜놈들의 우두머리 교활한 늙은여우 이등방문이 쓰러졌다 의혈남아 안응칠이 동양평화를 위하여 대한국인 안중근이 배달민족 이름으로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이 독립군의 이름으로 쥐 도적 이토오를 만천하에 심판했다 일천구백 칠십구년 시월 스무 엿샛 날 어둠 내린 궁정동을 뒤흔드는 총소리는 민주를 억누른체 근대화를 일궈 놓은 유신의 우두머리 박정희가 쓰러졌다 정보부장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측근에서 떠밀린 패배자의 질투로 유무를 알수없는 배후의 조종으로 배고픔을 몰아내준 대통령을 시해했다 강산이 바뀌기를 열번과 세번인데 여순에 묻힌님은 찾을길이 막막하고 동작동에 묻힌님은 18년을 지킨자리 공도 많고 과도 많아 입방아에 시달린다..

보내는 마음

경신년 유월 열이레날 한밭땅 보문산 자락 소라티길 보림사 옆에서 산통을 시작한 너 대흥동 대전여중 옆에서 첫울음을 터트렸었지 앙증맞은 발걸음으로 동네아희들 따라오른 보문산 전망대 돌아오지 않은 너를 찾아 허겁대길 왠종일 낯모를 가게집에서 뛰어놀고 있는 너를 찾았을땐 한숨마저 목구멍에서 잠들었었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다닐무렵의 애교쟁이가 중고생이 되드니만 새침때기가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알뜰 깍쟁이가 되었었지 무능한 애비의 힘을 덜려고 아르바이트에 휴학까지 하면서도 장학금까지 받아가면서 마친 대학생활 남들이 부러워하는 취업도 단숨에 해결하였었지 이제 스무아흘해 동안 큰울타리 되지못한 못난애비 품떠나 남의집 며느리 되는날 이 애비 바라는건 단하나 시어른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좋아 단란한 신접살림 알콩달콩..

아주 오래된 가을의 만남

파아란 가을하늘 한켠의 새털구름 한무리는 흩어졌다 다시모여 양털구름으로 커지고 누우렇게 고개숙인 벼포기 사이 사이로 갈라졌든 가을바람은 신작로길 코스모스 꽃잎 흔들며 다시 만난다 주린배 움켜쥐고 떠나왔던 고향길 등터진 손 흔들며 옷고름에 눈물닥던 그어미가 말없이 담뱃대 입에물고 헛기침하던 그애비가 지금은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기다리시는 고향길 코스모스 하늘거리고 알밤이 뒹구는 그 고향길을 형제 친구들 만날 설레임 가득안고 간다 남과 북이 한데엉킨 뜻모를 밀고 당기기 끝에 영문 몰래 갔던 님도 끌려서 갔던님도 찬바람부는 부두에서 고향 버리고온 님도 물결에 휩쓸려 넘어간 님도 죽어서도 못잊을 그리움 가슴에안고 고향소식 애타게 기다리든 그님들도 얼굴 가득파인 그리움의 골 만큼이나 기나긴 세월을 넘어 만난다 만..

비 오는 날 오후의 추억 / 미꾸라지

장맛비가 잠시그친 해그럼 무렵에는 하교길 책가방 툇마루에 던져놓고 외양간에 배깔고 누운 누렁이 여물통에 어제 베온 시들은 소꼴 한삼태기 넣어주고 도롱이 걸쳐 매고 밀짚모자는 눌러쓰고 헌 소쿠리 손에 들고 차림을 마쳤으니 배방골 무논 가는길 강아지풀만 뽑아차면 새 물 냄새 맡고 오른 미꾸리가 기다린다 논두렁 물꼬아래 풀섶을 헤집으며 대소쿠리 받쳐대고 한쪽발로 몰아치면 아스라히 전해오는 미꾸라지 몸부림 아가미에 강아지풀 끼워 허리춤에 매단다 한곳에서 허탕치면 다른곳서 횡재할터 뉘엇 뉘엇 해질때까지 물꼬를 더듬으니 길잃은 메기까지 두어마리 건졌으니 매달린 미꾸리 무개에 바지춤이 내려간다 내달려 집에오면 기다리는 불호령은 숙제는 어이하고 무엇하다 왔냐지만 어머니 눈가에 비친 잔잔한 눈웃음에 허리춤 끌러드리면 말..

