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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추억

그시절 우리들은 눈빠지게 기다렸다 일년에 단 두번 통금이 풀리기를 아기예수 태어난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성당과 예배당에 창호지로 만든 별 걸리고 전기 귀하든 시절의 빤짝이 등도 볼거리인데 자정미사후 가가호호 찬송가에 잠못들었지 금지된 밤길 걷기가 풀려서 좋을레라 짱구내 건너방에 모두가 모여앉아 탁배기통 숨겨놓고 호야불도 밝혔었지 어르신네 눈치보며 처마끝 새집뒤져 영구네 무수더미 살그머니 서리하여 가마솥에 불집히니 이름하여 참새탕이라 사랑방에 한양푼 중사랑에도 한양푼 안방모여 홀치기하는 엄니들도 한양푼 뒷방모여 십자수놓는 누나들도 한양푼 소리사에서 빌려온 야외전축 틀어놓고 개다리 트위스트 너도나도 흥겨우니 발구락 삐져나온 나일론 양말이 대수련가 예비 싸이렌도 본 싸이렌도 오늘은 걱정없다 방범대원 호각소리..

대전을 떠나지 못하는 돌까마귀

나 어릴 적 고향에서는 나 어릴 적 고향 뒷산은 우리들의 놀이터 소학교도 가기 전에 형들 따라 오른 산은 산봉우리 골짜기마다 장난감 천지였지 해골바가지 널 부러진 낙엽 속을 헤집으면 양손에 한 움큼씩 M1총알도 주었었고 재수가 좋은날에는 기관총알 한 박스 벼 베어낸 논바닥에 탄띠 둘러 꽂아놓고 볏짚 덮어 불 부치면 벼락 천둥 콩 볶음 소리 내일 오는 엿장수는 지개 비우고 웃음 질 터 물밀듯 밀려오는 인민군을 막으려고 낙동강 방어선 차린 우리의 국방군은 유학산 산줄기를 목숨 걸고 지켰으니 널린 게 탄피요 잡히는 게 해골바가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온산을 내 달리니 이름하여 까치까막 작오산(雀烏山)이라 하였더라 논배미 물꼬를 닫고 한가득 물 담으면 엄동설한 찬바람에 얼음판이 펼쳐지고 씨갯또(어름판 썰매) 아랫..

홀로와 더불어 / 계족산성에서

홀로와 더불어 살다보면 때로는 홀로인것이 두렵다 어두운 밤길 걸을때 처럼 간혹 혼자만의 공간이 공포로 닥어오기도 하고 치밀어 오르는 외로움에 애꿎은 술잔만 비울때도 있었다 그러나 홀로라는 생각을 되새겨 보노라면 결코 혼자가 될수는 없었다 산길에서 만나는 나무가 있었고 풀이 있었고 지저귀는 산새도 있었고 풀벌레도 있었고 내몸을 감싼 모든것들에도 그들의 손길이 있었고 시장끼를 면하게 해주든 도시락 속에도 갈증을 풀어주든 물병 속에도 언제나 그들의 손길은 있었다 마시는 산내음 물내음 속에도 머리위에 흩뿌리는 빗방울 속에도 저물어 가는 여름의 꼬리에도 닥어오는 가을의 햇살 속에도 그들은 항상 있었다 다만 내가 그들과 더불어라는걸 몰랐을 뿐이었다 그들이 내게 배풀어준 고마움을 느낄줄 모르고 혼자서 홀로라고 우겼을..

秋來心豊饒 思越冬春窮 / 찐쌀

추래 심풍요 하나 사월 동춘궁이라 가을이 오니 마음은 넉넉하나 한켠 생각하니 겨울넘어 보리고개가..... 찐 쌀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든 나락은 이미 바닥난 보리쌀 대신 체 영글기전에 '도구' 친다는 핑개로 베어져 '소죽 가마솥'에 목아지 잘라 처 넣인다 뒷산 비얄에서 베온 푸성귀가 늦여름 땡볕에 희나리 되어 귀퉁이 깨어진 소죽 솥 아궁이에 불 지피면 덜 영글은 나락 알갱이는 노오랗게 익어간다 외양간 한켠의 디딜방아 돌확은 덜익은 나락이 가마솥에 쪄진줄도 모르고 '아그빠리' 떡 벌려 한 입 가득 받아 물고 덩더궁 덩더궁 방앗고를 기다리니 철없는 아해는 고소한 찐쌀 생각에 옆에서 눈길주는 누이 맘도 모르고 신바람 나서 방아다리 밟아대고 키를 든 어매 손은 잠자리 날개처럼 떨린다 제때 거둬 타작하면 소출이 얼..