죽은자와 산자

말없이 누워있는 죽은자여 잊혀진지 오래된 죽은자여 불살라 한줌 재가되어 죽은자여 철조망에 갖혀 운신도못하고 누운자여 쓰레기 더미에 덮혀도 말못하는 죽은자여 지붕이 흘러내려 옆구리가 시린 죽은자여 살아있는 그들을 미워말라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길레 죽은 그대들을 돌볼여유 없겠는가 혹이라도 뒤늦은 회한의 눈물 흘리며 술한잔 꽃한송이들고 찾아 올날 있으리니 산자의 그릇됨과 몽매함을 넓고 깊은 조상님 은덕으로 덮어주오 2009.3.4 괴곡동 대전시립공원 묘지에서

고향 가는길

한달에 한두번은 다녀왔든 고향길이지만 육십에 든 마음속에도 설쇠러 나서는 새벽고향길이 설래다 어릴적 새뱃돈으로 받은 빨간 지전이 신기하여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창고에 넣어놓고 학교 다녀와서 꺼내어 냄새 맡아보든 그 추억도 스무명이 넘는 대소가 손주녀석들 나눠줄 빳빳한 신권 배춧닢으로 불룩한 쌈지를 더듬으며 새벽별이 빤짝이는 플렛폼에서 파란 하늘로 띄워본다 한밭벌 출발 무궁화호는 조금 냉하였지만 옥천 이원 영동 황간가는 경상도 억양썩인 충청도 사투리와 들고 맨 선물 꾸러미들로 방안은 금새 따뜻해진다 추풍령역에서 뒤쫓아온 번개차를 앞서보내고 백두대간을 넘어 경상도땅 내리막길 차창밖 황학산 위로 새날이 밝아온다 온누리의 평화와 우리나라의 힘과 배달민족의꿈과 우리집의 행복과 나의 희망을 담고... 우리 회원..

가시는 戊子年과 오시는 己丑年께

가시는 무자년이시여! 가시는 길 아쉽드라도 이것만은 갖고가소 들고 진짐 무겁드라도 이것만은 갖고가소 힘겨워도 넘치드라도 조금만 더 갖고가소 여의도에 모인 이들 분탕질도 보기 싫고 입고 먹고 잠잘거리 높은값도 꺽어가고 일할자리 틀어막은 높은담장도 걷어가소 길거리에 나뒹구는 삼강오륜도 줏어가고 남의 목숨 귀한줄 모르는 아귀들도 델꼬가고 지천사방 널린 잡놈 쓸어담아 들고가소 나라살림 갉아먹는 살쾡이도 잡어가고 이웃살림 갉아먹는 쥐새끼도 잡어가고 내집살림 갉아먹는 좀버러지도 잡어가소 머리속에 들어있는 근심걱정 빼어가고 팔다리 마디마디 쑤시는놈 잡어가고 복창속에 들어있는 우환덩어리도 가져가소 오시는 기축년이시여! 가라앉은 우리 살림 한뼘 만큼이라도 띄워주고 널부러진 이웃 살림 윗몸이라도 세워주고 깨져가는 나라살림..

크리스마스의 추억

그시절 우리들은 눈빠지게 기다렸다 일년에 단 두번 통금이 풀리기를 아기예수 태어난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성당과 예배당에 창호지로 만든 별 걸리고 전기 귀하든 시절의 빤짝이 등도 볼거리인데 자정미사후 가가호호 찬송가에 잠못들었지 금지된 밤길 걷기가 풀려서 좋을레라 짱구내 건너방에 모두가 모여앉아 탁배기통 숨겨놓고 호야불도 밝혔었지 어르신네 눈치보며 처마끝 새집뒤져 영구네 무수더미 살그머니 서리하여 가마솥에 불집히니 이름하여 참새탕이라 사랑방에 한양푼 중사랑에도 한양푼 안방모여 홀치기하는 엄니들도 한양푼 뒷방모여 십자수놓는 누나들도 한양푼 소리사에서 빌려온 야외전축 틀어놓고 개다리 트위스트 너도나도 흥겨우니 발구락 삐져나온 나일론 양말이 대수련가 예비 싸이렌도 본 싸이렌도 오늘은 걱정없다 방범대원 호각소리..

대전을 떠나지 못하는 돌까마귀

나 어릴 적 고향에서는 나 어릴 적 고향 뒷산은 우리들의 놀이터 소학교도 가기 전에 형들 따라 오른 산은 산봉우리 골짜기마다 장난감 천지였지 해골바가지 널 부러진 낙엽 속을 헤집으면 양손에 한 움큼씩 M1총알도 주었었고 재수가 좋은날에는 기관총알 한 박스 벼 베어낸 논바닥에 탄띠 둘러 꽂아놓고 볏짚 덮어 불 부치면 벼락 천둥 콩 볶음 소리 내일 오는 엿장수는 지개 비우고 웃음 질 터 물밀듯 밀려오는 인민군을 막으려고 낙동강 방어선 차린 우리의 국방군은 유학산 산줄기를 목숨 걸고 지켰으니 널린 게 탄피요 잡히는 게 해골바가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온산을 내 달리니 이름하여 까치까막 작오산(雀烏山)이라 하였더라 논배미 물꼬를 닫고 한가득 물 담으면 엄동설한 찬바람에 얼음판이 펼쳐지고 씨갯또(어름판 썰매) 아랫..