고목(古木) / 울 어매

찢어지는 아픔도 참아가며 마지막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저 고목은 갈라터진 손등을 치마폭에 감추고 멀어저 가는 자식놈 그림자가 동구밖 언덕베기 돌무더기 뒤로 가릴때 까지 아렛입술 깨물며 눈물을 삼키던 어메를 닮었다 삶은 보리쌀 밑자리 깐 가마솥에 바닥 들어낸 쌀독을 긁어 정성스레 씻어 한 가운데 놓고 청솔가지 메운연기 후후불어 지은 밥을 면경알 처럼 번쩍이는 놋식기에 담아내고 장독대 한가운데 소금독에 심어놨던 굴비 한 손 석쇠에 가지런히 하고 빠알간 아궁이 솔가지 숯불에 구어 삼년을 못보고 지낼 자식놈 상위에 올리시든 그 어메를 닮었다 첫 휴가 오든날 사립문 소리에 버선발로 반겨주던 그어메의 손등은 여전히 터져 있었고 보름 동안 곁에 머물며 쇠잔해 가는 어메가 안쓰러워 군화끈 조이며 울먹이기도 했었지만 동..

마늘 이야기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마늘’. 한국인의 마늘 사랑은 역사가 깊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냄새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이롭다는 뜻으로 마늘을 ‘일해백리(一害百利)’라 불러왔다. 현대에 와서 마늘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깊어진 듯하다. 한국인의 마늘 소비량은 1인당 약 6kg으로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소비량을 자랑한다. 면역력부터, 혈관 건강까지 돕는 등 마늘의 효능은 실로 다양하다. 최근 'EVERYDAY HEALTH' 紙가 소개한 마늘의 여러가지 효능을 옮겨 적어본다. 1. 혈압 강하 마늘 섭취는 심장 전문의를 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늘은 먼 옛날부터 자연적인 혈압 강하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다. 2020년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188~2,400mg의 마늘 분말 보충제, 마늘 추출물을 8..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당 이야기

동작동 현충원. 관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한강을 만나는 지점에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보통 시민들에겐 ‘동작동 국립묘지’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다. 1955년 7월 국군묘지로 조성되었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군인이 아닌 유공자들도 안장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대통령들과 각계 저명인사들도 묻혀 있다. 현충원은 그런 남다른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 충성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이 선거 당선 등 특별한 날에 찾아가 마음을 다잡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알리기도 한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해 요즘 같은 봄날엔 참배객뿐 아니라 상춘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동작대교 ..

골목길에서 사라지는 꼬마 자동차 다마스와 라보

한국GM이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 생산을 올해(2021년) 1분기에 종료하기로 했단다. 대우자동차 시절인 1991년부터 창원 공장에서 생산해온 다마스와 라보는 지난 30년 동안 자영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모델로, 출시 이후 총 37만여대가 팔릴정도로 인기가 높은 꼬마 자동차였다. 안전도는 다른 차종에 비해 많이 낮지만, 1000만원 안팎의 가격에다 차량 유지비가 적게 드는 ‘가성비’ 덕분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애용하는 모델이 됐는데, 배기량이 800cc 미만으로 경차에 속해, 개별소비세, 취 등록세 등 세금이 면제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데다, 연료도 LPG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지비가 적게 들고 적재 공간도 웬만한 스포츠 유틸리티차(SUV)보다 넓어 다마스는 450㎏, 라보..

사져간 풍습 / 설날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 었다는 것..

사라져간 풍습 1월 /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의 어원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 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고 한다..