홀로와 더불어 / 계족산성에서

홀로와 더불어 살다보면 때로는 홀로인것이 두렵다 어두운 밤길 걸을때 처럼 간혹 혼자만의 공간이 공포로 닥어오기도 하고 치밀어 오르는 외로움에 애꿎은 술잔만 비울때도 있었다 그러나 홀로라는 생각을 되새겨 보노라면 결코 혼자가 될수는 없었다 산길에서 만나는 나무가 있었고 풀이 있었고 지저귀는 산새도 있었고 풀벌레도 있었고 내몸을 감싼 모든것들에도 그들의 손길이 있었고 시장끼를 면하게 해주든 도시락 속에도 갈증을 풀어주든 물병 속에도 언제나 그들의 손길은 있었다 마시는 산내음 물내음 속에도 머리위에 흩뿌리는 빗방울 속에도 저물어 가는 여름의 꼬리에도 닥어오는 가을의 햇살 속에도 그들은 항상 있었다 다만 내가 그들과 더불어라는걸 몰랐을 뿐이었다 그들이 내게 배풀어준 고마움을 느낄줄 모르고 혼자서 홀로라고 우겼을..

秋來心豊饒 思越冬春窮 / 찐쌀

추래 심풍요 하나 사월 동춘궁이라 가을이 오니 마음은 넉넉하나 한켠 생각하니 겨울넘어 보리고개가..... 찐 쌀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든 나락은 이미 바닥난 보리쌀 대신 체 영글기전에 '도구' 친다는 핑개로 베어져 '소죽 가마솥'에 목아지 잘라 처 넣인다 뒷산 비얄에서 베온 푸성귀가 늦여름 땡볕에 희나리 되어 귀퉁이 깨어진 소죽 솥 아궁이에 불 지피면 덜 영글은 나락 알갱이는 노오랗게 익어간다 외양간 한켠의 디딜방아 돌확은 덜익은 나락이 가마솥에 쪄진줄도 모르고 '아그빠리' 떡 벌려 한 입 가득 받아 물고 덩더궁 덩더궁 방앗고를 기다리니 철없는 아해는 고소한 찐쌀 생각에 옆에서 눈길주는 누이 맘도 모르고 신바람 나서 방아다리 밟아대고 키를 든 어매 손은 잠자리 날개처럼 떨린다 제때 거둬 타작하면 소출이 얼..

고목(古木) / 울 어매

찢어지는 아픔도 참아가며 마지막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저 고목은 갈라터진 손등을 치마폭에 감추고 멀어저 가는 자식놈 그림자가 동구밖 언덕베기 돌무더기 뒤로 가릴때 까지 아렛입술 깨물며 눈물을 삼키던 어메를 닮었다 삶은 보리쌀 밑자리 깐 가마솥에 바닥 들어낸 쌀독을 긁어 정성스레 씻어 한 가운데 놓고 청솔가지 메운연기 후후불어 지은 밥을 면경알 처럼 번쩍이는 놋식기에 담아내고 장독대 한가운데 소금독에 심어놨던 굴비 한 손 석쇠에 가지런히 하고 빠알간 아궁이 솔가지 숯불에 구어 삼년을 못보고 지낼 자식놈 상위에 올리시든 그 어메를 닮었다 첫 휴가 오든날 사립문 소리에 버선발로 반겨주던 그어메의 손등은 여전히 터져 있었고 보름 동안 곁에 머물며 쇠잔해 가는 어메가 안쓰러워 군화끈 조이며 울먹이기도 했었지만 동..

산마루에서

가린 곳 하나 없이 탁 트인 산마루에 사방을 둘러 싸는 찬란한 붉은 장막 그 속에 갇혀 있는 내가 바로 신선일세 땅거미가 짙어 지고 밤하늘에 별이 뜨면 정겨운 님과 함께 술잔을 높이 들고 오작교를 넘나 들며 사랑을 나누리라 새벽 닭 울음소리에 미리내는 사라지고 서쪽 하늘 초승달 옆엔 샛별이 빛나는데 또 다시 붉은 장막은 마루금에 드리우네 사랑하는 벗들이여 훌훌 털고 일어나라 저 찬란한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아보자 가슴 속에 품은 큰뜻 하늘 높이 펼쳐 보자 2021년 7월 31일 /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종식을 기원하며 사진은 2009년 12월31일과 2010년 1월 1일 구룡산 삿갓봉에서 비박하며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