사라져간 풍습 2월 초하루 / 머슴날, 영등날

머슴날의 유래 머슴날은 농가에서 머슴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음식을 대접하며 즐기도록 하는 날로, 노비일 또는 일꾼날이라고도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난 다음, 머슴들은 겨울 동안 크게 힘든 일 없 이 평안하게 지냈으나 2월에 들어서면 서서히 농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고된 일이 시작되기에 앞서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여 즐겁게 놀도록 하는 것이다. 머슴날의 풍속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기는데,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돈을 주어 쓰도록 한다. 많은 노비를 거느린 대가에서는 떡도 하고 많은 음식을 준비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를 내려서 그 속에 넣었던 곡식으로 송편 등의 떡을 만들어 스무살이 된 머슴들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고 한다..

사라져간 풍습 3월 / 삼짇날

삼월 삼짇날의 어원 음력 3월 3일을 삼월 삼짇날이라고 한다. 옛말에 '삼질'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상사(上巳), 원사(元巳), 중삼(重三), 상제(上除),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쓴다. 삼짇날은 삼(三)의 양(陽)이 겹친다는 의미이다. 최남선에 의하면 삼질은 삼일의 자음(字音)에서 변질되어 파생된 것이며, 상사는 삼월의 첫 뱀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삼월 삼짇날의 유래 삼짇날이 언제부터 유래하였는지 자세히 전하는 바는 없다. 최남선에 의하면 신라 이래로 이날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으며, 이 풍속은 조선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또 옛사람들은 3월의 첫 뱀날[巳日]을 상사(上巳)라 하여 명일(名日)로 여겼으나, 그후 상사일이 들쭉날쭉함을 불편히 여겨 마침내 3월 3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사라져간 풍습 / 한식(寒食)

한식의 어원 한식의 어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글자 뜻대로 풀이하면 '찬밥을 먹는다'로 요약 될 수 있는데, 이는 한식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한식의 유래 한식에 대한 기록은 우리 나라의 여러 세시기(歲時記)에 나타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삼월조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아침,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쫓는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 상고하면 당나라 정정칙(鄭正則)..

사라져간 풍습 4월 / 초파일

사월초파일의 어원 이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 하여 불탄일(佛誕日)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하나, 민간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 (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라는 여러 가지 불교 행사가 성했는데,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불교를 호국(護國)의 바탕으로 참여시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불교행사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는 불교행사가 신라의 세시풍속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월 초파일은 불도의 행사가 신라의 호국불교로 승화된 이래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조에 이르는 ..

사라져간 풍습 5월 / 단오(端午)

단오의 어원 단오는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 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 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구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속절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기수민속(奇數民俗)들이다. 이러한 기수민속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

사라져간 풍습 6월 / 유두(流頭)

음력6월은 계절적으로 가장 무더우며 삼복(三伏)이 들어있는 때이다. 따라서 개장국, 삼계탕같은 자양분이 많은 음식으로 몸을 보하기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더위에 지쳐 발병하기 쉬운 때이므로 재액(災厄)을 면하고 잡귀를 쫓는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러한 것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이 곧 유두(流頭:음 6월 보름)이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것은 동쪽은 청이요,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풍속을 통해 불상(不祥)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처럼 흐르는 물에 몸을 씻는 것은 물의 정화력을 인정하여 심신을 물에 담가 더러움을 떨쳐 버리는 세계의 보편적인 습속으로..

사라져간 풍습 / 삼복(三伏)

삼복의 어원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속절(俗節)이다.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혹은 삼복 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복의 어원에 대해서는 신빙할 만한 설이 없다. 다만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삼복의 유래 복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진(秦)·한(漢) 이래 매우 숭상된 듯 하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 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상고하면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

사라져간 풍습 7월 / 칠석(七夕)

칠석의 유래 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이 날은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내려온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 먹으며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러한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까마귀와 까치 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그것이 곧 오작교(烏鵲橋)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

사라져간 풍습 7월 / 백중(百中)

백중의 어원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 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나로서 이 날에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 백중의 유래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 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

사라져간 풍습 8월 / 추석(秋夕)

추석의 유래 추석은 설과 함께 우리의 2대 명절로 현재 정착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설과 추석이 국가에서 정한 공휴일에 포함된 결과이다. 추석은 한가위, 중추절, 가배(嘉俳) 등으로 부른다. 한가위나 중추절이라는 표현 그대로 가을의 가운데에 위치한 날이다. 이때는 춥거나 덥지도 않으며, 풍성한 과일과 곡식으로 마음까지 여유로운 때이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속담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추석은 동남아시아권이나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의미 있는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석과 관련된 기록을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 가위(嘉俳)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유리왕 때 경주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칠월 보름부터 팔월..

사라져간 풍습 9월 / 중구(重九)

중구의 어원 음력 9월 9일의 중구는 9월 중의 유일한 속절(俗節)이며, 중양(重陽) 또는 중광(重光)이라고도 한다. 중양·중광은 양(陽)이 겹친다는 뜻이며, 중구는 '9[九]' 수가 겹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 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속절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기수민속(奇數民俗)들이다. 이러한 기수민속은 양의 수가 중첩된다는 의미에서 다 중양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의 유래 중구를 비롯한 기수민속은 ..

사라져간 풍습 10월 / 상달 고사(告祀) / 손돌풍

상달고사의 어원 상달고사란 음력 10월에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 고사라는 말은 세시풍속상에서 안택(安宅)이라는 말과 혼동되어서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러한 점은 양자가 가정단위의 제사이며, 아울러 성주·조상·터주·조왕·삼신 등 모시는 대상신들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사는 주로 상달고사를 말하며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강하고, 안택 은 주로 정월에 행해지며 연초의 액막이 및 행운 기원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 혹은 안택이라는 이름은 중부를 포함한 중부이북지방에 분포되어 있고, 영호남 지방에서는 도신(禱神) 또는 도신제라 부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고시레·고사·굿'을 같은 어원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그..

사라져간 풍습 11월 / 동지(冬至)

동지의 어원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동지의 유래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사라져간 풍습 12월 / 섣달 그믐(除夕)

제석의 유래 1년의 마지막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하는데,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밤이라는 뜻이다. 제석의 풍속 제석의 풍속으로는 먼저 궁궐에서 지내는 '연종제(年終祭)'와 '묵은해 문안', 그리고 민간에서 행 하는 '묵은해 세배', '수세(守歲)', '세찬(歲饌)' 등이 있다. 연종제와 묵은해 문안 연종제란 궁중에서 한 해가 끝남을 기념하여 지내는 의식으로,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에서 이 연종제 행사를 행하여 왔다. 이때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제금[銅琴]과 북을 울리면서 궁안으로 두루두루 돌아다니는데, 이를 나례(儺禮)라고 한다. 이것은 1년 동안의 묵은 잡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깨끗하게 맞이하려는 의도에서 행하였던 것이다. 또 대궐 안에서는 제석 ..

고종과 헐버트 / 황제가 신임한 미국 친구

인생 독립도 못했는데 어떻게 독립국가를 일굴까. 고종은 1863년 12세의 나이로 임금이 되었지만 30년 넘게 왕 노릇을 못 했다. 10년은 아버지의 꼭두각시였고, 20여년은 아내의 치마폭에 싸였다. 나라는 외세의 침략 속에 기울어 갔지만, 군주는 자신의 뜻을 갈고 닦지 못했다. ‘독립(獨立)’은 스스로 일어서는 일이건만, 그가 자꾸만 외세에 의존하려 한 이유다. 구한말 시대극에서 고종은 뜨거운 감자다. 극단적으로 애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임금이 나라를 그르쳤다는 비판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간악한 일제에 맞서 왕으로서 할 만큼 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 고종 황제가 미국 선교사에게 밀서를 내리고, 내탕금을 빼돌려 일본에 맞서려는 대목이 나온..

난방과 조리시설 / 화덕에서 온돌과 부엌으로, 다시 원룸으로

오늘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생활의 근본 조리시설(부엌)과, 잠자고 생활하는 주거공간(거실, 침실)의 난방시설이 어떻게 변천하였는지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생활공간 바닥에 온돌이 설치되기 전까지 생활면과 부엌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신석기시대 이래로 원삼국시대까지 부엌은 주거지 가운데에 화덕을 만들어 토기를 올려 놓고 주변에 땔감을 배치하여 사용했다. 이때 난방기능을 하는 화덕 주변이 바로 조리공간(부엌)이기도 하였다. 어떤 지방에서는 화덕을 별도로 벽면에 붙여 긴 통로형태로 쪽구들(온돌)을 만들어 추위를 대비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온돌의 조상격이 되는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리와 난방시설은 한 공간에서 따로따로 존재했다. 이후 삼국시대가 되면서..

傳統 山神祭 順序와 笏記

제관 선출(祭官 選出) *초헌관(初獻官): 산신제의 제주(祭主)로 마을 주민중에 최근 삼년이내 애사(哀史)가 없는 건강한 남자, 단체의 경우 대표가 맡는다. *아헌관(亞獻官): 마을 주민이었다가 타지로 이사 간 사람 또는 내빈 중에서 적당한 사람, 산악대장 등이 맡는다. *종헌관(終獻官): 마을 주민중에서 건강한 최연장자, 단체의 경우 고문, 사무국장, 총무등이 맡는다. *독축관(讀祝官): 초헌례를 드릴때 축문을 읽는 사람 *도집사(都執事): 홀기(笏記)를 읽으며 산신제를 진행하는 사회자 *좌집사(左執事): 좌측에서 헌관으로 부터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고 제물을 바꾸며 수저를 올리고 내리는 사람 *우집사(右執事): 우측에서 제주에게 술잔을 전하고, 제주를 따르며, 올렸던 술잔이나 제물을 내리는 사람..

淸酒와 濁酒 ,동동酒 그리고 燒酒와 과일酒

비오는날 툇마루에 걸터 앉아 장죽을 입에 문채 호박전 앞에 놓고 막걸리 대접 들어본 세대는 입맛이 당길 이야기 날 맑고 더운날은 풋고추에 된장 안주도 좋지만 벼 논의 3벌 논메기가 끝나고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 즈음의 비오는 날 오후에는 도롱이에 삿갓쓰고 논 물꼬 건사하고 돌아오는 길, 방천둑에 널부러진 누렁 호박 하나 따서 돌아오면 낮잠 자던 아내가 귀 찮은 눈초리의 눈꼽을 때어내고 바알간 호박속 들어 낸뒤 누런 과육을 긁게로 긁으면 황금빛 호박 채가 국수 가닥처럼 나오니, 희 멀건 밀가루 반죽에다 풋 고추도 송송 썰어 넣고 정구지(부추)와 쪽파도 몇가닥 집어 넣어 화덕에 불 지피고 뒤집어 걸은 솥뚜껑에 참기름 살살 바르고 지짐을 부치는데...침 넘어 가죠? 여기서 그 참기름 바르는 연모를 살 펴보면 ..

간추린 관혼상제

*머나먼 급제의 길 조선시대 양반가의 남자들에게 피할수 없는 운명이 있었으니 바로 과거시험 준비다. 다섯살 정도가 되면서 부터 머나먼 고난의 길이 시작되는데, 과거시험의 합격여부가 한가문의 운명을 좌우하니 삼대에 걸쳐 합격자가 없으면 평민으로 신분이 격하 되므로 당사자는 지금의 공무원 시험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천자문으로 기초 한자를 익히고 나면 동몽선습(童蒙先習)으로 유학에 입문하고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매달리길 20여 년, 소과에 일단 응시하게 되는데 1차인 초시와 2차인 복시를 모두 합격해야 하고, 사서삼경을 검증하여 한번에1000명을 뽑는 생원시 통과자에겐 생원, 문장력을 검증하여 100명을뽑는 진사시 통과자에겐 진사라는 호칭이 주어지니, 이 정도 만 되어도 향리에서는 어느 정도 큰 소..

조상님에대한 존경과 애모:전통제례(傳統祭禮)

전통제례의 변천 사람이죽으면 그 자손이나 친족,친지가 슬픔속에서 장례를 치른후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여 기념하는것이 제사이다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없는 자손이 있을수 없듯이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돌봐주신 부모님이나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조상에 대해 정성을 다하여 예로써 모시는 것은 자손으로써의 당연한 도리이다, 생활이 복잡하고 일에 쫓기는 현대인일지라도 1년에 한번 돌아오는 기일만이라도 보은의 뜻으로 예를지켜야 할것이다 제사의 근원은 천재지변과 질병 맹수의공격을 막기위해 친지신명께 빌던것이 조상에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변하여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수백년동안 4대봉사(四代奉祀)로 종손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왔으나 현대에 와서는 2대봉사를 원칙으로 제사시간도 기일 일몰후로 지..